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주매각·유상증자 동시 진행…아시아나 매각 속도낸다

by김정남 기자
2019.04.16 06:00:00

아시아나 향후 매각 절차 어떻게
''통매각이 가치 평가에 유리'' 판단
에어부산, 에어서울, 아시아나IDT…
자회사도 함께 묶어 매각 계획

(그래픽=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이데일리 장순원 김정남 기자]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우량자산 아시아나항공을 팔기로 결단한 것은 매각 외에는 답이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국적항공사가 매물로 등장하면서 인수합병(M&A) 시장은 벌써부터 들썩이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그룹 매출의 60% 이상을 책임지는 알짜 자회사다. 박 전 회장이 특별히 아꼈던 분신과도 같은 회사다. 그런데도 박 전 회장과 그의 아들인 박세창 아시아나IDT 사장이 15일 오전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의 이동걸 회장을 만나 “아시아나항공을 즉시 팔겠다”고 한 것은 그 자체로 이례적이다.

이번 아시아나항공 사태는 ‘욕심이 부른 화(禍)’로 요약할 수 있다. 주목받은 건 아시아나항공의 특이한 자금조달 방식이다. 은행 대출, 회사채 발행, 기업 어음 등이 아니라 미래에 수령하게 될 매출채권을 유동화해 판매한 자산유동화증권(ABS)의 규모가 조 단위였던 것이다. 올해 2월 기준 ABS(1조502억원) 비중은 전체 차입금의 34.0%에 달한다. 장단기 차입금(15.5%), 회사채(6.8%) 등보다 높다. 항공업황이 좋지 않은 데다 대외 변수가 크다는 리스크에도, 어쨌든 아시아나항공은 재무구조 개선에 ABS를 적극 활용했다.

문제가 된 건 ABS 발행 조건에 포함된 ‘트리거(추가 제재가 가해지는 자동개입 조항)’. 당장 오는 25일 유일하게 신용등급이 매겨진 회사채 만기가 돌아오면서, 무등급 트리거 우려가 제기됐다. 새로 신용등급을 받지 못하면 1조원 규모의 유동성 위기에 처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추후 신용등급이 한 단계만 하향돼도 역시 조 단위 빚 독촉에 시달리게 된다. 채권단 한 관계자는 “만기가 임박한 빚을 막는다고 해도 이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인식도 컸다”고 했다. 현재 아시아나항공의 차입금 규모는 3조895억원이다.

그와 더불어 산은과 박 전 회장간 ‘악연’도 새삼 거론된다. 박 전 회장이 2002년 그룹 회장에 오르며 무리하게 공격 경영을 하는 와중에 인수한 대우건설은 현재 산은의 관리 하에 있다. 2017년 산은의 금호타이어 매각 과정에서 생긴 감정의 골도 깊다.

이번 아시아나항공 매각으로 박 전 회장의 그룹 재건의 꿈도 무너졌다. 금호는 박 전 회장이 ‘금호고속→금호산업→아시아나항공’으로 수직계열화해 지배하는 구조다. 매출 60% 이상을 책임지는 아시아나항공이 사라지면 중견그룹으로 위상 추락이 불가피하다. 남은 사업군은 금호고속, 금호산업, 금호리조트뿐이다.

향후 관심사는 어떻게 매각할지, 또 누가 살 지다. 금호 측이 이날 산은에 제출한 수정 자구계획안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 매각은 구주매각 및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진행된다. 금호산업이 가진 구주(33.47%, 6868만8063주)를 제3자인 특정 대기업집단에 매각하는 동시에 구주를 사들인 대기업집단이 신주도 인수하는 3자 배정 유상증자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증자를 통해 자금이 확충되면 조 단위의 빚 부담에 시달리고 있는 아시아나항공의 재무구조도 개선될 수 있다. 채권단은 이같은 절차를 통해 새로운 주인이 50%가 넘는 지분을 확보해 경영권을 넘겨받는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구주매각과 유상증자를 동시에 진행하는 것은 M&A 속도를 끌어올리기 위한 복안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이후 금호그룹에서 완전 분리된다. 시장에서는 이미 SK, 한화, 신세계, CJ, 애경 등 유력 후보군의 이름이 거론된다.



금호 측이 아시아나항공과 함께 에어부산, 에어서울, 아시아나IDT 등 자회사를 묶어 ‘통매각’을 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것도 주목된다. 애초 시장에서는 아시아나의 재무구조를 개선하려 분리매각을 예상하는 목소리가 컸지만, 이와는 반대 결과가 나왔다. 이는 자회사들이 아시아나항공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고, 자회사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함하면 통매각이 회사 가치를 높이 평가받을 수 있다는 판단의 결과다. 시장에서는 아시아나항공 계열사까지 통매각하면 전체 매각가가 1조원 안팎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다만 인수자가 요청할 경우 별도 협의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을 둬 길은 터놨다. 한두개 자회사를 놓고 이견이 생겨 전체 M&A를 그르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구주에 대한 드래그얼롱(Drag-along, 동반매각요청권) 조항이 삽입된 점도 눈에 띈다. 드래그얼롱은 주식을 매각하면 다른 주주도 같은 조건으로 지분을 넘겨야 하는 조건이 걸린 옵션이다. 가능성이 크지는 않지만, 아시아나항공 매각이 틀어졌을 때를 대비한 안전장치 성격이다. 채권단은 아시아나항공 M&A를 조건으로 신규 자금을 지원할 계획인데, 이번에 매각이 불발된다면 채권단이 출자전환 등을 통해 지분을 일부 보유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드래그얼롱 조항을 넣어두면 소수지분으로도 다시 M&A를 추진할 수 있다.

금호 측은 그 대신 당장 닥치는 유동성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채권단에 5000억원 규모의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채권단 자금이 추가로 투입되면 유동성 위기는 넘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채권단에서는 영구채 방식의 지원이 유력하게 논의되고 있다.

채권단은 일단 금호 측의 자구계획안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산은은 자구계획안을 받은 직후 채권단 회의를 소집했고, 10개 채권은행들은 “긍정적으로 본다”며 “향후 경영 정상화를 위한 지원 방안을 함께 모색할 것”이라고 했다.

국적항공사 아시아나항공은 당장 M&A 시장의 대어로 떠오르고 있다. 거론되는 기업들은 “사실 무근이다” “계획이 없다”며 부인하고 있지만, 인수전이 본격화하면 상당수가 뛰어들 것으로 보인다.

막강한 자금력의 재계 순위 3위 SK그룹은 가장 유력한 후보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해 7월 이후 불거진 인수설에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혀왔지만, 최근에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SK그룹이 최남규 전 제주항공 대표를 수펙스추구협의회 글로벌사업개발담당 총괄부사장으로 영입한 것도 인수설의 배경이다.

한화그룹도 유력 후보다. 방위사업을 하는 데다 국내 유일 항공엔진 제조 기업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계열사로 두고 있어서다. 항공운송사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외에 국내 1위 LCC 제주항공을 보유한 애경그룹, 면세점 사업과 시너지가 가능한 신세계그룹, 물류업계 강자인 CJ그룹 등도 언급되고 있다.

(그래픽=이데일리 김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