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표 '압수수색 사전심문제' 어디로가나 [검찰 왜그래]

by이배운 기자
2023.08.26 10:10:10

압수수색 ''사실상 예고'' 논란…검·경·공 ''화들짝''
''범죄 대응력 상실'' 법조계 우려에 도입 잠정보류
이균용 "깊이 생각 안해봤다"…도입 강행 안할듯

[이데일리 이배운 기자] 6년의 임기 동안 이념편향, 재판지연, 코드인사 등 숱한 논란을 남긴 김명수 대법원장 퇴임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퇴임을 앞두고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을 추진해 법조계에 큰 파장을 몰고 왔지만, 반발에 부딪혀 실제 도입은 무산되는 분위기입니다.

김명수 대법원장 (사진=연합뉴스)
지난 2월 김명수 대법원은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를 6월부터 도입한다는 내용의 형사소송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습니다. 사전심문제는 법원이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하기 전에 피의자와 변호인을 불러 심문하는 제도를 일컫습니다.

아울러 개정안에는 휴대전화 등에 저장된 전자정보를 압수수색하려면 영장 청구서에 ‘분석에 사용할 검색어’ 등 영장 집행계획을 적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습니다. 수사기관의 무분별한 압수수색을 통제하고 피의자의 기본권을 보호한다는 취지였습니다.

이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법조계는 ‘화들짝’ 놀랐고 가장 크게 놀란 곳은 역시 검찰이었습니다. 당시 한 검찰 고위관계자는 “수사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조치”라고 분개하며 “피의자 인권 보호도 물론 중요하지만,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

범죄자들은 수사가 시작됐음을 알아채면 곧바로 증거인멸에 나서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압수수색은 범죄자 모르게 은밀히 준비하고 신속하게 실시하는 게 핵심입니다. 그런데 압수수색 영장 발부 전에 판사가 사건 피의자, 변호인, 관계자를 불러 심문한다는 것은 사실상 압수수색을 ‘예고’하고 수사 방향을 알려주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전자정보 압수수색 집행 제한도 논란이 되기는 마찬가집니다. 단적인 예시로, 마약 범죄자들은 마약을 ‘별사탕’ ‘얼음’ ‘밀가루’ ‘사1탕’ 등 각종 은어로 표현하고 고의로 오타를 넣기도 합니다. 이런 은어(검색어)를 사전에 완벽하게 예상해 영장 집행계획에 적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대검찰청은 즉각 “주요 선진국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제도”라며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문을 내놨고, 경찰청도 “수사의 밀행성과 신속성 저해를 우려해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며 사실상 반대의 뜻을 표했습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역시 “피해자 보호에 역행하고 불완전한 압수수색에 따른 실체적 진실 발견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이균용 신임 대법원장 후보자가 지난 23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 도착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이밖에 대한변호사협회, 학계, 정치권도 ‘수사기관이 범죄 대응 능력을 상실할 수 있다’며 일제히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결국 대법원은 사전심문제 도입을 잠정 보류했고 김명수 대법원장 주재로 열리는 마지막 대법관 회의에도 이 문제는 안건으로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는 지난 23일 김 대법원장을 면담하러 가는 길에 취재진을 만나 “무너진 사법 신뢰를 회복하겠다”며 김 대법원장과 다른 노선을 예고하고, 사전심문제 관련 질문엔 “깊이 생각 안 해봤다”고 일축했습니다. 각계의 반발을 무릅쓰며 제도 도입을 강행할 가능성은 작다는 관측에 무게가 실립니다.

사전심문제 논의가 재개되더라도 여론이 호응할지 역시 미지수입니다. 최근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킨 흉악 범죄 소식이 잇따르면서 피의자에 엄정한 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여론을 의식한 듯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최근 “과거 정부는 피의자 인권에 대해 많은 조치를 했다”며 “이제는 피해자의 인권 부분도 충분히 고려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사법부 정상화를 핵심으로 내건 이균용 후보자가 취임하자마자 수시 기관과 대립각을 세울 이유가 없다”며 “논의를 전면 백지화하기보단 언급 자체를 안 해 자연스럽게 잊히도록 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