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선상원 기자
2017.12.14 06:00:01
[남영찬 법무법인 대륙아주 대표변호사] 기업가 정신(Unternehmensgeist)은 모험정신라 할 수 있다. 기업을 뜻하는 독일어 Unternehmen은 동시에 모험을 의미한다. 역사를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국가가 기업가 정신을 고취시키고 장려할 때 그 나라는 흥했고, 그 반대일 경우 쇠했다.
1600년 12월 영국 엘리자베스 1세는 동인도회사에 무역 독점권을 부여하였다. 이것이 영국을 바꿔놓았다. 그래서 이코노미스트지는 이 날을 근대사회의 시발점으로 규정하였다. 이로부터 250년 이상 동인도회사는 국가의 임무를 대신 수행하였다. 당시 국가와 기업의 목적이 동일하였던 것이다. 정부와 기업 사이에 갈등이 없었다. 국가와 기업을 갈등과 충돌 없이 연결해준 것은 바로 기업가 정신이었다. 국왕이 동인도회사에 무역 독점권이라는 엄청난 특권을 부여하였다지만, 그 실질은 국왕이 기업의 모험정신 즉 기업가 정신을 국가경영에 활용한 것이었다. 심지어 국왕은 1680년대에 이르러 동인도회사에 징병권, 사관임명권, 교전권까지 부여함으로써 기업의 권력을 더욱 보강하였다. 이것이 기반이 되어 영국은 19세기 말까지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하였다. 당시에는 상상이 현실이 되었다. 산업혁명의 경제발전이 성숙기에 도달하여 대영제국을 절정기로 만든 원동력은 국가, 정부, 종교가 아니라 기업가 정신이 충만한 기업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잭 웰치는 2004. 10. 미국 대선을 앞두고 월스트리트 저널 기고문에서 “기업이 쇠약해지면, 미국도 쇠약해진다(When business is weak, America is weak)”고 하였다.
19세기 중반 영국에서 현대 주식회사 제도의 법적 기틀이 만들어질 때 주주의 유한책임에 반대한 계층은 부자들이었다. 당시의 사회지도층들은‘ 주주 유한책임을 기본원리로 하는 주식회사 제도가 계급간의 갈등을 줄이고 가난한 사람들을 부유하게 만들 제도’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틀린 것일까? 그로부터 150년 이상이 지난 지금 선거철이면 포퓰리즘에 편승한 대기업 때리기가 심화되었다. ‘기업 때리기’는 원래 우리 말에 없던 단어였다. 1990년도 말에 재벌 때리기라는 용어와 대기업 때리기라는 낯선 용어가 처음 등장하였다. 그러다가 2012년 4월 총선을 앞두고 포퓰리즘에 기댄 표 얻기의 일환으로 정치권이 재벌과 대기업을 공격하면서 ‘기업 때리기’ 내지 ‘대기업 때리기’는 어느덧 익숙한 용어가 되었다. 지난 미국 대선 때도 미국 대기업은 뭇매를 맞았다. 민주당 후보들이었던 샌더스는 물론 트럼프도 각자의 관점에서 대기업을 공격했다. 공화당 후보 중 한사람이던 힐러리 클린턴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기업 때리기를 매몰차게 교묘하게 할수록 청중들은 열광했다. 이 열광의 이면에는 열심히 일하는 것만으로는 상위계층이 될 수 없다는 경험적 공감이 깔려있다고 한다. 대기업 때리기의 본질에 대하여는 논란이 분분하다. 혹자는 대기업 때리기는 없다고 한다. 경제민주화와 양극화해소를 위한 조치들을 대기업 때리기라고 호도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반대입장에서는 대기업 때리기는 바로 기업 옥죄기에 다름 아니라고 한다. 대기업 때리기의 본질을 떠나, 주목해야 할 것은 과도한 대기업 때리기와 이 용어 사용의 일상화가 가져오는 부정적 영향이다. 언어는 사고를 지배한다. 일상적인 용어가 된 대기업 때리기라는 용어는 알게 모르게 우리의 대기업에 대한 인식과 사고를 지배한다. 그 결과중 하나는 기업가 정신의 말살이다.
나폴레옹은 파리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소위로 임관하여 프랑스 제국의 황제까지 올라 세계정벌을 꿈꾸었다. 그런 나폴레옹이 이 시대에 다시 태어나 세계정벌을 꿈꾼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이코노미스트 기자이자 기업변천사 전문가인 John Micklethwait는 창업을 추천하였다. 군인이 되거나 정치인이 되는 것보다 지름길이 될 것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기업가 정신을 고양하여 젊은이들에게 세계정복의 도전정신을 고취하는 것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