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헌의 혁신@미술]<4> 낯설게 보라…시선을 비틀면 길이 있다

by오현주 기자
2020.07.10 04:10:00

▲세계를 합리적으로 보게 한 원근법
르네상스 시대 창안한 회화혁명 '원근법'
미술사서 '관점의 전환' 이끌어낸 대사건
위계적 배치 아닌 합리적 표현 중요해져
"뉴노멀시대 시선의 차이가 혁신 만든다"

‘이상적인 도시’(Ideal City). 이탈리아 초기 르네상스 화가이자 건축가인 루치아노 라우라나가 1470년경 그린 것으로 전한다. 광장바닥의 선이 건물 주 기둥선과 일치하는, 르네상스의 공간이라 할 ‘원근법’의 질서를 완벽하게 들였다. 작품명 그대로 ‘이상적인 세계’를 상징하며, 원근법이 그 상징을 현실구조로 만들어내고 있다. 나무패널에 템페라로 그렸다. 67.7×239.4㎝. 이탈리아 우르비노 마르케국립미술관 소장.




[이주헌 미술평론가] ‘코로나 19’의 위력이 사그라질 줄 모른다.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을 뿐 아니라 세계 경제를 크게 위축시켜 놓았다. 나아가 사람들의 생활양식마저 전면적으로 바꿔놓고 있다.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면 일상을 회복할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그렇게 돼도 일상과 비즈니스가 예전과는 다른 양태로 전개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많다. 이른바 ‘뉴노멀’의 도래다. ‘언택트’가 내내 화두로 남아, 비대면 서비스와 원격진료, 온라인 스포츠 등이 크게 부상하는 등 디지털 문화가 더욱 활성화할 것이라고 한다.

이런 사회적 변화는 사회 구성원들에게 삶과 세계에 대한 관점(perspective)의 대전환을 요구한다. 대전환의 시기에는 더 이상 과거의 관점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관점을 변화시킴으로써 새로운 그림을 그려야 살아남을 수 있다. 관점을 변화시키려면, 우선 시선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지금까지 중시해왔던 것들로부터 눈길을 돌려야 한다. 그러면 새로운 풍경이 눈에 들어오고 우리의 망막에는 새로운 원근법(perspective)이 형성된다. 새로운 관점이 생기는 것이다.

△접착제는 강력할수록 좋다?…관점 깬 3M 포스트잇

관점의 전환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서는 ‘포스트잇 노트’의 개발 일화가 잘 말해준다. 포스트잇은 3M에 다니던 두 연구원 스펜서 실버와 아서 프라이가 개발했다. 원래 실버가 만들려던 것은 초강력 접착제였다. 그러나 갖은 노력 끝에 나온 결과물은 저(低)점착성 접착제였다. 사물에 충분히 붙어있을 만한 점착도를 지니고 있었지만 떼면 또 잘 떨어졌다. 실버는 이 접착제가 나름의 용처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회사와 동료들의 반응은 그리 긍정적이지 못했다. 사내 세미나도 여러 차례 열고 토론회도 가졌지만 접착제는 강력할수록 좋다는 관점에서 아무도 벗어나지 못했다. 이 관점을 깬 사람이 프라이였다.

당시 프라이는 교회 성가대원이었는데, 악보를 표시하기 위해 책갈피를 꽂아놓으면 자꾸 떨어져 불편한 점이 많았다. 해결책을 찾던 그의 눈에 실버의 접착제가 들어왔다. 아무리 봐도 그 접착제는 책갈피용 접착제로 딱이었다. 잘 붙어있고 뗄 때도 악보에 흠을 주지 않는 책갈피. 그렇게 새로운 관점이 형성되자 그의 아이디어는 붙였다 뗐다 하는 메모지로 진화했다. 3M은 이를 상품으로 출시했고, 우리가 알 듯 오늘날 없어서는 안 될 인기 문구용품으로 자리 잡았다. 관점의 변화는 이처럼 ‘아무런 가치를 찾을 수 없는 것’에서 엄청난 가치를 찾게 해준다.

서양미술사에서 관점의 중요성을 크게 인식하게 만든 대사건 중 하나가 원근법의 창안이다. 영어 단어 자체가 드러내듯 관점을 뜻하는 영어 ‘퍼스펙티브’(perspective)는 사실 원근법이라는 뜻도 함께 지니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에 이 원근법이 창안됨으로써 미술가들은 전혀 새로운 관점,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차별화한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표현하게 됐다.

원근법을 창안한 이는 15세기 피렌체의 건축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1377∼1446)다. 건축도면 가운데 투시도는 건물을 완성했을 때 실제로 어떻게 보일지를 평면 위에 미리 보여주는 그림이다. 투시도를 그리려면 원근법을 알아야 한다. 바로 이 원근법을 몰라 그때까지의 건축가들은 자신이 설계한 건물이 완성된 뒤 실제로 어떻게 보일지 정확히 그릴 수 없었다. 이에 답답함을 느낀 브루넬레스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그의 손에는 거울처럼 사물이 반사되는 은판이 들려 있었다. 브루넬레스키는 생각했다.

“다 지어진 건물을 한 지점에서 보이는 그대로 그린 뒤 이것을 원래의 설계 도면과 비교해 보면 새로 지을 건물의 정확한 투시도를 그릴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은판을 거리 한가운데 고정해 세워놓은 브루넬레스키는 거기에 반사된 건물의 모습을 그 판 위에 윤곽을 따라 정확히 그렸다. 몸을 움직이면 판 위의 건물도 움직이므로 그림을 그리는 동안은 미동도 할 수 없었다. 이런 식으로 그림을 그려낸 뒤 브루넬레스키는 사물이 멀어지며 축소될 때는 수학적 비례에 따라 줄어든다는 사실과 사물이 줄어드는 각도대로 선을 그어보면 모든 선들이 한 점, 곧 소점(소실점)에서 만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철로가 일정한 폭을 지녔음에도 멀어질수록 한 점에서 만나는 것처럼 보이는 원리가 바로 이 원근법의 원리다.

△보는 것처럼 공간을 평면에 표현…서양미술사 대혁신

15세기 이탈리아 화가 루치아노 라우라나(1420?∼1479)가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이상적인 도시’(1470년경)는 브루넬레스키가 그렸을 피렌체 거리의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그림이다. 화면 왼쪽과 오른쪽의 건물들이 거리가 멀어질수록 점점 작아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줄어드는 각도에 따라 선을 그으면 한 점에서 만나리라는 것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다만 화면 한가운데 커다란 건물이 있어 그 만나는 점, 곧 소실점을 가렸다. 원근법의 원리를 잘 드러내 보이는 그림이 아닐 수 없다.



브루넬레스키의 발견은 서양미술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공간을 평면 위에 실제 우리가 보는 것처럼 합리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후 사진을 보는 것 같은 박진감 넘치는 공간 묘사가 서양미술을 압도하게 됐다. 거대한 ‘혁신’이 일어난 것이다.

프랑스화가 카미유 피사로(1830∼1903)가 그린 ‘몽마르트르 거리’(1897). 파리의 한 호텔 객실에서 내려다본 몽마르트르 거리의 다채로운 풍경을 담은 연작 14편 중 한 점, ‘구름 낀 아침’이다. 평행하게 시작한 앞쪽 두 선이 저 멀리 한 점에서 만나는 원근법을 따르고 있다. 73.0×92.0㎝. 호주 멜버른 빅토리아국립미술관 소장.


원근법에 대한 지식이 없던 먼 옛날에는 그림을 그릴 때 ‘위계에 따른 배치’가 중요했다. 중요한 대상이면 화면의 위나 중앙에 놓고 중요하지 않은 대상은 주변에 배치했다. 물론 중요한 대상은 크게 그리는 경우도 많았다. 제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중요하지 않은 대상이면 주변에 작게 그렸다. 그러니까 시각적 원근이 아니라 심리적·정서적·이념적 원근이 중요했던 것이다. 이는 수직적인 사회질서에 대한 관념을 반영하는 것으로, 개인이 아니라 전체, 그 가운데서도 지배층의 관점을 대변하는 표현이라 하겠다. 물론 고대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어느 정도 사실적인 공간 표현이 이뤄졌지만, 원근법이 보여주는 것 같은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표현은 끝내 이루지 못했다.

브루넬레스키의 원근법이 사회문화적으로 크게 의미 있는 부분은, 이 법칙이 기본적으로 개인·주체를 중시하는 사회의 관념을 대변한다는 것이다. 이는 서양문명이 개인에 대한 관념과 개인주의를 고도로 발달시킨 문명이라는 사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다른 문명에서는 브루넬레스키의 원근법과 같은 법칙을 창안한 적이 없다. 물론 개인주의도 서양만큼 발달하지 않았다. 원근법은 왕이 보든, 걸인이 보든 동일한 유기체로서 인간이 볼 때 지각하는 똑같은 현상을 묘사한 것이다. 거기에는 심리적·이념적 위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개인이 모든 것 위에 있다는 관념이 발달하지 않고는 조형적으로 ‘원근법=관점’을 의식하고 표현하는 일이 쉽지 않다. 그러니까 원근법은 전체나 집단, 지배층의 관점이 아니라 개인의 관점을 중시하는 태도의 반영인 것이다.

△다른 관점, 다른 시각, 다른 아이디어가 창조의 원동력

이런 의식이 깔린 원근법이 발달하면서 서양에서는 개인의 관점을 중시하는 태도가 발달할 수밖에 없었고, 개인은 저마다 다른 관점을 갖고 있다는 사실 또한 중시하게 됐다. 전체의 관점에서는 별 차이가 없는 것도 개인의 관점에서는 다양한 차이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바로 이 차이를 통해 다른 관점, 다른 시각, 다른 아이디어, 다른 생각이 부각돼 새로운 창조와 혁신의 기회가 생겨난다. 동일성이 아니라 차이가 혁신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남이가”로는 새로운 답을 찾기가 쉽지 않다. 관점을 바꿔야 하고 그러려면 우선 시선을 다른 방향으로 돌려야 한다.

문제에 부딪쳐 기존의 관점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을 때 우리는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낯선 사람을 만나고 낯선 음식을 먹고 낯선 예술과 새로운 스타일의 여가를 즐길 필요가 있다. 시선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면 관점이 바뀌고 관점이 바뀌면 혁신이 일어난다.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1883∼1950)가 말한 창조적 파괴와 그에 따른 혁신도 근본적으로는 지속적인 관점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가치 창조와 궤를 같이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탈리아 피렌체 거리에서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돔’을 바라보는 필리포 브루넬레스키.
이탈리아 르네상스 건축가를 나열할 때 가장 앞줄에 세운다. 고전을 모티브로 비잔틴·이슬람 건축기법을 융합한 15세기 르네상스 건축양식의 창시자로 꼽힌다. ‘첫’이란 의미도 적잖은데, 명성에 걸맞은 건축물까지 줄지어 세웠다. 고향 피렌체를 무대로 한 ‘오스페달레 델리 인노첸티’(1429), ‘산 로렌초 성당’(1421~1446), ‘파치 가 예배당’(1430) 등이 있다. 하지만 그중 압도하는 작품은 흔히 ‘피렌체 대성당’이라 부르는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에 들인 거대 ‘돔’(1436)이다.

건축사에 길이 남을 이들 업적도 모자란듯, 미술사에도 대단한 족적을 찍었는데 ‘원근법’의 창안이 그것이다. 인간의 눈에 보이는 3차원 입체를 2차원 평면에 표현하는 기하학적·수학적 방법론. 공간의 깊이를 들여다본 ‘회화의 혁명’이 그의 손끝에서 시작된 거다. 이후 소실점을 한 곳으로 고정한 선적 원근법은 서양회화의 표준이 됐고, 그림은 대부분 인간의 눈과 소실점을 잇는 높이로 그려졌다. 그에게 원근법이 필요했던 이유는 의외로 단순한 것으로 전해진다. 건축을 의뢰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미리 보여주기 위해서, 이른바 ‘투시도’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이주헌 미술평론가는…

미술로 삶을 보고 세상을 읽는다. 좀 더 많은 이들이 미술을 통해 일상의 풍요를 누리도록 글 쓰고 강연하는 일이다. 소명으로 여긴다고 했다. 발단이 있다. 홍익대 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뒤 돌연 일간지 기자가 되면서다. 그림에 관심을 잃어서가 아니라 그림을 막은 생계 때문이었다. 낮에 일하고 밤에 그리자 했다. 하지만 ‘투잡’은 쉽지 않았다. 미술담당 기자생활에서 얻은 필력과 생각을 가지고 현장으로 나왔다. 미술을 대중과 제대로 연결하는 미술평론가의 ‘진정한’ 역할, 그것을 해보자 했다. 그렇게 가나아트 편집장을 하고, 학고재 관장을 오래 한 뒤 서울미술관 초대관장까지 지냈다. 지금은 양현재단 이사로 있으면서 온전히 글과 강연에만 집중하고 있다. 지은 책이 수십 권이다. 굳이 대표작을 꼽자면 ‘리더의 명화수업’(2018), ‘역사의 미술관’(2011), ‘지식의 미술관’(2009), ‘50일간의 유럽미술관 체험 1·2’(2005)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