[위대한 생각]①흑사병 치료제 찾아 바다로…제약산업의 시작

by김무연 기자
2020.05.19 05:30:00

지상 강의 : ‘인더스토리’ 3강 약(藥)
흑사병 특효약 육두구 찾기 경쟁, 대항해 시대 촉발
파스퇴르와 코프의 경쟁, 질병 원인 ‘세균’ 존재 밝혀
플레밍의 페니실린, 2차 세계대전서 수많은 목숨 구해
머크와 바이엘, 현대 제약산업 초석 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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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산업사회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들의 과거와 현재를 역사·정치·문화·기술·경제 등 복합적인 시선으로 이해하고 이를 통해 미래를 보는 능력을 기른다. 현대 문명의 기반이 된 ‘철(鐵)’과 ‘사(沙·모래)’부터 코로나19 사태로 주목받고 있는 ‘약(藥)’, ‘의(醫)’까지 이 세상 모든 산업의 역사를 다룬다.

미국 조지아공대에서 15년간 교수로 재직. 조지아공대 부설 전자설계연구소 부소장, 조지아공대 기업혁신센터 국제협력 수석고문. 국제 통신표준화 의장. 빅데이터·소프트웨어·게임·블록체인·기후변화 등 다양한 분야의 스타트업에 참여.

피터 브뤼겔 엘더의 ‘죽은 자의 승리’.
[총괄기획=최은영 부장, 연출=정윤철 PD, 정리=김무연 기자] 이 세상 모든 산업의 역사를 알아보는 ‘인더스토리’ 세 번째 주제는 ‘약(藥)’이다. 임규태 박사는 강연에 앞서 피터 브뤼겔 엘더의 그림 ‘죽은 자의 승리’를 화면에 띄웠다. 이 그림은 1346년 창궐해 유럽 인구 3분의 1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흑사병의 잔혹함을 묘사하고 있다.

흑사병은 제약 산업, 나아가 인류 역사를 송두리째 바꿔놓게 된다. 흑사병 특효약으로 소문난 육두구를 찾기 위해 유럽 각국이 경쟁적으로 모험에 뛰어들며 대항해 시대가 열렸다. 근대 들어 흑사병의 원인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인류는 세균의 존재를 발견했고 이는 항생제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흑사병이 창궐할 당시 사람들은 병의 전파경로를 ‘냄새’라고 생각했다. 이에 따라 사람들은 최대한 냄새를 맡지 않으려고 애썼다. 마을을 돌며 환자를 돌보던 ‘흑사병 의사’들은 까마귀 부리와 같은 길쭉한 마스크에 온갖 향신료를 집어넣어 냄새를 차단했다. 대표적인 향신료였던 ‘육두구’ 수요가 늘어난 이유다.

문제는 당시 유럽에서 육두구를 구할 수 있는 경로는 적대 관계였던 오스만 튀르크 제국이 지배하는 중동지역에 한정됐다는 점이다. 흑사병으로 육두구의 수요가 높아진 데 반해 공급이 달려 육두구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당시 육두구 가격은 금보다 비쌌다.

유럽 국가들은 서쪽 바다로 눈을 돌렸다.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 희망봉을 돌아 세계를 일주한 마젤란 등 모험가들이 육두구를 찾아 세계를 누볐다. 대항해 시대의 시작이다. 모험가들의 노력은 육두구 산지 인도네시아를 발견하는 결실을 맺게 된다.

신대륙을 발견한 콜롬버스.
금싸라기 땅인 인도네시아를 차지하기 위한 유럽 국가들의 경쟁은 치열했다. 특히 해상 패권을 다투던 영국과 네덜란드는 두 차례 전쟁을 치렀다. 여기서 이긴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 룬 섬에 대한 권한을 영국으로부터 이양 받고 대신 크게 필요가 없었던 뉴 암스테르담을 영국에 넘기며 육두구 전쟁의 승기를 잡는 듯했다.

그러나 진짜 승자는 영국이었다. 영국은 인도네시아와 기후가 비슷한 서인도제도를 발견하고 원주민을 부려 대량의 육두구를 몰래 재배해 유럽에 풀었다. 육두구 가격 급락으로 네덜란드는 육두구 무역으로 이익을 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룬 섬 대신 뉴 암스테르담만 넘겨준 꼴이 됐다. 뉴 암스테르담은 훗날 ‘뉴욕’이 된다.

루이 파스퇴르(왼쪽)와 로베르트 코흐.
유럽은 19세기까지도 흑사병의 치료법은커녕 원인조차 규명하지 못했다. 흑사병의 공포는 유럽에 만연했다. 흑사병의 공포에서 인류를 해방 시킨 사람은 세기의 라이벌인 프랑스의 루이 파스퇴르와 독일의 로베르트 코흐다.

파스퇴르의 업적은 포도주로부터 출발한다. 그는 포도주가 발효 도중 상하는 일이 반복되자 원인을 연구한 끝에 ‘세균’의 존재를 알아낸다. 동시대에 활동했던 코흐는 세균의 개념을 확장해 몸에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봤다. 코흐는 탄저균, 결핵균, 콜레라균까지 잇따라 발견하며 세균학사에 한 획을 긋는다.

프로이센-프랑스 간 전쟁(보불 전쟁)으로 앙숙이던 두 사람은 경쟁 끝에 결국 흑사병의 원인을 밝혀내게 된다. 파스퇴르의 수제자였던 알렉산드로 예르생과 코흐 문하에 있던 기타사토 시바사부로가 1894년 불과 며칠 차이로 흑사병원균을 발견한 것. 흑사병원균을 먼저 발견한 것은 기타사토였으나 균의 이름은 예르생의 이름을 딴 ‘예르시니아 페스티스’라고 불렸다.

알렉산더 플레밍
병의 원인은 알았지만 인류는 여전히 마땅한 치료 방법을 찾지 못했다. 이 난제는 영국의 의사 알렉산더 플레밍의 단순한 실수로 풀렸다. 포도상구균 샘플 배양 접시를 방치한 채 휴가를 다녀온 플레밍은 곰팡이가 배양 접시의 세균을 모두 죽인 것을 확인하고 곰팡이로부터 세균을 죽이는 성분 ‘페니실린’을 추출하는 데 성공한다.

어니스트 케인과 하워드 플로리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페니실린 대량 생산 체제 구축에 성공한다. 항생제의 대량 생산은 부상자의 2차 감염을 막으며 수많은 목숨을 구했다. 페니실린이 대량 생산된 덕분에 전 세계에서 펼쳐진 2차 세계대전의 사상자 수는 유럽 전선에 국한됐던 1차 세계대전 사상자 수와 큰 차이가 없다.

사실 인류는 문명 초기부터 식물로부터 추출한 성분을 진통제로 사용해왔다. 기원전 3000년 전 수메르 인들은 아편이 강력한 진통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고 이를 약으로 사용했다. 또 기원전 1500년 고대 이집트인들은 버드나무 껍질을 끓여 마시며 통증을 완화하기도 했다. 임 박사는 “인간의 면역체계가 발동할 동안 고통을 줄여주는 생약 성분은 가히 만병통치약이라 할 만하다”라고 했다.

머크 그룹이 생산한 초창기 모르핀.
민간요법처럼 사용하던 생약 성분을 이용해 최초로 현대 제약 산업의 기틀을 다진 사람은 독일의 약사 에마누엘 머크다. 그는 독일 학자 프리드리히 제르튀르너가 아편에서 뽑아낸 ‘모르핀’ 성분을 대량 생산하는데 성공한다. 독일을 기반으로 한 글로벌 제약·화학 그룹인 ‘머크’의 시작이다.

모르핀처럼 생약을 기반으로 한 진통제들은 모두 자연적으로 질소를 포함하고 있는 ‘알칼로이드’ 성분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모르핀의 성공 이후 전 세계에는 알칼로이드 광풍이 불기 시작한다. 서구 강대국들은 자신들의 식민지에서 알칼로이드인 대마, 카페인, 니코틴, 코카인, 퀴닌 등을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대량 재배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만병통치약’으로 여겨졌던 알칼로이드 계열은 양날의 검이었다. 강력한 진통 효과와 더불어 환각 작용과 중독성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1839년 벌어진 아편전쟁은 알칼로이드가 지닌 중독성이 국가 간 분쟁으로까지 비화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알칼로이드 계열 진통제에서 중독성을 제거한 진통제의 필요성이 제기된 이유다.

바이엘이 생산한 초창기 아스피린.
1853년 찰리 게르하르트는 버드나무에서 추출한 살리실산에 아세틸을 섞은 아세틸살리실산이라는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 냈다. 이 물질은 진통 효과는 있으면서 중독성이 없고 화학합성을 통해 만들어졌단 점에서 기존 알칼로이드 계열의 진통제와 궤를 달리했다.

염료공장 주인이던 프리드리히 바이엘은 아세틸살리실산에 주목해 이를 이용한 화학합성 진통제를 대량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최초의 화학합성 약품 ‘아스피린’의 등장이다. 아스피린 생산을 위해 바이엘이 설립한 회사가 바로 글로벌 제약기업 ‘바이엘’이다.

생약 기반의 머크와 화학합성 기반의 바이엘이 현대 제약 산업의 뿌리가 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