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가 무의미해지는 날까지"...엄마가 딸에게 준 선물

by김보영 기자
2019.04.20 06:00:00

홍윤희 이베이코리아 커뮤니케이션부문 이사 인터뷰
장애용품 구매하며 겪은 불편, 전문 쇼핑몰로 탄생
접근권 보장 위해 장애인 환승·현장학습 지도 제작

지난 18일 서울 강남구 이베이코리아 본사에서 만난 홍윤희 이베이코리아 커뮤니케이션 부문 이사가 이데일리와 인터뷰 중 장애인 전문 의류 브랜드 ‘베터베이직’의 의류들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이베이코리아)
[이데일리 김보영 기자] 장애인의 날(20일)을 이틀 앞둔 지난 18일. 서울 강남구 이베이코리아 본사에서 만난 홍윤희 이베이코리아 커뮤니케이션 부문 이사는 “아이 한 명을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속담이 있다”며 “장애를 가진 아이를 제대로 키워내기 위해서는 지역 사회는 물론 국가 차원에서의 노력과 도움의 손길을 더욱 필요로 한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중학교 1학년인 딸은 태어나자마자 척추암 판정을 받았다. 10여번의 항암치료를 거쳐 암이 완쾌됐지만 후유증으로 하반신이 마비돼 휠체어를 타야만 움직일 수 있는 몸이 됐다. 엄마는 딸이 마주할 가혹한 휠체어 밖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꿔주고 싶었다. 장애용품 전문 쇼핑 플랫폼 ‘옥션 케어플러스’와 ‘서울시 지하철 교통약자 환승지도’는 그렇게 탄생했다.

딸을 위한 홍윤희 이사의 도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데일리는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이베이코리아 안팎에서 장애인들을 위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를 만나 앞으로의 도전 계획을 들어봤다.

홍윤희 이사와 그의 딸 지민 양. (사진=홍윤희 이사)
이베이코리아가 운영 중인 옥션 케어플러스는 최근 국내 오픈 마켓 최초로 뇌병변·발달 장애인을 위한 의류 브랜드 ‘베터베이직’을 선보였다.

베터베이직은 뇌병변 장애아동 자녀를 둔 어머니인 박주현 대표가 만든 장애인 전문 의류 브랜드다. 몸에 강직이 심해 옷을 입히기 힘든 뇌병변 장애인과 발달장애인의 신체적 특성을 고려해 입기도, 입혀주기에도 편한 디자인에 피부 자극을 최소화한 재질로 의류를 제작했다.

홍 이사는 “장애인들의 수요를 고려했지만 비장애인도 입기 편한 유니버셜 의류를 표방하고 있다”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입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의의”라고 설명했다.

케어플러스는 베터베이직과 같이 장애인들이 일상 생활을 누리기 위해 필요한 상품들을 모아 놓은 온라인 장애용품 전문관으로 지난 2016년 말부터 운영하기 시작했다. 장애를 가진 딸을 키우며 부족한 정보에 필요한 용품 하나 제대로 구입하는데 어려움을 겪은 홍씨의 지난 경험이 고스란히 반영된 아이디어다.

홍 이사는 “장애아동을 키우는 부모는 아이가 보다 편리한 생활을 누리기 위해 어떤 상품을 구입해야 하고 이를 어디서 구입할 수 있는지 정보가 부족해 곤란을 겪을 때가 많다”며 “일례로 우리 아이는 그간 화장실 문 앞 바닥에 턱이 있어서 혼자서는 화장실을 드나들 수 없었다.나중에서야 우연히 정보 검색으로 이같은 불편을 해결해주기 위한 ‘실내 경사로’란 게 있음을 알았다. 단 돈 4만원으로 실내 경사로를 구입한 뒤 아이가 집 안 곳곳을 자유롭게 드나들 자유란 게 생겼다. 이런 정보를 혼자만 알고 있기 아까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이런 정보들을 교환하면 이를 찾고 검색하는 시간과 스트레스를 단축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장애인이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용품들을 카테고리별로 모아놓은 코너나 쇼핑몰이 있다면 일일이 상품을 찾아야만 하는 장애인 가정의 수고를 덜어줄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아이디어를 썩히기 아까워 사내 아이디어 콘테스트에도 공모하고 회사 담당자들에게 끊임없이 이를 제안했다. 회사에서도 장애인 소비 시장이 규모가 작지만 성장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보고 이를 수용해줬다”고 덧붙였다.

아직까지 장애인들 대부분이 필요한 장애용품을 국내에서 구입하기 쉽지 않은 현실이다. 업계에서 시장 규모가 작다고 여겨지고 있다 보니 혁신이나 관련 기술 발전에 나서는 국내 업체를 찾아보기 어려운 탓이다. 홍 이사는 “시장에 뛰어들 업체들이 많아져야 경쟁이 생기고 그 속에서 혁신과 기술 발전이 생겨나는데 지금 국내 장애인 상품 시장은 굉장히 경직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베이코리아는 이같은 분위기를 바꿔보고자 장애인들을 위한 좋은 취지로 운영되는 스타트업들을 발굴하고 케어플러스에 입점시켜 지원하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수동형 휠체어를 전동형 휠체어로 변형시킬 수 있는 키트를 개발한 ‘토도 웍스’와 세계 최초 점자 스마트워치를 만든 ‘닷’ 등이 대표적인 예다.

지난해에는 케어플러스에 발달장애인들을 위해 필요한 상품들을 모아놓은 코너를 따로 마련하기도 했다.



홍 이사는 “그 전까지는 딸이 가진 장애와 비슷한 유형을 지닌 분들의 불편사항들에 대해서만 알고 있었는데 케어플러스를 운영하고 나서 훨씬 다양한 장애를 지닌 분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이 분들에게 여러 피드백을 접하면서 장애인들이 어떤 다양한 수요와 불편을 겪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됐고 ‘소비자로서 존중 받는 기분’이라는 긍정적 피드백을 받을 때마다 큰 보람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들어서는 장애아동의 부모나 장애인들에게 아이디어를 공모해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방법들도 고려 중”이라고 덧붙였다.

홍윤희 이사가 무의 활동가, 서울 도심권 50 플러스 센터와 함께 제작한 서울 지하철 교통약자 환승 지도. (사진=홍윤희 이사)
홍 이사의 행보는 이베이코리아 안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2016년 ‘장애를 무의미하게 만들자’는 뜻의 협동조합 ‘무의(muui)’를 만들어 장애인 복지 사각지대·인식 개선 활동을 진행 중이다. 그의 딸 지민이가 그를 이처럼 적극적인 활동가로 거듭나게 한 동기이자 원천이다.

지난 2016년부터 꾸준히 제작 중인 ‘서울시 지하철 교통약자 환승지도’ 프로젝트도 지하철 타기를 좋아하는 딸과 이를 직접 이용하고 지켜보며 겪은 애로사항들이 개선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탄생했다.

홍 이사는 “딸과 지하철을 이용하던 중 동선이 복잡한 환승역에서 내린 적이 있다”며 “당시 휠체어 리프트가 고장이 나 있어 역무실에 전화했더니 ‘그 구간은 우리 호선 담당이 아니니 다른 환승 호선 역무실에 전화하라’며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에 화가 났다. 고치려는 생각도 하지 않고 리프트가 고장났으니 돌아서 길을 이용하라는 무책임한 대응을 보며 지도 제작을 결심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환승 지도는 무의에서 활동하는 청년 활동가들과 ‘서울 도심권 50 플러스 센터’의 협업으로 수시 업데이트하고 있다. 도심권 50 플러스 센터는 50세 이상 은퇴한 중장년층들이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취지의 조합이나 기업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구할 수 있게 알선을 돕는 곳이다.

홍 이사는 “교통약자 환승 지도는 청년 활동가들의 도움으로 센터에서 파견된 비장애인 어르신들이 직접 휠체어를 타고 20개역 이상 돌아다니며 불편 사항을 체크해 업데이트 하고 있다”며 “세대 간 오해와 갈등을 줄이고 비장애인이 조금이라도 더 장애인의 눈높이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세상이 오길 희망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까지 40개역 180여개 구간의 환승 지도가 업데이트 됐다. 이르면 내달 초 웹사이트 등을 통해 업데이트된 환승 지도를 공개할 계획이다.

홍 이사는 최근 중학교 1학년이 된 딸의 고민을 지켜보며 새로운 사회공헌 활동에 착수했다.

건축 감리 기업인 한미 글로벌의 임직원들과 자원봉사활동으로 ‘서울시 현장 체험 학습 지도’를 제작하는 프로젝트다.

그는 “휠체어 전용통로는 비장애인 통행로와 다르게 동선이 짜여 있다”며 “지민이는 이 때문에 현장 체험 학습을 갈 때마다 친구들과 함께 다니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고학년이 될수록 활동 보조 선생님이 아닌 친구들과 현장 체험 학습을 즐기고 싶어하는 딸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특히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할 시 통행이 어렵다보니 현장체험 학습을 가기 전 제 시간 안에 현장에 도착하고 다른 학생들과 동선을 맞추기 위해 일일이 경로를 검색해 동선을 짜야할지 머리를 싸매는 일이 부지기수라고 했다. 홍 이사는 “휠체어 장애인들의 고충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고자 서울 시내 박물관 등 주요 현장체험학습장소 동선을 알려주는 지도를 제작해 장애인들의 접근권을 조금이라도 높이고자 이 프로젝트를 기획했다”며 “지도를 제작하며 발견되는 문제점들을 최대한 세상에 알려 개선될 수 있게 노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홍 이사는 이같은 활동들을 통해 보다 많은 장애인들과 장애아동 부모들이 용기를 가지고 목소리를 내는 게 소망이라고 했다.

“비슷한 종류의 문제와 고민을 가진 부모들이 모여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눌 수 있는 분위기와 환경이 조성됐으면 좋겠어요. 고민을 털어놓고 문제를 제기하면서 저와 같은 장애아동 부모들이 마음의 위안과 안정을 찾고 해결책을 내기 위해 목소리를 낼 수 있거든요. 장애아동을 키우며 감내해야 할 모든 부양 책임과 애로사항을 가정에만 전가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바꿀 수 있게 우리 모두가 힘을 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