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환경 정보공개 의무화, 업종별로 시기 앞당겨야"

by이정훈 기자
2021.04.08 06:11:00

연경흠 한국딜로이트그룹 ESG센터 이사 인터뷰
"쟁점 많은 탄소국경세, 2~3년 지나야 정립될 듯"
"그린본드 발행 급증…사후인증 도입해 고도화해야"
"자금유입 계속돼 ESG 투자수익률 계속 높아질 것"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국내 금융당국이 설정한 환경 관련 정보공개 의무화 시점은 지배구조에 비해 더디게 설정됐고, 이는 해외 사례를 봐도 다소 늦은 감이 있습니다. 산업군 별로 차등을 둬서 시기를 앞당기는 걸 검토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 지금부터 지표를 정량화하고 공개 절차나 방법 등을 마련하기 위한 논의에 착수해야 할 겁니다.”

연경흠 딜로이트 이사


15년 이상 환경관련 자문 경험을 쌓아 온 연경흠 한국딜로이트그룹 ESG(환경·사회·지배구조)센터 이사는 7일 이데일리와 화상으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최근 ESG 중에서 가장 부각되고 있는 환경(E) 이슈와 관련해 “철강이나 석유화학 등 탄소 배출이 많은 산업적 특성이 있는 기업들뿐 아니라 반도체나 전기전자 등 다양한 분야 기업들도 국내외 정부나 고객사, 시민단체 등으로부터의 요구가 강해지다 보니 적극적인 고민을 하고 있다”며 이 같이 조언했다.

특히 그는 “ESG 시대에는 기업이 창출하는 이익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달라진다”며 “기업을 둘러싼 이해관계자가 넓어졌고 그들이 지속 가능한 이익의 원천이라고 생각해야 하며, 그렇게 본다면 환경 이슈에 대한 대응을 단순한 비용으로만 볼 순 없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연경흠 이사와의 일문일답.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기후변화와 탄소중립, 재생에너지 등 환경 이슈가 기업들에게 큰 당면 과제가 됐다. 기업들이 느끼는 무게감은 어떤가.

△사실 우리나라는 개발도상국 중에서는 서둘러 배출권 거래제도를 시행해왔다. 그러다보니 기업들 입장에서는 탄소 배출과 관련해 어느 정도 피로감이 쌓인 상황이다. 특히 제조업 기반의 기업간 거래(B2B)업종 기업이 많다보니 글로벌 기업들을 주로 상대해야 하는데, 미국과 유럽연합(EU)에서는 이런 부분을 미리 준비해오다 보니 사업 상 고객사인 우리 기업에 대한 요구도 많은 편이다. 단순히 회사가 배출하는 탄소량을 줄어야 한다는 수준을 뛰어 넘어 좀더 적극적인 고민을 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어떤 업종들이 더 부담스러워 하는가.

△철강이나 석유화학업종 등 아예 고(高)탄소 배출업종들의 경우 불가피하게 고민의 크기가 클 수밖에 없다. 다만 이런 기업들은 속해 있는 산업군의 특성에 따른 것이지만, 반도체나 전자업종에 속한 기업들은 애플과 같이 기업·개인간 거래(B2C)에 속하는 가전소비재 고객사나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더 강한 요구를 받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기업들 부담이 훨씬 더 커졌다고만 할 순 없다. 기업 이익을 보는 관점이 달라졌다. 기업과 주주뿐 아니라 협력사와 시민환경단체, 지역사회까지도 기업의 이해관계자로 바라보는 게 ESG이며, 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기업 이익의 원천이라고 본다면 환경 관련 이슈를 단순 비용으로만 볼 순 없다. 환경 이슈를 따르지 않으면 기업의 이익 전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고 본다면 말이다.

-위기가 아닌 사업전환 등을 통한 기회로 보진 않나.

△산업별로 다른 것 같다. 앞서 언급한 철강과 석유화학업종은 정부 규제나 탄소국경세처럼 산업군 자체에 가해지는 부담이 커지는 반면 이를 풀 수 있는 해법 자체가 많지 않다보니 기회로 여기긴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가 기술 개발이나 사업 전환 등을 제도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와 같은 전기전자업종 기업들도 고객사가 RE100(재생에너지 100%) 등을 요구하니 따라가야 하는 상황이다. 그나마 자동차산업의 경우 일정 시점부터는 내연기관차를 팔 수 없게 되니 자연스럽게 전기차나 수소차 등 친환경차로 갈 수밖에 없다. 산업 포트폴리오가 달라지다보니 속도감이 다를 수밖에 없다.

-EU의 탄소국경세, 미국의 탄소국경조정세 등은 언제쯤, 어떤 방식으로 도입될까.



△점치기는 어렵다. 다만 지금까지만 놓고 본다면 EU는 내부적으로 논의가 많이 진행돼 오는 6월에 탄소국경세 도입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관련법안 도입을 준비한다고 한다. 현재로서는 2023년 시행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내외부적으로 공격을 많이 받고 있는데다 품목 단위로 세금을 매길 것인지, 지역단위로 조정할 것인지, 수출품이나 수입품 중 무엇을 대상으로 할 지 등 여러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또 EU는 역내 철강과 석유화학업종에 대해 배출권 유상할당 등에서 일종의 산업 보호장치를 두고 있는데, 이를 유지한 채 다른 국가 제품에 탄소국경세를 매긴다면 차별적 조치가 될 수 있어 세계무역기구(WTO) 등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런 이슈들로 인해 쉽사리 도입되긴 어려울 수 있다. 짧게는 2~3년, 길게는 5년 내에는 어느 정도 정립될 것으로 보인다. 이럴 경우 대체기술 개발에 10~20년 걸리는 업종은 당장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우리 정부가 기업들의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미국이나 EU 측과 협상을 갖고 요구할 부분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올들어 국내 기업들도 그린본드를 적극 발행하고 있다. 실제 수요가 많나.

△EU는 오래 전부터 발행이 많았고, 우리도 발행이 빠르게 늘고 있다. 작년 한 해 발행된 그린본드가 9600억원 어치라는데, 올해엔 1분기에만 이미 9500억원 어치 발행됐을 정도다. 다만 국내에서는 지금까지 사전 인증만 해 온 탓에 발행이 더 늘었을 수 있다. 발행하는 기업의 신고서만 봤다는 건데, 앞으로는 그렇게 조달한 자금을 제 목적에 제대로 쓰는 지 사후 인증까지 해야 한다. 그래야 투명성을 강화할 수 있다. 1차적으로 환경부가 발표한 그린본드 분류기준을 준용하되 향후엔 환경 평가방법을 검증하고 사후 인증을 하는 쪽으로 고도화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그린본드가 정립된다면 그에 붙는 프리미엄도 생겨날 수 있을 것이다.

-투자 사이드에서 환경 요인을 감안한 ESG 투자가 한창인데, 실제 투자 수익은 날 수 있나.

△최근에 ESG 투자와 그에 따른 수익률 간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 결과가 많이 나오고 있다. 자금들이 그 쪽으로 흘러 들어가다보니 투자수익률이 더 좋아지고 있다. 모건스탠리캐피탈인터내셔널(MSCI)이 내놓은 자료를 봐도 ESG 경영이 뛰어난 기업이 일반적인 기업보다 높은 투자 수익을 보였다는 사례는 계속 나온다. 물론 케이스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수익률은 달라질 수 있지만, 블랙록을 비롯한 굴지의 자금들이 ESG 투자로 계속 유입되고 있으니 ESG에 부합하는 기업에 투자할 때 나오는 수익률도 계속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일부에서는 ESG 투자 과열 우려도 한다.

△투자하는 자금의 흐름에 원칙이 없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지금 ESG 투자를 주도하는 연기금이나 대형 운용사들을 보면 명확한 투자원칙은 가지고 진행하고 있다. 이는 우리 국민연금도 마찬가지다. 이들 시장에 자금이 들어가면서 무분별한 기대심리보다는 명확한 수치로 수익률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면 ESG 투자자들의 관점도 덩달아 바뀔 것이다.

-전통적으로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기업이나 친환경사업을 추진하는 기업 등의 인수합병(M&A)이나 합종연횡이 늘 것 같다.

△기업들마다 체감하는 게 다르긴 하지만, 에너지나 석유화학 등 정책이나 규제 영향이 많은 기업들에선 변화가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도 석유산업에서 정유를 떼고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쪽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아예 바꾸고 있다. 석유화학의 경우 단순히 석유제품을 만들어 파는데서 끝나지 않아 이를 폐기하는 일까지 관심을 가져야 하는 만큼 이중산업과의 협업도 늘어날 것이다.

-최근 ESG 공시와 관련해 환경관련 정보공개 의무화를 앞당기자는 주장이 많다.

△공시 의무화 시점이 이슈이긴 하다. 기업지배구조보고서는 2022년부터 자산총액 1조원 이상 상장사에 의무화된 후 2026년에 전체 상장사로 확대되는 반면 지속가능경영보고서는 2025년까지 자율공시를 유도한 뒤 2030년부터 전 상장사로 의무화하기로 했는데, 이는 해외 사례를 봐도 다소 늦은 감은 있다. 따라서 금융 등 산업군별로 차등을 둬서 2025년까지든 시기를 앞당기는 걸 검토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다만 중요한 건 제대로 된 합의다. 재무지표와 달리 비재무적인 지표라 기준이나 절차, 방법 등을 정량화하고 일관되게 마련해야 한다. 지금부터 그 준비를 서두른다면 앞당겨 공개하는 것을 못할 것도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