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박물관]①'말하지 않아도 알아요'…국민과자 '초코파이 情'

by이성기 기자
2018.01.18 06:00:00

74년 출시 후 40여년 꾸준히 사랑받는 오리온 초코파이
60여개국 수출 '파이로드' 구축, '글로벌 과자' 자리매김
소비자 사랑 사회 환원으로…마음을 위로하는 매개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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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성기 기자] CM송(commercial song·광고 음악)만 들어도 단박에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는 제품이 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하면 자동으로 연상되는 오리온의 초코파이(초코파이)가 대표적이다.

지난 1989년 당시 초코파이 광고를 위해 제작·사용된 CM송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는 초코파이를 상징하는 ‘징글’(jingle·특정 브랜드를 상징하는 소리)이 돼 다양한 편곡을 거쳐 현재까지 쓰이고 있다. 작사·작곡자는 가수 고(故) 김광석의 노래 ‘서른 즈음에’ 원곡자로 잘 알려진 강승원씨로, 성우 데뷔 전의 이용신씨가 CM송을 불렀다. 초코파이가 지난 40여년간 소비자들의 사랑 받고 있는 배경엔 함께 한 음악이 있었던 셈이다.

초코파이가 처음 세상에 선을 보인 건 1974년 4월. 1970년대 우리나라는 1·2차 경제개발계획을 거쳐 경제가 급성장할 때였다. 살림살이가 나아지면서 보다 고급스럽고 차별화 한 과자를 원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났다.

소비자들의 이런 요구에 고민이 깊어진 오리온 연구소 직원들은 선진 제과시장을 살펴보기 위해 해외로 향한다. 미국의 한 카페테리아에서 우유와 함께 나온 초콜릿 코팅 과자를 맛보다 신제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국내로 돌아와 머리를 맞대고 연구를 거듭했지만 제품 개발은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비스킷을 판에다 놓고 손으로 마시멜로(Marshmallow)를 짠 뒤, 직접 손으로 비스킷을 덮고 초콜릿을 입혀보기도 했다. 이후 기계로 마시멜로를 짜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비스킷을 덮는 공정에서 제품 모양이 일정하지 않고 흐트러지기 일쑤였다. 수백 번에 걸쳐 시제품을 만들어 먹어 보고 실험하기를 몇 달,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2년여 만에 초코파이를 탄생시켰다.

출시 당시의 초코파이가 지금과 똑같은 맛은 아니다. 오리온은 빠르게 변하는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알게 모르게 초코파이에 변화를 줬다.

지난 2015년 10월 가격 인상 없이 1개당 무게를 35g에서 39g으로 늘리고, 진한 풍미를 느낄 수 있도록 초콜릿 양을 13% 가량 더했다. 식감도 더욱 부드럽게 개선했다.

2016년 3월에는 창립 60주년을 맞아 ‘바나나 초코파이 情’을 선보였다. 초코파이 탄생 42년 만에 처음으로 내놓은 자매 제품이었다. 지난해 봄 처음으로 계절 한정판인 ‘초코파이 情 딸기’에 이어 지난해 9월에는 기존 초코파이와 차별화 한 ‘초코칩 초코파이 情’을 출시했다.

초코칩 초코파이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기존 제품과의 차별화에 주안점을 뒀다. 단순히 맛의 확장이 아닌 식감의 변화까지 시도하며 근본적인 변화를 꾀한 것.

이를 위해 오리온 연구소는 사실상 출발선에서 개발에 착수, 수백 번의 시험 끝에 2가지 초코칩의 황금 비율을 찾아냈다. 패키지 역시 1974년 출시 초기 색상인 파란색으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새로움과 재미를 추구하는 10·20대들에게 인기를 얻으며 출시 두 달 만에 낱개 기준 누적 판매량 1100만개를 달성했다.

2003년 제과업계 최초로 단일 품목 매출액 1조원을 돌파한 초코파이는 대한민국 ‘국민 과자’를 넘어 세계 시장에서도 큰 폭의 판매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1993년 중국 베이징 사무소 설립을 계기로 해외 시장 진출을 본격화 한 오리온은 현재 세계 60여 개국에 초코파이를 수출하며 ‘파이로드’(Pie Road)를 구축했다. 2016년 기준 국내(1400억원)를 포함해 중국 2170억원, 베트남 710억원, 러시아540억원 등 4개국에서만 연 매출 4820억원을 돌파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는 낱개 기준 약 23억개로, 나란히 세우면 지구 세 바퀴 반을 훌쩍 넘는다. 연간 전 세계 인구(약 70억명) 3명 중 1명이 초코파이를 맛 본 셈으로, ‘국민 과자’를 넘어 ‘글로벌 과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오리온 관계자는 “한국인의 감성 코드이자 핵심 브랜드 가치인 ‘정’(情)을 각 나라 사람들의 고유한 정서에 접목시키는 현지화 전략이 세계 시장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됐다”고 설명했다.

해외 진출 과정이 처음부터 순조롭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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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현지 생산공장을 짓기로 결정하고 공장을 한참 만들고 있던 1995년, ‘제품에 곰팡이가 발견됐다’는 민원이 접수되기 시작했다. 국내와 다른 고온다습한 현지 기후를 잘 견뎌내지 못해 문제가 생긴 것. 열과 공기 투과가 비교적 잘 되는 투명 포장지도 현지에 부적합했다.



오리온 생산 제품 전량을 리콜하기로 결정하고, 수거한 제품 10만개를 한 데 모아 불에 태웠다. 생산 원가 인상을 감수하고 포장 필름 재질도 바꾸었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손실이었지만, 중국 각 지역에 소문이 나면서 믿을 수 있는 기업으로 인식돼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

‘초코파이 소각’ 사건으로 본사는 곰팡이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1996년 초코파이 개발팀은 1년 여 동안 신제품을 출시하지 않고 문제 해결에 매달렸다. 최적의 수분 함량을 찾기 위해 수술용 메스를 이용, 정교하게 파이를 분해했다. 수분의 함량을 10~15%까지 놓고, 미생물의 번식과 식감의 차이를 연구했다.

그렇게 꼬박 1년간을 매달린 결과, 마침내 최적 수분 함량 ‘13%’를 찾아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알코올을 전혀 쓰지 않고도 혹한의 러시아부터 열사의 땅 중동 지역까지 6개월 넘게 변함없는 품질과 맛을 유지하는 초코파이를 만들 수 있게 됐다.

수출국마다 각기 다른 문화를 반영한 것도 현지화에 성공한 비결이다.

중국에선 포장에 정(情) 대신 ‘인’(仁)자를 새겼다. 중국인들이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시하는 가치가 바로 ‘인’이란 점에 착안, 2008년 말부터 이름도 ‘하오리여우(好麗友·좋은 친구) 파이’로 바꿨다.

2016년 8월에는 차를 즐겨 마시는 특성에 맞춰 ‘초코파이 말차’를 출시해 중국 소비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이같은 인기를 바탕으로 국내 제과 브랜드 중 유일하게 2016년과 2017년 2년 연속으로 ‘중국 브랜드 파워지수’(C-BPI) 파이 부문 1위에 올랐다.

베트남에서는 2009년부터 현지어로 정(情)을 뜻하는 ‘Tinh’이라는 단어를 활용한 마케팅 활동을 전개하면서 친근감을 심어주는 데 성공했다. 베트남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제사를 지내는데, 초코파이가 제사상에 오를 정도가 되면서 매출이 대폭 증가했다.

트베리 공장(2006년)·노보 공장(2008년) 등 생산공장 두 곳을 운영 중인 러시아 시장 공략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달 유라시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러시아 트베리주와 8130만 달러(약 880억 원) 규모의 신공장 건설 투자를 위한 협정을 맺었다. 현지에서 ‘국민파이’로 불리는 초코파이 생산량을 대폭 늘려 러시아 전체 제과시장에서 5위 안에 드는 브랜드로 키우겠다는 계획이다. 현재 러시아 파이시장 점유율은 19.2%로, 글로벌 브랜드 바르니에 이어 2위다.

최근 5년간 연 20% 이상 매출 증가세를 보인 초코파이는 2011년 메드베데프 전 대통령이 차를 마시며 초코파이를 곁들이는 사진이 언론에 소개되면서 대통령도 즐기는 간식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메드베데프 러시아 전 대통령.
출시 이후 지난 44년 동안 초코파이는 식품을 넘어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매개체로도 활약했다.

오리온은 1994년부터 1998년까지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을 목적으로 ‘오리온 초코파이’ 책걸상 교체 캠페인을 실시, 책걸상을 2만여 개를 교체하는 등 전국 초등학교 학생들의 교육 환경 개선에 앞장섰다. 2005년에는 ‘초코파이’의 ‘정’을 영화로 옮겨 ‘말아톤’ ‘웰컴투동막골’과 함께 문화 마케팅을 전개하는 등 친숙하지만 늘 새로운 제품으로 소비자들 곁에 다가가기 위해 애써왔다.

지난해 건군 69주년 국군의 날을 맞아 국군 장병에게 초코파이 등을 담은 총 1억원 상당의 선물세트 1만 박스를 전달했다. 특히 직경 70cm·높이 20cm·무게 21㎏(일반 초코파이 약 580개) 규모로 특수 제작한 초대형 초코파이가 건국 69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 사용되기도 했다.

지난해 8월 집중 호우로 큰 피해를 입은 충북 청주시에는 2억원 상당의 재해복구 지원금과 초코파이 등을 기부했다.

수해를 입은 해외 지역에도 초코파이를 기부한 바 있다.

지난해 4월 엘리뇨 현상에 따른 집중 호우로 큰 피해를 입은 페루에 초코파이 5만개를 지원했다. 지난 2008년에도 중국에서 일어난 쓰촨성 대지진과 2013년 필리핀의 태풍 ‘하이옌’ 수해 당시에도 초코파이 등을 구호품으로 제공하며 국제 구호에 나선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