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관에서] UAE 미스터리의 역설…“임종석만 키워줬다”

by김성곤 기자
2018.01.03 06:00:00

임종석 비서실장 UAE행 이후 靑해명에도 온갖 의혹 증폭
새해 들어서도 논란 여전…文 신년기자회견 때 의문 해소?
野 전방위적 공세 속에서 임종석 정치적 위상 강화 역설
공직자 사퇴시한 3월 12일…서울시장 출마 여부 주목

문재인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아랍에미리트(UAE)를 방문 중인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은 지난 10일 UAE 아부다비 대통령궁에서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UAE 왕세제와 악수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임종석 비서실장은 해외파견 부대 장병들을 격려하기 위해 12월 9일부터 12일까지 2박4일 일정으로 UAE 아크부대와 레바논 동명부대를 차례로 방문 중입니다. 임종석 비서실장의 이번 특사 방문은 문재인 대통령을 대신해 중동지역에서 평화유지 활동 및 재외국민 보호 활동을 진행 중인 현장을 점검하고 우리 장병들을 격려하기 위해 마련된 것입니다. 임종석 비서실장은 해외파견 부대 장병들을 격려하는 일정 외에도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12월 10일에는 모하메드 UAE 왕세제, 12월 11일에는 미셸 아운 레바논 대통령을 예방하는 등 외교 일정도 수행하게 됩니다.”(12월 10일 오후 4시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 브리핑)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의 UAE행을 둘러싼 미스터리가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합리적 의문은 대통령의 중국 국빈방문이라는 중요한 외교일정을 앞둔 상황에서 송영무 국방장관이 이미 다녀온 곳을 왜 청와대 2인자가 방문했느냐는 것입니다. 박수현 대변인 브리핑 이후 20여일이 지나고 새해를 맞았지만 논란은 여전합니다. 팩트와 실체는 아직 모호합니다. △대북 비밀접촉설 △탈원전 정책 불만 무마용 △국교단절 위기 수습용 △UAE 왕가 비자금 및 리베이트 마찰설 △한국업체 공사대금 체불설 등 온갖 의혹이 불거졌습니다. 청와대는 매번 부인했고 임종석 실장은 침묵했습니다. 속시원한 해명은 없었습니다. 다만 왕정국가라는 UAE의 외교적 특수성을 고려할 때 말하기 힘들다는 뉘앙스입니다. 자칫 미궁에 빠질 수 있지만 진실은 밝혀질 것입니다. 단지 시간의 문제입니다. 다가올 대통령 신년기자회견 때 관련 질문은 반드시 나올 것이고 문 대통령이 모든 걸 밝히면 게임오버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생각해봐야 할 대목이 있습니다. 만약 임종석 실장이 아닌 다른 정치인이 대통령특사로 갔더라도 이 정도의 정치적 파문이 일었을까요? 아닙니다. ‘임종석 실장’이 ‘대통령 특사’로 UAE를 갔기 때문에 문제가 더욱 커져버렸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임 실장은 정계은퇴를 앞둔 대통령 비서실장이 아니라 여전히 살아있는 현역 정치인이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6월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거나 차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물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정치는 생물입니다. 임 실장의 서울시장 출마가 현실화되면 지방선거 구도는 물론 여권 내부의 권력지형, 차기구도까지 뒤흔드는 매우 예민한 사안입니다. 아울러 임 실장의 UAE 방문이 이전 정부의 군사분야 이면계약을 둘러싼 갈등을 수습하기 위한 것이라면 야권의 공세는 그야말로 헛발질이 되고 맙니다.

임종석 실장은 역대 비서실장과 비교할 때 비교적 젊은 축에 속합니다. 박근혜정부 청와대 마지막 비서실장이었던 한광옥 비서실장의 경우 1942년생으로 우리 나이 75세에 비서실장에 임명됐습니다. 임 실장은 1966년생으로 52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비서실장에 발탁됐습니다. 풍부한 경륜을 바탕으로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조용히 보좌하는 전통적인 비서실장과는 거리가 멉니다. 여전히 역동적인 현실 정치인으로서의 이미지를 갖추고 있습니다. 임종석 실장은 조국 민정수석, 조현옥 인사수석과 더불어 청와대 출입기자들의 전화통화 성공률이 가장 낮은 3인방으로 불릴 정도로 꼭꼭 숨어있습니다. 그러나 박근혜정부 청와대가 세월호 최초 상황보고 시간을 조작했다는 내용을 직접 브리핑할 정도로 정치적 무대 전면에 서기도 했습니다. 물론 대통령 임기 5년 내내 청와대를 지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는 그의 나이가 너무 젊습니다. 국회의원 선거, 지방선거, 당권 도전, 차기 대선 등 향후 어떤 식으로든 선출직 선거에 도전할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 임 실장을 둘러싼 지방선거 출마설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주로 전남지사와 서울시장 출마설이었습니다. 전남 장흥 출신에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거친 이력 때문입니다. 정치 9단으로 불리는 박지원 국민의당 의원이 전남지사 선거에 출마할 경우 여권 안팎에 마땅한 대항마도 없다는 점도 전남지사 출마설을 키웠습니다. 더구나 지난해 문 대통령의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1차전 시구 등 호남일정에 동행하면서 의혹은 더욱 커졌습니다. 결국 임 실장 본인이 “전남지사에 출마하지 않는다”고 부인하면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습니다. 다만 서울시장 출마설은 100% 죽은 카드가 아닙니다.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출마설이 끊이지 않습니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후보군에 포함되기도 합니다. 출마를 부인하면 말끔하게 해결될 문제인데 임 실장은 서울시장 출마설에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돕겠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청와대 기류는 비서실장 공백 시 대안부재를 이유로 일단 임 실장의 잔류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입니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야당의 처지는 한마디로 대략난감입니다. 자유한국당, 바른정당, 국민의당 모두 도토리 키재기입니다. 대통령 지지율 70%, 민주당 지지율 50% 안팎의 여권 우위의 지형에서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야당은 민주당 지지율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20%선에만 근접해도 희망을 이야기하는 우스꽝스러운 처지입니다.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등 대선후보들이 당의 전면에 나선 것도 위기탈출의 일환입니다. 임종석 실장의 UAE행 미스터리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야당이 처음으로 맞은 최대 호재입니다. 한국당이 임 실장의 UAE행을 둘러싼 의혹을 이른바 ‘UAE 원전 게이트’로 규정하고 총공세에 나선 게 대표적입니다. 청와대 2인자에 대한 공세는 사실 문 대통령을 정조준하는 것입니다. UAE행 미스터리의 진실이 야당의 주장대로라면 공고했던 대통령 지지율도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야당은 차기 총선과 대선으로 이어지는 향후 정치일정을 고려할 때 지방선거에서 반드시 반전의 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만큼 절박합니다.

지방선거 성적표는 17개 광역단체장을 얼마나 얻느냐에 따라 갈립니다. 현 지형은 민주당의 초강세 구도입니다. 영남권 5개 광역단체장을 제외한 나머지 12개 단체장의 경우 민주당의 싹쓸이가 기정사실화될 정도입니다. 한국당에서는 경북지사만 한 곳만 확실하다는 엄살이 나올 정도입니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은 단독 출마든 통합신당이든 광역단체장 한 곳도 건지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오히려 민주당이 영남권 5개 단체장 가운데 부산시장을 포함해 몇 곳을 얻을지가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야3당이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습니다. 최대 승부처는 역시 서울입니다. 지방선거 구도와 지형이 불리하다고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나서겠다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본인들의 부인에도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대표가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물론 일여다야(一與多野) 구도에서 패배는 기정사실입니다.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한다면 반(反)민주당 단일후보가 가능합니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하겠지만 선거는 권력을 잡기 위한 게임입니다. 약자는 늘 연대 전략을 씁니다. 과거 YS가 3당 합당을 선택한 것도, DJ가 JP와 손을 잡은 것도, 노무현이 다소 결이 다른 정몽준과 단일화에 나선 것도 마찬가지 이유입니다.

만일 서울시장 선거가 낙승이 아닌 접전구도가 되면 여권도 히든카드가 필요합니다. 지금이야 민주당 경선이 곧 본선이라고 하지만 선거는 모르는 것입니다. 앞서 2010년 6월 서울시장 선거전은 오세훈 vs 한명숙 맞대결 구도에서 오세훈의 압승이 예상됐지만 결과는 0.6% 포인트 차이의 초박빙 접전이었습니다. 문 대통령은 서울시장을 결코 야당에 넘겨줄 수 없습니다. 청와대와 서울시청 주인의 소속 정당이 다를 경우 부동산 정책의 성공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은 참여정부 시절의 교훈입니다. 여권이 경우에 따라 임종석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참여정부 시절이던 2006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의 강금실 카드에 한나라당이 오세훈 카드를 긴급 투입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때문에 야권의 UAE 의혹 공세는 임 실장의 서울시장 출마 차단과 미래 차세대 주자로의 성장을 막기 위한 사전포석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실제 한국당은 지난 5월 대통령 비서실장 지명 당시 임 실장의 운동권 전력을 거론하며 반대했고 11월 국회 운영위 국정감사 때에는 “주사파가 청와대를 장악했다”고 거칠게 비난했습니다.

UAE 미스터리 정국의 최대 수혜자는 역설적으로 임종석 비서실장입니다. 정치인은 보통 본인의 부고 기사 이외에는 어떤 식으로든 뉴스나 기사가 크게 자주 나오는 게 좋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이른바 UAE행 미스터리 이후 언론에 가장 많이 보도된 정치인은 문재인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입니다. 야당의 공세에 시달리기는 했지만 돈주고도 살 수 없는 광고효과로 전국적인 인지도는 물론 정치적 위상을 끌어올렸습니다. UAE행 미스터리가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날지 여전히 오리무중이지만 상황은 한국당에 불리한 쪽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청와대의 태도는 복잡한 중동정세를 고려해 국익을 지키기 위한 전략적 침묵이라는 관측입니다.

남은 것은 향후 임 실장의 정치적 선택입니다. 임 실장의 선택에 따라 여권 내부의 권력지형은 요동칠 수밖에 없습니다. 지방선거를 전후로 정치적 미래를 위해 청와대를 떠날 경우 대통령 비서실장은 공석이 됩니다. 누가 채울지가 최대 관심사입니다. 문 대통령의 집권 2기를 함께 할 최적임자가 선택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능성이 크지 않지만 서울시장 선거로 직행할 수도 있습니다. 현재 하마평에 이름을 올린 서울시장 후보 중에 이른바 친문으로 분류할만한 인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지방선거에 출마할 공직자 사퇴시한은 오는 3월 12일입니다. 앞으로 임 실장의 일거수일투족이 주목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