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쏠림보다 주 52시간 적용이 더 심각한 문제”

by신하영 기자
2025.03.07 05:10:00

■만났습니다-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석학교수
“기술경쟁력 유지하려면 주52시간 예외 불가피”
“의대 인재 유출보다 연구시간 제한이 더 심각”
“R&D인력 근무시간 제한 시 기술격차 커질 것”
“반도체 인재양성 지원, 대만은 10년 韓은 5년”

[이데일리 신하영 김윤정 기자] “의대 쏠림보다 주 52시간 적용이 더 심각한 문제다. 아울러 반도체 인재 양성 지원 사업에는 단절이 없어야 한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석학교수(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학회 회장)는 6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반도체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면서 이같이 강조했다. 반도체 기술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주 52시간 예외 적용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현재 여야는 반도체 특별법에 ‘반도체 연구개발 노동자에 한해 주 52시간제 적용을 배제한다’는 조항을 포함할지 여부를 두고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박재근 한양대 석학교수(사진=김태형 기자)
박 교수는 1985년부터 1998년까지 삼성전자 반도체·소재기술그룹 부장으로 재직하면서 삼성의 메모리 반도체 신화를 견인한 전문가 중 하나다. 그는 주 52시간 예외 적용 문제로 입법이 지연되고 있는 반도체 특별법에 대해 “특별법 제정 불발 시 한국 반도체 기술 경쟁력은 퇴보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반도체 연구·개발(R&D) 분야는 생산 인력과 달리 높은 기술 수준을 요구하는데다 기술을 습득하면서 연구를 지속해야 성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석·박사급 인재 양성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반도체는 과학기술 수준이 높아서 대학원 기반의 인재 양성이 필요하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반도체 기업 입사자 중 석·박사 인력은 약 11% 정도다. 대만은 반도체 분야에서 연간 1만명의 박사 인력을 배출하고 있다. 중국도 반도체 인력을 연간 25만명 가까이 배출하는데 그중 약 30%인 7만명이 석·박사 인력이다. 우리도 석·박사 인력 양성을 위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산업통산자원부 등이 대학원 지원 사업을 펴고 있지만 대부분 지원 기간이 5년이다. 반면 대만 등 경쟁국은 인력 양성 사업을 한번 시작하면 최소 10년 단위로 지원한다. 반도체 분야에서도 김대중 정부 때 시작한 두뇌한국(BK)21 사업과 같은 단절 없는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 성과를 못 내면 지원 대상을 교체하거나 예산을 삭감하더라도 반도체 인재 양성 사업은 꾸준히 지속돼야 한다.

△의대 정원 증원으로 입학 기회가 확대되면서 의대 지원자가 늘어난 것인데 걱정할 수준은 아니다. 의대 가는 학생과 반도체 학과에 오는 학생들의 수능 점수는 2~3점 차이다. 교수들은 이를 학생 간 능력 차이로 보지 않는다. 반도체공학과에 오는 학생들도 우수하기에 오히려 이 학생들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교육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공계 인재 1500명이 의대로 더 빠져나간다고 해서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미래가 흔들리는 것은 아니다.

△의대로 이공계 인재가 일부 빠져나가는 문제보다 주 52시간 예외 적용이 더 심각한 문제다. 주 52시간 예외 적용이 되지 않으면 한국의 반도체 기술 경쟁력은 타격을 받게 된다. 반도체 생산 분야는 주 52시간제를 적용해도 인력을 추가 투입하면 24시간 양산이 가능하지만 연구개발(R&D) 분야는 그렇지 않다. 생산직 인력은 일정 수준의 기술만 있으면 되지만, R&D인력은 높은 기술 수준을 요구받는다. 이 때문에 우수한 R&D 인력이 계속 기술을 습득하면서 연구를 지속해야 의미가 있고 성과가 나온다. 주 52시간제를 적용해도 다른 사람이 교대로 연구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 이는 현장을 몰라서 하는 얘기다.

대만의 TSMC만 해도 오전에 출근해 늦게까지 일하고 간혹 주말 근무도 하고 있다. 우리만 주 52시간을 적용해 삼성·SK 반도체 R&D 인력의 연구할 시간을 제한하면 대만과의 격차는 계속 벌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도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을 통해 고소득 R&D 인력의 근로 시간 규제를 면제하고 있다. 충분한 보상과 건강 관리 지원을 조건으로 해서라도 주 52시간제의 예외 적용이 필요하다. 인공지능(AI) 시대의 도래로 고대역폭 메모리(HBM) 생산이 매우 중요해졌다. 정부의 보조금 지원 근거를 담은 반도체 특별법 통과가 늦어지면 SK하이닉스의 경기 용인 공장 가동도 지연된다. TSMC가 미국 애리조나에 공장을 완공하는 데에 3년이 소요됐다. SK하이닉스의 용인 공장은 계획대로 진행해도 8년이 걸린다. 반도체특별법 입법이 늦어지면 공장 가동도 뒤로 밀릴 수 있다.



박재근 한양대 석학교수가 반도체 인재 양성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사진=김태형 기자)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렸다. 우리나라가 잘하는 분야는 메모리 반도체다. 디램은 아직도 중국보다 약 3년 정도가, 낸드플래시는 1년 정도가 앞서 있다. 낸드 플래시의 경우 중국 YMTC가 처음부터 ‘하이브리드 본딩’이란 이상적 기술을 적용했는데 우린 기존 기술로도 충분히 성능 좋은 제품을 만들고 시장 점유율도 1위라 그럴 필요가 없었다. 반면 중국 기업은 정부가 보조금을 주기에 한국처럼 수율·생산원가·이익을 중시하지 않아 이상적 기술을 먼저 적용할 수 있었다.

다만 중국이 무섭게 격차를 좁혀오는 것은 맞다. 특히 인공지능(AI) 반도체의 경우 HBM을 제외하면 중국이 우리보다 앞서 있다. 과학기술 수준의 척도로 볼 수 있는 네이처·사이언스지 발표 논문도 중국이 더 많다. 우리도 AI 반도체 칩을 만들려면 파운드리(위탁생산)가 필요한데 대학에서 칩을 연구·설계해도 삼성전자가 본연의 비즈니스 때문에 이를 생산해주기 어렵다. 하지만 중국 기업은 흑자를 내지 않아도 정부가 보조금을 주기에 이런 연구를 적극 지원한다. 지금은 미국이 중국에 대한 반도체 제재를 가하고 있어 우리가 앞서 있지만, 10년 후를 내다보면 중국이 우리를 앞설 가능성이 높다.

△최근 키옥시아가 332단 낸드플래시 기술을 공개했는데 생산 비용을 고려하면 의문이 생긴다. 기업이 고성능 제품을 만들어도 비용이 많이 투입되면 경쟁력이 없는 것이다. 반면 단수는 낮더라도 상대적으로 선호도가 높은 저렴한 제품을 내놓으면 경쟁력이 있는 것이다. 창신메모리의 제품은 생산비용이 높고 수율은 낮은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중국 정부가 보조금을 주기에 제품을 내수 시장에 공급할 수 있다. 반도체 시장은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로 PC·모바일 혁명에 이은 제3의 성장기를 맞고 있다. 엔비디아가 최근 피지컬AI 개발 플랫폼 ‘코스모스’를 공개하면서 시장 선점에 나섰는데, AI 시장이 생성형 AI에서 피지컬 AI로 확대되면서 더 많은 HBM이 필요하게 됐다. SK하이닉스가 이런 수요를 맞출 수 있도록 새로운 공장을 완공해야 하며 삼성도 HBM 생산 능력을 갖추고 이에 조속히 대응해야 한다.



△대학의 교수 채용 기준이 높은 점에서 한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교수가 되려면 박사학위가 있어야 하고 논문 실적도 필요하다. 하지만 기업에 재직 중인 반도체 전문가에게 논문 쓸 시간이 충분할 리 없다. 기업에는 우수한 전문 인력이 많지만 대다수가 박사학위가 없는 전문가다. 대학 나름대로 반도체 분야 교수를 많이 확보해야 하는데 이런 문턱 탓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각에선 교수 채용 기준을 낮추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대학 내 다른 학문 분야와의 형평성 문제가 생긴다. 다만 산업체 전문가도 교수가 되려면 논문을 써야 하고 기업에서도 이들이 논문을 쓸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 변화다.

△지금도 겸임교수제도를 최대한 활용해 부족한 교수 자원을 메꾸고 있다. 문제는 겸임교수의 고용 안정성이다. 기업들이 대학 겸임교수 확충을 위한 기금 출연을 검토했으면 한다. 대학은 지난 16년간 등록금을 동결하면서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다. 그렇기에 기업이 출연한 재원으로 기금교수제도를 만들어 대학이 가르칠 교수들을 적극적으로 확보하게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재료공학박사 △삼성전자 반도체·소재기술그룹 부장 △한양대 공과대학 융합전자공학부 석학교수(현) △지식경제부 차세대메모리개발사업단장 △교육과학기술부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운영위원 △한양대 대학원 나노반도체공학과장 △한양대 산학협력단장 겸 학술연구처장 △교육과학기술부 지식재산전문위원장 △산업통상자원부 산업기술보호위원회 위원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회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