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양희동 기자
2020.04.23 05:00:01
12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 ''超격차'' 전략으로 극복
''코로나19'' 사태가 시스템반도체 체질 개선 기회
''EUV'' 선점 및 소·부·장 국산화..산업 생태계 구축
[이데일리 양희동 기자] ‘코로나19’가 우리나라 수출에 입힌 타격이 이달 들어 수치로 속속 확인되고 있다. 관세청 집계에 따르면 이달 들어 20일까지 우리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26.9%(하루 평균 16.8%), 수출 주력 상품인 반도체는 14.9% 급감했다. 국내 코로나19 확진자는 하루 10명 안팎 수준으로 줄며 진정 국면에 들어섰지만, 전 세계적인 국경 폐쇄와 이동제한, 생산시설 셧다운(가동 중단)의 거센 후폭풍은 쓰나미처럼 시차를 두고 밀려들고 있다. 특히 세계 1·2위인 D램 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는 코로나19로 인한 스마트폰 수요 급감이 2분기부터 본격화되면, 전체 매출의 40% 가량인 모바일 D램부터 직격탄을 맞을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 반도체 산업은 절체절명의 위기도 극복할 수 있는 ‘면역 항체(抗體)’를 가지고 있다. 12년 전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삼성전자는 그해 4분기 9400억원의 영업손실을 냈고, 메모리 사업이 적자의 60%를 차지했다. 이는 2000년 이후 20년 간 삼성전자의 유일한 적자다. 이 시기 삼성전자는 업황에 좌우되는 ‘천수답(天水畓·빗물 농사)’ 성격이 강한 메모리 사업의 약점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 마련에 몰두했다. 그 결과 메모리 시장에서 차세대는 물론 차차세대 제품까지 대비해 경쟁사와의 기술 격차를 수년 이상 벌리는 ‘초(超)격차’ 전략을 도입하며 위기를 돌파해냈다. SK하이닉스도 2008년 한해 2조원에 육박하는 영업손실을 냈고 2007년 4분기부터 2009년 2분기까지 7분기 연속 적자를 냈지만, 현재 세계 2위 D램 업체로 우뚝 섰다. 과감한 선제 투자와 기술 개발로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우리 반도체 산업의 면역 항체가 빛을 발한 결과다.
업계에선 이번 코로나19 위기를 한국 반도체 산업의 새로운 도약 기회로 삼아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우리 반도체 기업들은 2017~2018년 ‘메모리 슈퍼사이클’로 사상 최대 실적 행진을 벌였지만, 지난해부터 급격한 D램 값 하락 및 업황 악화, 미·중 무역분쟁, 일본 수출 규제 등 연이은 악재로 영업이익이 수직 낙하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해 4월 ‘2030년 시스템반도체 세계 1위’를 목표로 133조원 투자를 결정했고, 메모리 치중에서 벗어난 사업 체질 개선에 박차를 가해왔다. 특히 신성장 동력으로 삼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분야에선 극자외선(EUV) 기술을 세계 최초로 도입하고, 올 2월 EUV 전용 ‘V1’라인을 본격 가동했다.
삼성전자가 시동을 건 시스템반도체 산업은 메모리에 비해 업황의 부침이 적은 특성과 함께, 코로나19로 인한 언택트(untact·비대면) 수요 증가로 우리 반도체 산업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 주요 생산시설이 셧다운되는 가운데 파운드리 라인은 대부분 국내에 있어 가동 안정성도 높다. 여기에 현재는 일본·미국 등에 100% 의존하고 있는 소재·부품·장비(소부장) 분야도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국산화에 박차를 가한다면, 밸류체인(공급망)을 포함한 시스템반도체 산업 생태계를 구축할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