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철 앞두고 너무 조용한 전세시장

by조선일보 기자
2007.09.03 08:48:35

광역학군제 도입으로 `학군 수요` 사라져
아파트 입주물량 늘어 전세금도 제자리
수도권 외곽 집값 치솟아… 신도시는 추락

[조선일보 제공] 서울 대치동에서 4년째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최모(45)씨는 “올해는 7~8월에 전세 계약서를 한 건도 못 썼다”면서 “여름방학엔 전세 수요가 움직였는데, 이상하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반면, 경기 시흥 정왕동 J공인중개사 송모 대표는 “작년만 해도 집값 급등은 남의 나라 얘기로 들렸다”면서 “최근 시화호 개발 소식 등으로 하루에도 4~5통씩 외지인의 투자 문의를 받고 있다”고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최근 들어 주택 시장에 예년과 다른 이상(異狀)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방학 특수(特需)로 불리던 7~8월 전세 시장은 사실상 개점 휴업했다. 그동안 집값 상승 사각지대였던 수도권 외곽지역이 올 집값 상승률 ‘톱10’을 점령하는 사건(?)도 벌어졌다. 강남 턱밑까지 추격했던 신도시 집값은 올 들어 날개 없이 추락하고 있다. 도대체 시장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방학 이사철 전세금 요지부동=올 전세 시장에선 여름 방학 특수가 사실상 실종됐다. 통상 이맘때면 학교를 옮기려는 학군 수요와 신혼부부 수요로 매년 전세금이 출렁거렸다. 그러나,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거래도 없고, 가격도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약세다. 강남에선 2500만~3000만원까지 떨어진 곳도 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7~8월 주간 전세금 변동률은 지난해 0.5% 안팎에서 올해는 0.1%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이유가 뭘까. 우선 아파트 입주물량이 일시적으로 늘었다. 7~9월 서울 입주물량(1만4000가구)은 작년(1만1000가구)의 1.3배에 달한다. 스피드뱅크 김은경 팀장은 “광역학군제 도입으로 학군 우수 지역에 대한 선호도가 급락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강남과 양천구 목동, 노원구 중계동 등 전통적인 학군 선호지역의 전세금은 올해 오른 곳이 거의 없다. 부동산114 김규정 팀장은 “전세기간이 만료된 세입자들이 지난 2년간 급등한 전세금을 감당하기 힘들어 재계약으로 눌러앉는 사례도 많았다”면서 “다만, 분양가 상한제 시행과 주택 공급 감소 등으로 가격 불안 요인은 잠복해 있다”고 말했다.



◆수도권 외곽, “이젠 우리가 블루칩”=인기지역에 밀려 찬밥 대우를 받았던 수도권 외곽지역의 집값 상승세도 두드러진다. 닥터아파트에 따르면 올 1~8월 수도권 아파트값 상승률을 조사한 결과, 경기 시흥시(18%)가 1위에 올랐다. 이어 의정부·양주·여주·인천 남구 등도 10% 이상 상승하며 2~5위를 기록했다. 이천·양주·안산·인천 연수 등도 ‘톱 10’에 들었다. 반면, 같은 기간 서울 강남·송파·서초·양천구 등 인기 지역은 모두 마이너스 변동률을 기록했다. 닥터아파트 이영호 팀장은 “버블세븐은 각종 규제에 묶이고, 세금까지 올라 투자 메리트가 급감했다”면서 “수도권 외곽지역은 올해 각종 개발 호재(好材)가 몰리고, 상대적으로 가격도 쌌다”고 말했다.

시흥시는 제3경인고속도로와 수인선 전철 개통, 시화 멀티테크노밸리의 8월 착공 소식이 겹치면서 정왕·매화·신천동 일대 아파트값이 최고 1억원 이상 뛰었다. 의정부는 지난 7월 경전철이 착공되고, 광역행정타운이 들어온다는 소식이 집값을 자극했다.

◆바닥 모를 신도시 집값 하락=신도시의 집값 추락은 전문가들도 예상하지 못한 일로 꼽힌다. 내집마련정보사 김영진 대표는 “워낙 작년에 급등했기 때문에 조정을 거칠 것으로 봤지만 생각보다 하락세가 오래 간다”고 말했다. 실제로 분당·일산 등 수도권 5개 신도시 집값은 지난해 평균 21%나 올랐지만, 올해엔 지난 4월 이후 4개월째 조금씩 떨어지면서 평균 0.57% 하락했다. 분당의 경우, 50~60평형대 중대형은 작년보다 3억~4억원씩 내린 매물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산도 지난해 6억원 선이던 마두동 일대 30평대가 올해는 5억원 선에 주인을 찾고 있다. 전문가들은 작년과 달리 수요 기반이 약해진 게 가장 큰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부동산퍼스트 곽창석 전무는 “신도시는 전형적인 중산층 선호지역”이라며 “올 들어 6억원대 아파트가 속출하고, 대출 규제도 강화되면서 사실상 진입 장벽이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시간과공간 한광호 대표는 “2기 신도시 개발과 분양가 상한제로 싼 아파트에 대한 기대감이 높은 것도 원인”이라며 “일시적 조정일지, 대세 하락일지는 좀 더 지켜봐야 알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