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2시간, 눈물의 리허설]②2→3교대 전환 등 中企 '발등의 불'

by권오석 기자
2019.10.10 04:50:00

내년 1월부터 50∼299인 中企 주당 근로시간 68→52시간
화장품·건자재·의료기기 등 전업종 주52시간제 준비 한창
근무교대 방식 조정·해외 생산 비중 확대 등 방법 구사
하지만 아직 39% 준비 못해 "처벌유예기간 등 보안책 절실해"

[이데일리 강경래 권오석 기자]직원 80여 명을 둔 화장품 업체 A사. 이 회사는 올해 중국 등 외국으로부터 들여오는 화장품 원재료 가격이 지난해와 비교해 5% 정도 올랐다. 여기에 지난 2년 동안 최저임금이 큰 폭으로 오르면서 인건비는 10%가량 늘어났다. 매출액이 커지면 원재료 가격과 인건비 상승을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다. 하지만, 올 들어 내수경기 부진과 함께 해외 시장도 미중무역분쟁 같은 악재가 더해지면서 올해도 전년과 비슷한 매출액 200억 원 수준에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두 달 후엔 근무 시간을 주당 52시간으로 줄여야 한다. A사 대표는 “인사팀에서 주52시간제 적용에 따른 인력 충원과 근무시간 조정 등을 준비 중이지만 현재까지 시행에 들어간 조치는 없다”며 “경기는 어려운데 인건비와 원재료비 등 운영비만 늘어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주52시간제 도입을 앞두고 중소기업들은 근무방식을 바꾸거나 외주 생산을 늘리는 등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일각에서는 해외 생산 비중을 늘리고 자동화설비를 도입하는 등 ‘일자리 늘리기’라는 주52시간 도입 취지를 무색하게 만드는 방법을 구사하기도 한다.

9일 업계에 따르면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줄이는 내용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두 달 후인 내년 1월부터 50∼299명 사업장에 확대 적용된다. 주52시간제는 지난해 7월부터 상시근로자 300명 이상인 대기업·중견기업 사업장에 도입됐다. 5∼50인 사업장은 2021년 7월부터 적용된다.

중소기업들로선 ‘발등에 불’이다. 천안에 본사를 둔 건자재업체 B사는 현재 생산직 200여 명이 2교대로 근무하는 방식을 3교대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B사 관계자는 “현재 사측이 노조 측과 3교대 도입 시기와 방법 등을 두고 막판 협상 중”이라며 “근무방식 변경에 따라 인력을 확충하거나 외주 생산 비중을 늘리는 등 비용이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통근버스 운행시간을 조정하는 방법으로 52시간제 대응에 나서기도 한다. 경기 일산에 위치한 전자부품업체 C사 관계자는 “근무시간을 엄수하기 위해 오후 8시 30분까지 운행하던 통근버스를 오후 6시 30분까지만 단축해 운영키로 했다”고 말했다.

해외 공장에서 생산하는 비중을 늘리는 한편, 부족한 일손을 자동화설비로 대체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의료기기업체 D사는 중국에 공장을 짓고 올 하반기부터 가동에 들어갔다. D사 대표는 “수주량 증가에 따라 당초 기존 국내 공장 인근에 증설하는 방안을 검토했다”며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부쩍 늘어난 인건비 부담과 함께 주52시간제 등에 부담을 느끼고 결국 중국 진출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표면처리업체인 E사는 인력을 채용하는 대신 자동화 설비를 도입했다. E사 대표는 “자동화설비를 들이는 데 올해 들어 수억 원을 투입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인력을 뽑는 것보다 비용적인 측면에서 낫다고 판단했다”며 “앞으로도 인력을 늘리는 대신 자동화설비를 확충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주52시간제 도입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제도 시행시기를 늦추거나, 처벌유예기간(계도기간)을 부여하는 등 보안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와 관련, 고용노동부가 50∼299명 사업장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현재까지 주52시간제에 따른 준비를 못한 곳이 39%에 달했다. 현 상황이라면 중소기업 10곳 중 4곳이 법을 위반하게 되는 셈이다. 이들 기업은 주52시간제 준비를 하지 못한 이유로 ‘인건비 부담’(53.3%)과 ‘주문량 예측 불가’(13.7%) 등을 꼽았다.

하지만 주52시간제를 중소기업에 안착을 위한 법안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난 8월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 법안에는 △200∼299명 사업장은 2021년 △100∼199명 사업장은 2022년 △50∼99명 사업장은 2023년 △50인 미만 사업장은 2024년으로 관련 제도 시행시기를 늦추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민주당 간사 한정애 의원이 3월 초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현재까지 여야가 합의하지 못한 상황이다.

김경만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내수시장 위축과 함께 미중무역분쟁과 한일경제전쟁 등 글로벌 여건도 부정적으로 바뀌면서 중소기업은 안팎으로 어려운 경영 환경에 내몰려 있다”며 “여기에 최저임금 인상에 이어 주52시간제 도입 등 노동정책이 더해지면서 어려움이 가중된다”고 말했다. 그는 “처벌유예기간을 최소한 6개월 이상 부여하고, 현재 계류 중인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역시 빠른 시일 내 국회를 통과하는 등 보안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동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