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부활' 의심한 태영호?...당내서도 "오버하지 마"

by박지혜 기자
2020.05.04 07:00:00

[이데일리 박지혜 기자] 4·15 총선에서 탈북민 출신임에도 미래통합당 후보로 서울 강남(갑)에 출마해 국회 입성에 성공한 태영호 당선인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건재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3일 페이스북에 김 위원장을 부활한 예수에, 태 당선인을 예술의 부활을 의심한 제자 도마에 합성한 그림을 올렸다. 또 다른 제자 얼굴에는 태 당선인과 같은 탈북민 출신의 지성호 미래한국당 당선인의 얼굴이 합성됐다.

원래 이 그림은 죽은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난 예수의 부활을 믿지 못했던 제자 도마가 예수 손바닥의 못 자국을 직접 만져 확인한 뒤 믿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 위원장의 거동 불편설과 사망설을 제기한 태 당선인과 지 당선인이 김 위원장이 살아 있다는 것을 실제로 보고서야 믿게 됐다는 것을 꼬집은 것이다.

사진=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 페이스북
태 당선인을 향해 “(김 위원장 관련) 정보가 있으면 스파이”라고 해 설전을 벌였던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김병기 민주당 의원은 “세계에서 북한 문제에 대해 가장 전문가가 누굴까?”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국가정보원 고위 간부 출신인 김 의원은 “국내외 자료는 물론이고 북한에 대한 특수 출처 자료를 모두 보고 판단하는 사람이 전문가일 것”이라며 “북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제반 요소 중 한 분야에서만 20~30년 정도는 근무한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곳이 정보기관”이라고 했다.

이어 “제가 재직 시에 북한 분야에 근무하는 선배들에게 생각없이 물어보면 거의 예외없는 대답이 돌아온다. ‘(난 경제 분야라 정치 분야는) 잘 모르지 뭐’”라며 “평생을 근무한 분들도 자기 분야 이외에는 좀처럼 말하지 않는다. 진정한 고수다. 수많은 첩보를 검증하고 조각조각을 맞춰서 하나의 판단을 내린다. 그런 판단조차도 가끔 틀리는 경우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러니 제발 좀 안보 관련 발언은 국익을 위해 신중에 신중을 기하자”고 당부했다.

이 밖에도 김두관, 강병원, 황희, 박찬대 등 민주당의 다수 의원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태 당선인과 지 당선인을 비판하며 당 차원의 징계를 촉구했다.

청와대에서도 두 당선인에 대한 유감 표명이 나왔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기자들을 만나 태 당선인과 지 당선인을 향해 “깨끗하게 사과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이 상황에서도 근거 없는 주장을 한 것은 상당히 유감스럽다”고 비판했다.

특히 태 당선인이 추가로 제기한 ‘카트 의혹’에 대해 “뇌졸중 앓았던 분들만 탈 수 있는가”라는 반박도 나왔다.

태 당선인은 지난 2일 입장문을 통해 오류가 있었음을 인정하면서도 “과연 지난 20일 동안 김정은의 건강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던 것일까”라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공개한 사진 중 김 위원장 뒤에 등장한 차량을 그 근거로 들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노동절이었던 지난 1일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에 참석했다고 조선중앙TV가 2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이 이동용 카트에 앉아 박봉주 국무위원회 부위원장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는 “그(김 위원장)의 아버지 김정일이 2008년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살아 나오면서 짧은 거리도 걷기 힘들어 현지 지도 때마다 사용하던 차량이 다시 등장한 것을 보면서 저의 의문은 말끔히 지워지지가 않았다”고 했다.

그가 언급한 사진은 북한이 공개한 김 위원장의 노란색 카트 탑승 모습을 가리킨다. 노동절인 지난 1일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김 위원장이 이동용 카트에 앉아 박봉주 국무위원회 부위원장과 대화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북한은 이러한 태 당선인의 주장이 무색하게 다른 사람의 부축이나 지팡이 등 도움 없이 혼자 활기차게 걷는 김 위원장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공개했다.

태 당선인과 지 당선인에 대한 비판은 통합당 내부에서도 나왔다.

지난 4·15 총선에서 통합당 소속으로 서울 송파병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3일 페이스북을 통해 “결과적으로 태영호, 지성호 당선인의 억측과 주장은 믿을만한 정보 자료의 미흡과 과거 유사 사례의 패턴 분석에서 실패한 것이다. 잘못된 것”이라며 “너무 확실하게, 너무 자신 있게 공개적으로 주장한 잘못까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더욱이 틀린 주장이 입증되었으면 겸허하게, 쿨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 변명을 거듭하거나 정치적 쟁점화로 대응하는 것은 우리 야당의 신뢰가 추락하는 결과가 된다”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마지막으로 “제발 실력을 갖추자. 제발 오버하지 말자. 제발 ‘동굴’에 갇히지 말고 합리적이고 균형 있는 사고를 확대하자”고 일침을 가했다.

정원석 전 통합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상근대변인도 페이스북에 “탈북을 대표했으면 상징적으로 새로운 통일 담론과 비전을 제시해야지, 그저 반북 정서에 편승한 ‘앗싸 김정은 죽었다’ 발언으로 스스로 가치를 떨어트리는 모습은 실망스럽다”고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정 전 대변인은 “제가 태 의원이면 북한 외교체계에 관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우리가 어떤 글로벌 역학관계에 근거한 차별화된 전략대응으로 살아남을지 시리즈 별로 발표하겠다”면서 “그리고 지 의원이라면 꽃제비 시절 목도한 경험을 더욱 살려 민주당이 그토록 좋아하는 인권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하겠다”고 조언했다.

그는 “당신들은 이슈 던지는 유튜버가 아니라 미래 대한민국의 통일 담론을 상징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이다”라면서 “그리고 명심하라. 본인들께서 잘못 하면 그 피해는 오롯이 자유와 생존을 위해 목숨을 걸고 넘어오신 귀한 탈북 동포들에게 갑절 이상의 먹칠을 한다는 것을”이라고 강조했다.

지성호(왼쪽)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당선인과 태영호 미래통합당 서울 강남갑 당선인(사진=뉴시스)
김 위원장의 ‘부활’로 ‘대북 소식통을 통해 확인했다’는 지 당선인의 사망설은 하루 만에 ‘가짜뉴스’가 됐다.

특히 탈북한 지 14년이 지난 지 당선인과 주로 영국에서 활동한 태 당선인이 가진 대북 정보력에 대한 의구심을 넘어, 국회의원으로서의 신뢰도 추락을 자초한 셈이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이번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설 관련 논란에 대해 “이른바 ‘대북소식통’ 보다는 ‘한국 정보당국’을 신뢰해야 한다는 것을 언론이 확인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