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박서빈 기자
2020.11.09 00:10:59
중국 공청단 음력 3월 3일 '화복의 날' 지정
2019년부터 한족 의상인 '한푸(漢服)' 패션쇼 진행
한복과 유사한 복장으로 누리꾼 사이 논란
'동북공정' 논란에는 전문가 의견 갈려
중국 최대 포털사이트 바이두는 ‘화복의 날' 취지를 근본을 잊지 않고 나아가는 데 있다고 설명하며, '화복'의 뜻을 좁은 의미에서 한족 전통 의상을 넓은 의미에서 한족의 영향을 받은 기타 민족의 복식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그렇다면 누리꾼들의 주장대로 국풍대상 패션쇼에 등장한 망건과 갓은 우리 것이 맞을까? 전문가들은 논란이 된 의상이 조선 시대의 복식과 유사하는 데 큰 이견이 없었다. 국풍대상 무대에 나타난 망건과 갓이 조선에서 쓰이던 것과 유사하다는 것. 윤양노 중부대 패션디자인학과 교수는 “명나라 때 왕기가 저술한 '삼재도회(三才圖會)’를 보면 중국의 망건은 아래 쪽 이마 부분과 위 쪽의 머리를 덮는 부분이 이어져있고, 정수리 부분에서 상투만 나올 수 있게 되어 있다”며 “중국에서 망건이 유입되기는 했지만 조선에서 토착화되어 모양과 형태가 확연히 다르다"고 말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조선의 망건은 재료도 중국과 차이가 있었다. 중국이 명나라 태조 초기 사(紗)와 같은 투명한 비단 위에 짙은 옻칠을 해 망건을 만든 것과 달리 조선은 말 꼬리털을 재료로 사용했다. 그래서 이름도 ‘마미망건(馬尾網巾)’이다. 이는 여러 역사적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세종실록’은 1420년 임금이 명나라 사신들에게 마미망건을 선물하였으며, 이때 명나라 사신들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1488년 조선에 왔던 명나라 사신 동월(董越) 역시 ‘조선의 망건은 모두 말총으로 만든다’고 기록한다. 전문가들은 이외에도 모자 양옆의 깃털 장식 또한 우리 의상 중 하나인 ‘주립’과 유사하다고 분석했다. 주립은 양옆의 호수(虎鬚, 호랑이 수염) 장식이 특징인 모자로 왕의 행차를 수행하거나 외국의 사신으로 나갈 때 주로 착용됐다. 이어 "중국 화복의 날을 기념한 행사에 우리 전통복과 유사한 복식이 등장한 것도 위의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며 “조선족의 역사가 중국사에 포함된다고 보기 때문에 중국 전통복 패션쇼에 한복을 등장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은 중국이 동북공정, 서남공정, 서북공정 등 역사공정에서 기본으로 삼는 논리다. 현재 중국 땅에 있거나 과거 지금의 중국에 있었던 모든 민족의 역사가 곧 중국의 역사와 직결된다는 의미다.
“이제 대놓고 한복 가져가네.”
지난 5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게시물 제목이다. 작성자는 여러 장의 사진과 함께 “(중국 전통복) 한푸 패션쇼에 한국의 한복과 95% 비슷한 옷이 나온다”며 “갓과 망건을 그대로 가져갔다”고 주장했다. 이어 “쪽수 앞에 장사 없다고 저런 식으로 동북공정이 이어지면 10년 뒤에는 우리 전통의상이 중국의상을 따라 만든 것처럼 인식될 수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해당 게시글은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퍼져 나갔다.
여러 곳으로 퍼진 게시글의 댓글에는 “하나씩 야금야금하다 우리나라 사람도 중국 소수민족이라 주장하겠다”, “나중에 조선의 옷이 아니라 조선이 자기들 것이라 하려고 하는 중”, “남의 문화 도둑질. 국가 차원에서 대응 못 하냐”는 누리꾼들의 분통이 잇따랐다.
중국 전통복 패션쇼 맞나?
논란이 된 사진들을 확인해보니 일부 사진에 나온 의상은 중국에서 열린 '한푸(漢服)' 패션쇼에서 선보인 의상이 맞았다.
이 행사는 '國風大賞((국풍대상)'으로 중국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지도 아래 중국 최대 인터넷쇼핑몰 알리바바 계열인 '天猫國潮(천묘국조, Tmall Guchao)' 등이 지난 7월 개최한 화복 문화 행사였다. 지난해에 이어 두번째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人民日報)는 이 행사소식을 전하면서 "2018년 공청단 중앙이 음력 3월 3일을 '중국 화복의 날(中國華服日)'로 정해 수천년 된 한푸 문화를 널리 알리고 부흥시키려고 한다"며 "이에 힘입어 천묘국조가 2019년부터 한푸 문화 혁신 패션쇼 국풍대상을 만들었다"고 보도했다.
갓과 망건 우리 것?
주요무형문화재 제66호 망건장 책자는 오히려 "17세기 경에는 중국의 망건 양식이 조선의 영향을 받아 조선식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한다.
이상은 세계전통복식문화원 원장은 “주립의 탄생 배경은 명확하다"며 "온천을 향하던 조선 18대 임금 현종이 보리 풍년을 매우 기뻐하며 신하들에게 보리 이삭을 꽂으라 명한 데서 유래됐다"고 설명했다.
실제 조선 21대 임금 영조 때 편찬된 '연려실기술별집'에 따르면 현종 때 신하들이 보리 이삭을 꽂아 풍년을 기념했던 일이 융복에 호수를 하는 것으로 전해졌고, 이후 금군(禁軍) 중 가난하여 호수를 갖추지 못한 이들이 옛 일에 따라 보리 이삭을 대신해 사용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어 이 원장은 "모자에 깃털 등을 꽂는 모습은 고구려 안악삼호분벽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며 "깃털을 꼽는 형태는 우리 복식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동북공정' 일환 논란... 전문가 "단정하기 어려워"
하지만 이를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보아야 한다는 누리꾼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금기숙 유금와당박물관 관장은 "동양 3국은 평면적 의복으로 서로 유사한 점이 많다"며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기 때문에 동북공정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단편적으로보면 (누리꾼들의 주장은) 대부분 맞는 이야기"라면서도 "복식은 수학 공식처럼 한 마디로 정의 내리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조법종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현재 중국은 56개 소수민족을 중화민족이라는 하나의 민족 개념으로 만들려고 한다"며 "동북공정 논리 중 하나인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에 따르면 대중동포의 역사는 모두 중국 역사에 포함된다”고 말했다.
“우리 옷 지키려는 노력 필요”
한편 전문가들은 우리 옷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지금보다 더 많이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상은 세계전통복식문화원 원장은 "국가적 차원에서 학문적으로 우리 옷임을 입증할 수 있는 학술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적극적인 노력을 펼쳐야 한다"며 "(중국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세계적으로 우수한 우리 옷의 맥을 이어가도록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윤양노 중부대 패션디자인학과 교수도 "한복은 우리나라에서 시대와 역사를 반영하며 변화하고 발전한 역사적 전통성을 지닌 의상"이라며 "한복 문화 지원 육성에 대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 스냅타임 박서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