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이학선 기자
2007.04.12 10:10:00
사회공헌, 성장동력으로 부상..기부금 일변도서 일자리창출 등 다양화
국제사회도 표준제정 움직임..기업경쟁력과 사회공헌 연계 필요
[이데일리 이학선기자] SK그룹은 최근 안산에 21번째 '행복도시락 지원센터'를 열었다.
이 곳에서는 어려운 이웃들 중에서 조리사, 조리원을 채용해 도시락을 만들게 한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도시락을 일자리를 원하는 노인 등을 통해 결식아동이나 독거노인에게 배달해주는 일을 한다.
그 사업은 일자리 창출과 소외계층 복지 등 2가지 효과를 보고 있다. 하루평균 4500여명의 소외계층이 끼니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450여명이 일할 기회를 찾은 것이다.
기업의 사회공헌이 사회 곳곳으로 스며들고 있다. 지난 2005년 삼성 SK LG 현대차 등 주요 기업들이 한해동안 지출한 사회공헌비용이 무려 1조 4000억원에 달한다.
기업의 사회공헌은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는데도 큰 역할을 한다. 가난의 대물림을 차단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사회공헌 자체가 기업의 건전성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작용, 투자할 돈을 끌어들이고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아직까지는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이 불우이웃돕기 차원의 성금을 내거나 사내 동호회의 봉사활동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기업인 스스로도 사회공헌활동이 새로운 부(富)로 연결된다는 생각까지는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보다 전략적이고 장기적 관점에서 사회공헌활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회공헌을 잠재적 고객에 대한 투자개념으로 바라보면 이윤추구와 사회적 책임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2005년 국내 기업들이 사회공헌활동에 지출한 돈은 1조4025억원을 기록, 한해전에 비해 14% 증가했다. 기업들이 사회공헌에 지출한 돈은 지난 2002년 1조원을 넘어선 이래 매년 두자릿수 이상의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국내 기업들의 사회공헌 지출액은 결코 적지 않다. 국내 기업의 경상이익 대비 사회공헌 지출액은 2.0% 정도로 미국이나 일본 기업들의 1.3~1.5%를 상회한다.
기업인들 역시 약 90%가 사회공헌이 필요하다고 느낄 정도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신경을 쓰고 있다.
하지만, 국내기업의 사회공헌은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많은 국민들이 '그러려니'하고 무감각하게 바라보거나 '당연히 할 일을 한 것일뿐'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혹은 '뭔가 또다른 의도가 있는 건 아닐까'라며 미심쩍은 눈길을 보내는 사람도 적지 않다.
정경유착이나 부정부패로 인해 기업에 대한 부정적 정서가 강했기 때문이지만, 기업 스스로도 사회공헌을 시혜적 차원으로만 해석해 스스로의 행동반경을 제한해온 탓도 크다.
그러나 사회공헌은 더이상 자선활동의 개념이 아니다. 선진국의 경우 기업윤리와 사회공헌, 지배구조 등이 우수한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SRI, Socially Responsible Investment)가 활성화 돼있다. 곧 사회적 책임이 높은 기업에 자금을 대주는 시대가 온 것이다.
그동안 사회공헌은 베품의 의미 이상을 찾기 어려웠다. 이윤추구를 최우선으로 하는 기업의 속성상 이는 비용이라는 개념과 연결됐고, 따라서 사회공헌은 여유가 있을 때나 하는 것 정도로 치부됐다.
하지만 기업의 사회적 역할과 소비자나 시민사회단체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사회공헌을 바라보는 시각도 변했다. 아직은 미미하지만 국내에서도 사회공헌을 잘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가 나오는 등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사회공헌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는 것이다.
내년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국제적인 표준이 만들어진다. 국제표준기구(ISO)는 연말까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초안을 만든뒤 2008년 ISO 26000 국제규격을 발표할 예정이다. 단순히 '온정'이라는 말로 표현됐던 사회공헌이 이제는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으로 국제사회에 공표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국내 기업들도 사회공헌에 더욱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특히 양극화와 저성장이라는 덫을 빠져나올 해법으로 사회공헌이 부각되면서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지는 추세다.
앞서 SK그룹의 행복도시락 지원센터는 도시락 지원이라는 자칫 일회성으로 끝나기 쉬운 행사를 일자리 창출까지 연결한 대표적 사례다.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이 우리사회의 가장 큰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최근 사회공헌활동에 두각을 나타내는 기업으로는 KT를 들 수 있다. KT는 통신기업의 특성을 살려 400명 규모의 IT전담 봉사활동 조직을 꾸렸다. 단순히 기부금을 내는 차원을 뛰어넘은 것으로 자신들의 전문성을 살리는 동시에 미래 잠재고객과의 접촉면을 넓히는 효과를 누리고 있다.
KT는 또 사회공헌의 외연을 개인이나 계층에서 기업으로 확장했다. 기업은행과 협약을 맺어 중소협력사 지원을 위해 500억원을 조성하는 한편, 협력사에 대한 경영컨설팅까지 하고 있다. 자신들의 장점을 살리면서도 저성장의 가장 취약한 고리인 소외계층과 중소기업을 타깃으로 한 사회공헌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다른 상생시도로는 삼성그룹을 들 수 있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사회공헌활동에 4405억원을 썼다. 재계순위 1위인만큼 당연하다고 볼 수 있지만, 삼성그룹의 사회공헌활동이 주목받는 이유는 또 있다. 바로 새로운 사회공헌모델을 제시하고 있는 것.
삼성그룹은 지난해 법률봉사단을 세워 내부자원을 사회와 공유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우수한 법조인력을 기업 안에 가두지 않고 사회와 소통하도록 적극 지원한 것. 이에 따라 삼성법률봉사단은 지난해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4000건 이상의 법률상담을 하는 등 성과를 냈다.
그러나 아직은 갈 길이 멀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사회공헌을 기부금과 동일시하는 분위기에선 기업들에게 적극적인 사회공헌을 요구하기가 어렵다. 기업인 스스로도 '사회공헌=돈'이라는 인식에 갇혀있는 한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문제를 안게 된다.
이에 따라 사회공헌의 개념을 확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자신의 본업에 충실하되 이를 환경·인권·지역사회 기여 등과 연계할 수 있으면 그 자체가 사회공헌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좌변기 등 화장실 위생용품으로 유명한 일본의 토토는 종전보다 물사용량을 획기적으로 줄인 제품으로 '친환경적'이라는 평가를 들었다. 자신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사회가 요구하는 제품을 내놓는 일도 큰 사회공헌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유호현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그동안 기업들이 기부금 위주의 사회공헌을 했다면, 앞으로는 자신의 사업과 관련된 영역에서 공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뛰어난 기술를 개발해 친환경 제품을 만들거나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저소득층에게 교육기회를 주는 일 등이 모두 사회공헌활동"이라며 "장기적 관점에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동시에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