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이름값 하고 떠났지"…생명 불살라 7명 살린 故 김선웅군

by조해영 기자
2018.12.03 06:00:00

[2018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람들]
손수레 끌던 할머니 돕다 교통사고 당해 뇌사상태
생전 약속대로 7명에 장기기증하고 떠난 故 김선웅군
6살에 식물인간 상태 빠진 어머니 잃고 장기기증 서약

김선웅군. (사진=가족 제공)
[이데일리 조해영 기자] “전날까지도 고민했어요. 하루만 더 미루자고 해볼까, 이틀만 미룰까, 일주일만 더 지켜보고 결정해도 괜찮지 않을까.”

열살 아래 막냇동생을 떠나보내는 일이 쉬울 리 없었다. 김보미(30)씨는 마지막까지 망설였다고 했다. 주변에선 “내 동생이었으면 못 그랬을 거다”라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생각은 확고했다. 아버지의 굳은 얼굴을 보며 보미씨도 결심을 다잡았다.

2018년 10월 7일. 그렇게 김선웅(20)군이 눈을 감았다. 교통사고로 뇌사 상태에 빠진 지 나흘만이었다. 가족들의 뜻에 따라 선웅군의 장기는 7명에게 전달돼 그들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

김군은 지난 10월 3일 새벽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제주도 제주시 정부제주지방합동청사 인근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폐지를 실은 손수레를 끌고 언덕길을 오르는 할머니를 돕다 벌어진 일이었다. 어두운 새벽길에서 김군을 보지 못한 차량에 치여 뇌사 상태에 빠졌다.

장기기증 이야기를 처음 꺼낸 건 아버지 김형보(56)씨였다. “가망이 없을 것 같다”는 의사의 말에 아버지는 주저 없이 병원에 “장기기증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가족들은 아버지의 제안에 동의는 했지만 망설임이 없을 수는 없었다.

누나 보미씨는 “장기기증 수술을 하는 과정에서 숨이 끊어지게 된다는 설명을 들으니 마음이 왔다갔다했다”며 “주변에서도 ‘다시 살아날 수도 있지 않겠느냐’ ‘내 동생이었으면 그렇게 빨리 결정하지 않았을 거다’ 얘기하는데 흔들리더라”고 말했다.

사실 김군 가족에게 장기기증은 낯선 이야기는 아니었다. 김군이 6살이던 때 식물인간이 된 김군의 어머니는 3년을 꼬박 병상에 누워 있다 숨을 거뒀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김군 가족들은 장기기증을 서약했다.

“아버지는 엄마도 빨리 결정했으면 장기기증을 할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하시면서 막내도 붙잡아두기보단 그렇게 하는 게 낫다고 판단하신 것 같아요.”

아버지는 깨어날 가망이 없어 보이는 막내아들을 보며 그때의 서약을 떠올렸다. 가족들도 결심을 굳힌 아버지를 보며 장기기증 절차를 진행했다.

김선웅군(가운데)의 고등학교 졸업식 사진. (사진=가족 제공)
가족들에게 김군은 말썽 한 번 피운 일 없는 의젓한 막내였다. 오히려 너무 말수가 없고 조용해 아버지가 “친구들을 많이 못 사귀는 것 아닌가” 걱정할 정도였다.

하지만 김군이 떠난 뒤 누나가 열어 본 김군의 SNS엔 “장난을 치고 짜증 나게 해도 웃으면서 받아준 친구” “착하기만 했는데 그만큼 잘해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하다”는 친구들의 메시지가 가득했다.

티 내지 않았지만 가족에 대한 마음도 컸다. 김군의 카카오톡 메신저 비밀번호는 어머니의 기일이었다. 가족들과 함께 납골당을 찾을 때는 무덤덤한 척 했지만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컸다고 한다.

보미씨는 “나중에 동생 친구들에게 들어보니까 엄마와 관련한 노래를 들을 때 막내가 울기도 하고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많았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진로도 빨리 정했다.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부터 요리에 관심을 뒀다. 대학도 조리학과로 진학했다. 학교 수업시간에 만든 빵을 가져와 가족들에게 내밀기도 했다.

스무 살이 된 후인 지난 5월엔 처음으로 친구들과 제주도를 떠나 서울로 여행을 다녀왔다. 최근엔 ‘군대는 어디로 가는 게 좋을까’ ‘나중에 돈을 벌면 이런 차를 사고 싶다’ 같은 소박한 고민과 소망을 가족들에게 털어놨다.

김선웅군. (사진=가족 제공)
김군의 이야기는 사고 후 여러 차례 기사화됐다. 가족들은 처음에는 언론 인터뷰를 사양했다. 인터뷰할 때마다 김군의 빈자리가 계속 떠올라서였다.

하지만 막냇동생의 이야기를 접한 사람들이 장기기증을 생각해보고 결심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 세상을 향해 말문을 열었다.

보미씨는 “막내가 한 일을 보고 장기기증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으면 좋겠다”며 “가족으로서 그 과정을 지켜보는 일이 힘들긴 했지만 후회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김군의 이름은 한자로 선웅(善雄)이다. 착할 선에 영웅 웅을 쓴다. 가족들은 김군이 이름처럼 기억되길 바란다. 김군의 아버지는 막내아들을 떠나보내며 “우리 선웅이가 이름값을 제대로 하고 갔구나”라고 했다.

보미씨는 “나쁜 뉴스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막내가 한 일이 널리 알려져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