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퇴계정신으로 국토대장정에 나서는 대학생들

by최은영 기자
2019.07.12 07:11:00

[김병일 도산서원 원장·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 며칠 전 수도권의 한 대학에서 학생들이 선비수련을 다녀갔다. ‘국토대장정’이라는 행사의 출발지로 도산서원을 선택하고 출발에 앞서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에서 선비수련에 참여한 것이다. 8회째를 맞는 이번 국토대장정은 도산서원을 출발하여 인천까지 약 400km를 걷는 긴 노정이다.

올해 테마는 ‘과거길 대장정’이다. 옛 선비들이 과거

를 보기 위해 걸어간 그 먼 길을 따라 걸어보며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이다. ‘과거를 걷는 청춘, 미래는 당신으로 인하여’라는 슬로건이 이를 잘 말해주었다.

대장정에 참여한 젊은이들은 스스로 참가를 결심하고 행동으로 옮겼다고 한다. 참으로 대견한 일이다. 한여름 삼복더위에 16박 17일 동안 400km, 천리 길을 걷는 프로그램이다. 필자가 올해 4월 따뜻한 봄날 270km의 퇴계 귀향길을 11일 동안 걸어본 것에 비하면 여러모로 힘든 일정이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대장정에 참여한 것은 현명한 판단이라 칭찬하고 싶다. 먼 길을 걷다보면 굉장히 힘들고 어쩌면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들겠지만, 자신들의 긴 인생 여정을 생각하면 이보다 더 적절한 준비와 체험이 어디 있겠는가?

앞으로 젊은 학생들이 살아갈 백세 장수 시대에 꼭 필요한 사람은 어떤 유형일까? 두말할 것 없이 지·덕·체를 겸비한 사람이다. 단순히 정답만 암기해 쌓은 지식보다는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과 현명하게 판단할 수 있는 지혜(知),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할 줄 아는 넉넉한 인품(德),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오래 실행하기 위한 건강한 체력(體)이 그것이다.

국토대장정과 같은 체험은 이런 지·덕·체를 기르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무엇보다도 오래 걷다보면 힘든 일에 부딪칠 수 있다. 그럴 때 이것을 극복하기 위한 슬기로운 지혜가 자연스레 쌓인다. 다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데 타인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힘든 여정을 함께 하면서 내가 먼저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깨닫고 실천하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여러 날 꾸준히 걷다보면 건강의 중요성을 깨닫게 돼 체력을 기를 수 있는 계기도 마련된다.



그런데 이들은 왜 하필 도산서원을 출발지로 정하였을까? 도산서원은 조선의 대학자인 퇴계선생을 모시고 선비들이 공부하던 곳이다. 선비는 자신을 먼저 수양한 후 나라와 백성을 위해 헌신하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을 목표로 살아간 사람들이다. 벼슬길에 나아가 나라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면 공동체를 위해 온 힘을 쏟는 한편, 때로는 더 큰 가치를 위해 물러남을 선택할 줄 알던 분들이다.

그런 선비들 가운데에 지금까지도 많은 존경을 받는 분이 바로 퇴계선생이다. 그는 누구보다 높은 지식을 갖춘 대학자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항상 자신을 낮추며 사회적 약자까지도 배려하는 삶을 살았다. 활인심방을 통해 늘 건강을 챙겨 당시로서는 장수라 할 수 있는 70세까지 살았다. 이것이 도산서원이 출발지로 선택된 이유이다.

대장정의 기획담당자는 “퇴계선생의 마지막 귀향길 450주년 재현행사가 올봄에 이루어지고, 더 큰 가치를 향해 나아가고자 한 퇴계선생의 삶과 정신이 깃든 도산서원에서 대장정을 출발하는 것이 아주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정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학점, 진로, 취직 등 많은 고민을 안고 국토대장정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출발에 앞서 퇴계선생의 삶을 통해 저를 돌아보고 평생의 목표를 설계하는 시간이 된 것 같아서 무척 뜻 깊었다.”, “높은 자리에 있었음에도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사람, 하녀까지 배려하며 남에게 베풀며 자신의 이익은 챙기지 않던 퇴계선생의 아름다운 모습을 배우고 나도 실천하고 싶다.”

선비수련을 마치고 학생들이 성찰과 다짐을 담아 남긴 글들이다. 지금 한참 무더위 속에서 자신의 한계를 늘려가며 ‘과거길’을 걷고 있을 학생들의 건투와 완주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