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P2P 대출 사기 금융위도 몰랐다

by박종오 기자
2020.02.12 04:20:00

금융위원장 금융혁신 칭찬한 팝펀딩 사기 의혹
연체율 45% 폭등…1600억 묶인 투자자 `발동동`
‘박원순·문재인 펀드’로 눈길…국책은행 업무도 대행
라임사태 이어 팝펀딩까지…규제완화 속도조절론

[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금융위원회가 ‘금융 혁신’의 모범 사례로 선정한 P2P(개인 간) 대출 업체가 사기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됐다. 이 회사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자금 마련을 위한 ‘문재인 펀드’를 내놓는 등 새로운 금융 상품을 선보여 유명세를 탔다. 하지만 대출 사기 의혹으로 투자자들의 원금 손실 가능성이 커지면서 정부의 관리·감독 책임이 도마 위에 오를 전망이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말 P2P 대출 업체인 ‘팝펀딩’의 대출 취급 실태를 검사하며 이 회사가 사기, 횡령, 자금 유용 등 불법을 저지른 혐의를 포착해 최근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검사팀이 신용정보법 위반에 의한 사기 정황 등을 발견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개인이나 법인의 명의를 동의 없이 이용해 가상의 대출을 일으키고 투자금을 모집한 의심 사례 등을 적발했다는 것이다.

(그래픽=김정훈 기자)
팝펀딩은 홈쇼핑 업체 등에 납품하는 영세 중소기업의 재고 물품이나 매출 채권(외상값 받을 권리) 등을 담보로 잡고 투자자로부터 돈을 모아서 회사에 빌려주는 ‘동산 담보 대출’ 상품을 주로 취급해 왔다. 2018년부터는 자산운용사와 손잡고 이 같은 동산 담보 대출 상품에 개인이 십시일반으로 투자할 수 있는 사모펀드를 선보여 고금리 투자 상품을 찾는 자산가들의 호응을 얻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앞서 지난해 11월 말 경기 파주시 팝펀딩 물류 창고를 직접 방문해 이 회사를 ‘동산 금융의 혁신 사례’라고 추켜세웠다. 팝펀딩 상품이 금융권의 보수적인 부동산 담보 중심의 기업 대출 관행을 개선하려는 정부의 정책 방향과 맞아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금융위는 민간 기업의 대출 상품을 소개하는 보도자료도 냈다.

그러나 팝펀딩의 사기 의혹이 불거지면서 금융위도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지난해 말까지 10% 미만에 불과했던 팝펀딩의 대출 연체율(전체 대출 원금 중 한 달 이상 상환이 지연된 연체액 비율·사모펀드 투자액 포함)이 금감원 검사 이후 45%까지 치솟으며 투자금을 떼일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팝펀딩 대출 상품과 연계한 사모펀드 상품을 각각 75억원, 55억원어치 판매한 한국투자증권과 하나금융투자도 지난해 말부터 펀드 만기가 돌아오자 환매(투자금 환급) 일정을 3~5개월가량 연기한 상태다. 팝펀딩의 대출 잔액은 현재 1646억원에 이른다.

신현욱 팝펀딩 대표는 “올겨울이 예년보다 따뜻했던 탓에 담보로 잡은 전기 매트, 패딩 점퍼 등 겨울철 상품의 판매가 부진해 일시적으로 자금 사정이 어려워진 것 뿐”이라며 “금감원이 지적하는 사기 혐의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은 위원장의 현장 방문 행사를 담당했던 금융위 관계자는 “금감원과 사전에 협의하고 문제가 없다고 해서 업체를 방문한 것”이라고 했다.





지난 7일 오전 찾은 경기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의 NHN(035420) 본사(플레이뮤지엄). NHN이 지분 19%가량을 투자한 P2P 대출 업체인 팝펀딩은 이 건물 3층에 입주해 있었다. 회사의 대표번호로 전화해도 연결이 되지 않고, 사무실은 출입구 통제로 접근할 수 없었다. 투자자라면 답답한 노릇이다.

어렵게 연락이 닿은 신현욱 팝펀딩 대표는 “회사에는 직원 몇 명만 남아있고 (나는) 자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에 와 있다”며 “3월 안으로 펀드 환매(투자금 환급) 중단 문제 등을 다 정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가 ‘금융 혁신’의 모범 사례로 꼽은 팝펀딩이 사기 의혹에 휘말리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당장 대출 연체율이 40% 넘게 치솟고 만기가 지났지만 돌려주지 못한 펀드 투자금도 130억원에 달한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왼쪽)이 지난해 11월 26일 경기 파주시 팝펀딩 물류 창고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금융위원회)
11일 업계에 따르면 팝펀딩이 주력으로 취급해온 상품은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동산 담보 대출(이커머스 대출)’이다. 이 대출 상품은 개인 투자자나 사모펀드로부터 모은 투자금을 온라인 쇼핑몰 등에 납품하는 중소기업에 선불로 빌려주는 것이 특징이다. 기업이 받은 대출금으로 상품을 생산하거나 구매해 완성품(담보)을 다시 팝펀딩 물류 창고에 입고하면, 팝펀딩이 상품이 쇼핑몰에서 팔릴 때마다 배송을 대신 해주고 판매 대금으로 대출금을 회수하는 구조다.

신용도가 낮은 영세 중소기업은 사업 자금을 쉽게 마련하고 투자자는 연 10%대(사모펀드 투자자는 5~6%) 이자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주목받았다. 팝펀딩의 대출 잔액 1649억원 중 약 80%(1305억원)가 이 같은 법인 사업자 대상의 담보 대출이다.

팝펀딩 측은 최근 대출 연체율 상승과 펀드 환매 중단이 담보로 잡아둔 상품의 판매 부진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신 대표는 “올겨울 날씨가 너무 따뜻해서 대출해준 업체로부터 입고된 전기 매트나 패딩 점퍼 등 겨울철 상품이 거의 팔리지 않았다”며 “상품 판매가 부진하면 계약에 따라 투자금을 댄 자산운용사가 우리에게 대출 채권(중소기업에 빌려준 대출 원리금을 돌려받을 권리)을 다시 사가라고 요구할 수 있는데, 회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 이상으로 채권 매수 청구가 들어와서 사고가 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가격을 낮춰서 물건을 매각하면 회사의 손실이 너무 커지기 때문에 자금을 구해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고 했다.

그러나 팝펀딩을 사기 혐의로 수사 의뢰한 금융감독원 견해는 다르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상품 판매 부진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 관계자는 “팝펀딩 검사 과정에서 과거 수사기관에 넘긴 다른 P2P 업체들과 거의 비슷한 정황을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지난 2018년 국내 P2P 업체 178개 회사의 대출 실태를 검사해 20개사를 검찰·경찰에 수사 의뢰하거나 정보를 제공했다. 대주주가 투자금을 임의로 가져다 쓰거나 대출 돌려막기를 하는 등 사기·횡령을 한 혐의다. 이와 유사한 주먹구구식 자금 운용이 지금의 팝펀딩 사태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만약 팝펀딩이 투자금 상환에 나서도 투자자 간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채권·채무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어서다.

예를 들어 팝펀딩은 A중소기업에 10억원을 대출하면서 증권사에서 판매한 사모펀드를 통해 8억원을 조달하고, 나머지 2억원은 개인 투자자로부터 P2P 상품에 직접 투자받는 식으로 상품을 쪼개서 팔았다. 사모펀드를 설계한 자산운용사는 팝펀딩으로부터 중소기업의 대출 채권(대출 원리금 돌려받을 권리)을 넘겨받고, P2P 상품에 직접 투자한 개인 투자자도 대출 원리금을 수취할 권리를 갖고 있다. 팝펀딩이 A업체가 납품한 담보물을 처분하거나 외부 자금을 조달해 투자금 상환에 나설 경우 누가 먼저 돈을 돌려받느냐를 놓고 투자자 간 다툼이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신 대표는 “2년 전에도 담보 처분 업체가 부도나면서 대출 연체율이 20% 가까이 올라갔지만, 중국에까지 상품을 처분하는 등 노력한 결과 투자금 전액을 상환했다”며 최근의 유동성 위기도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팝펀딩의 대출 상품을 펀드로 만들어 운용 중인 자산운용사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팝펀딩이 판매한 중소기업 대출 상품의 상당수는 운용사를 통해 사모펀드 형태로 투자금을 조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투자증권이 판매한 팝펀딩 연계 펀드 상품을 설계한 자비스자산운용 관계자는 “현재 법률 자문을 하며 해결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팝펀딩 연계 펀드를 운용 중인 자산운용사를 상대로 현황 점검에 착수한 상태다.







투자자에게 돈을 돌려주지 못해 논란을 빚은 팝펀딩은 과거 이색적인 투자 상품을 선보여 금융 시장의 눈길을 끈 업체다.

2011년 선보인 이른바 ‘박원순 펀드’가 대표적이다.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 예비후보는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시민들에게 선거 자금을 빌려쓰고 선거 종료 후 국고 보조금으로 비용을 보전받으면 빌린 돈과 이자를 되돌려주는 이색 펀딩을 시도했다. 최소 약정액인 10만원 이상을 빌려주면 석달 뒤에 연 3.58% 이자를 붙여주겠다는 것이다. 팝펀딩이 자체 플랫폼을 제공해 사인 간 금전 거래 방식의 선거 자금 모집을 중개한 결과 사흘 만에 5778명이 총 38억8500만원을 입금했다.

만화가 강풀이 그린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룬 웹툰(인터넷 연재만화) ‘26년’도 정치적 외압에 의한 투자 철회 논란 속 팝펀딩과 굿펀딩을 통해 영화 제작비를 마련했다. 시민들의 소액 기부·후원 방식으로 돈을 모은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도 인연이 깊다. 지난 2012년과 201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박원순 펀드’와 같은 구조의 ‘문재인 펀드’를 출시해서다. 특히 지난 19대 대선을 앞두고 선거 자금 모집에 나선 문재인 펀드엔 1시간 만에 4488명이 329억원을 입금했다. 당시 모금한 돈은 3개월 뒤 연 3.6% 이자를 붙여 원금과 함께 투자자에게 상환됐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3월 팝펀딩을 ‘지정 대리인’으로 선정했다. 지정 대리인 제도는 금융회사의 핵심 금융 서비스를 신생 핀테크(디지털 기술을 결합한 새로운 금융 서비스) 기업이 최장 2년간 위탁받아 대신 수행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국책은행인 IBK기업은행은 지정 대리인인 팝펀딩과 손잡고 ‘이커머스 전용 동산 담보 연계 대출’ 상품을 작년 말 출시했다. 팝펀딩이 온라인에서 상품을 판매하는 중소기업의 재고 자산을 평가하고 보관하는 업무를 맡고 기업은행이 기업 100개에 1곳당 최대 5억원씩 500억원을 지원하는 정책 대출 상품이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아직 상품을 출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지원된 자금이 많지 않고, 팝펀딩이 은행 업무를 일부 대행하는 것일 뿐이어서 팝펀딩의 대출 연체율 상승이나 펀드 환매 중단 등은 우리와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금융위도 은성수 위원장이 ‘금융 혁신’의 모범 사례로 꼽으며 직접 사업장까지 방문한 팝펀딩이 불법 혐의를 받게 된 것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팝펀딩이 선보인 동산 담보 대출 모델이 좋다는 평가 때문에 업체 평판 조회를 거쳐 방문을 결정한 것”이라며 “이런 논란이 불거질 수 있어서 정부가 제도 개혁이나 혁신, 규제 완화 등에 나서기가 더 힘들고 조심스러워지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라임자산운용의 대규모 사모펀드 환매(투자금 환급) 중단에 이어 팝펀딩 사태까지 터지면서 금융 당국의 규제 완화(혁신)에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팝펀딩은 ‘사모펀드’로 투자금을 모아서 ‘동산 담보 대출’을 한 ‘P2P(개인 간) 대출’ 업체다. 사모펀드·동산 담보 대출·P2P는 모두 금융당국이 제도 활성화를 적극 추진해 왔다는 점에서 정부로서도 이번 사례가 더 뼈 아플 수밖에 없다.

금융감독원이 국내 P2P 업체 178개 회사를 대대적으로 점검해 불법 혐의가 있는 업체를 수사기관에 넘겼다고 발표한 게 지난 2018년 11월이다. 불과 1년 3개월 만에 비슷한 이슈가 다시 발생한 것도 금융당국을 향한 신뢰를 갉아먹을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P2P 대출의 경우 제도권으로 편입해 투자자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는 금융당국 안팎의 요구에 따라 오는 8월 말부터 ‘P2P 금융법(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법)’과 시행령이 본격 시행에 들어갈 예정이다. 지금까지 근거법이 없어서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P2P 금융이 법 테두리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새 법령은 P2P 대출 업체의 최소 자기자본 요건을 두는 등 진입 장벽을 높이고 투자자 유형 및 상품별 투자 한도 설정, 투자금과 상환금의 분리 보관 의무 등 각종 투자자 보호 장치를 담고 있다.

문제는 여전히 규정이 모호한 제도의 허점이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새 법령에는 사모펀드의 투자 근거가 포함되지 않았다. 만약 P2P 업체가 팝펀딩처럼 사모펀드를 통해 대규모로 P2P 투자금을 조달할 경우 허용 여부 자체가 불투명하다.

다만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법에 P2P 업체가 지켜야 하는 각종 의무 조항이 있기 때문에 그 자체로 투자자를 보호하는 안전장치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금융위와 금감원 간 엇박자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감원이 불법혐의 의심으로 검사여부를 검토하는 업체를 금융위원장이 ‘금융 혁신’의 모범이라고 평가하는 해프닝이 있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단순 소통 강화를 넘어서 금융당국이라는 한 지붕 아래에 있는 두 기관 간 협력을 가로막는 현행 금융 정책·감독 체계를 근본적으로 손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고동원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금융위가 금융 산업 육성과 감독 정책을 함께 담당하고 금감원은 감독 집행을 하는 등 감독 기능이 두 기관에 각각 분산돼 있다 보니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라며 “단순히 두 기관의 협력을 강화하는 수준을 넘어서 감독 체계를 개편하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도 “과거 금융위원장이 감독원장을 겸임할 때는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면서 “두 기관의 엇박자를 방지하기 위한 감독 체계 개편 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