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동, 혼자 못 벗어나”…‘청소년 도박’ 고민 나눈 학생·학부모들[르포]
by정윤지 기자
2025.05.18 09:40:20
■경찰청·이데일리 공동 연중기획 ‘청소년 도박 뿌리뽑자’
청소년 도박 예방주간 행사
예방·치료 강조한 전문가들 “낫게 해주려 접근해야”
“도박 당해낼 수 없다”…경각심 느낀 학생들
[이데일리 정윤지 이영민 기자] 청소년 도박에 불안을 느끼는 수백 명의 학생과 학부모, 전문가가 한자리에 모였다. 지난 16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어울림 광장에서 열린 ‘청소년 도박문제 예방 주간’ 행사 중엔 호우 특보가 내려지는 등 폭우가 쏟아졌지만 이들의 관심을 막을 순 없었다. 이 행사에서는 학생들의 도박 고민과 함께 “혼자서는 충동을 절대 벗어날 수 없다”는 전문가들의 경고 메시지도 나왔다. 행사 주인공인 학생들은 체험 부스와 토크 콘서트 등에 참여한 후 도박의 위험성을 절실히 깨달았다고 입을 모았다.
 | 지난 16일 오후 ‘청소년 도박문제 예방주간’ 행사가 열린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어울림 광장에서 토크콘서트에 참석한 패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염정인 수습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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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와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예치원) 공동주최로 열린 이날 행사에는 청소년도박 전문가들과 교사들이 참석해 청소년 도박 중독의 예방과 치료방법에 대해 고민을 나눴다. 폭우가 쏟아지는 날씨에도 행사장에 모인 학생들은 저마다 손을 들고 ‘왜 도박을 하면 안되나요’, ‘쉽게 번 돈이면 괜찮지 않나요’. ‘주변에 화투를 하는 친구를 어떻게 해야 하나요’와 같은 질문을 던졌다.
가벼운 내기와 게임, 도박에도 중독이 될 수 있느냐는 학생들의 공통된 질문에 박은경 예치원 본부장은 “모두가 도박에 빠져들진 않지만 도박에 빠진 사람들을 보면 처음부터 중독 상태에서 시작하지 않는다”며 “청소년은 정서와 감정이 발달하는 시기라 성인보다 더 빠져들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 도박에 빠졌다 끊는 데 성공한 전동진(34)씨는 도박 중독을 ‘치료받아야 할 질병’이라고 강조했다. 1년 넘도록 반(反) 도박 상태라는 전씨는 “돈을 딸 때의 쾌감은 단기적인 감정이란 점을 알지만 알면서도 계속하게 됐다”며 “이건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에서 느끼는 일시적인 감정일뿐 건강한 감정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이것도 어떻게 보면 병이라고 볼 수 있다”며 “주변에서도 너무 나쁘게 보지 말고 이 병을 낫게 해줘야겠다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6년간 도박 예방 선도학교인 서울 관악구 미정중에서 예방수업을 했다는 조영석 교사는 “백 번 글로 배우는 것보다 한 번 경험하는 게 좋다는 것을 이번 행사와 학교 프로그램으로 느꼈다”며 “도박은 특히나 아이들이 역할극이나 가상게임으로라도 중독의 심각성을 간접 경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 16일 오후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청소년 도박문제 예방 행사의 체험부스에 청소년들이 참여하고 있다.(사진=성가현 수습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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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6일 서울 동대문구 DDP 어울림 광장에서 열린 청소년 도박문제 예방주간 행사에서 미성중 최서연(15), 김수민(15) 양이 도박 중독 예방 퀴즈를 풀고 있다. (사진=정윤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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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행사에 참여한 학생들은 준비된 28개 체험 부스를 즐기며 도박 예방과 중독에 관해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한 부스에서 ‘도박중독예방 모의고사’를 푼 미성중 최서연(15), 김수민(15) 양은 도박상담 전화번호를 묻는 문제에 자신 있게 ‘1336’을 골랐다. 10문제 중 9문제를 맞힌 최양은 “학교에서도 교육을 받았고 오늘 행사장에서 이 번호가 눈에 띄어 확실히 알게 됐다”며 “도박은 해본 적 없지만, 이걸 하면 인생이 망한다고 생각하고 절대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경륜이나 확률 게임, 뽑기 등 도박에 흔히 사용되는 게임을 건전하게 즐기는 체험 부스에는 특히 학생들이 몰렸다. 도박 게임을 해본 적 있는 학생도 이날 체험을 통해 한 번 더 경각심을 느꼈다고 했다. ‘바카라’를 한 번 해봤다는 고교 1학년 김모(16)군은 “계속하는 건 무서워서 멈췄는데 여기 와보니 잘못 중독됐다가는 큰 일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때는 잘 모르고 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실수로라도 하지 않도록 해야 겠다”고 다짐했다.
학부모들은 가정에서의 관심과 조기 교육의 중요성을 느꼈다고 했다. 15살 딸과 함께 온 박성희(45)씨는 “청소년 도박은 어른들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했다. 조기 교육을 위해 행사를 찾은 현예림(39)씨는 “아이가 아직 어려 도박을 하진 않지만 미리 교육을 시키는 게 좋을 거 같아 관련 자료를 받아가려 한다”며 “요즘은 학교에서 어릴 때부터 도박을 한다고 해 걱정된다”고 했다.
| 16일 오후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청소년도박문제 예방주간 행사에서 관람객들이 도박 중독 방지 프로그램을 체험하고 있다.(사진=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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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일 서울 동대문구 DDP 어울림 광장에서 열린 청소년 도박문제 예방주간 행사에서 학생들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성가현 수습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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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의 도박 중독을 막기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학생들의 일침도 나왔다. 서울 강동구에 사는 배제고 김모(17)군은 “주변에 한 명씩은 꼭 도박을 한다”며 “도박을 하는 학생들이 생긴다는 점에서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 대책을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심오택 사감위원장도 “사감위는 앞으로도 교육부와 경찰청 등과 협력해 청소년 도박 문제를 예방하고 미래세대인 우리 아이들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신미경 예치원장도 “사회와 각 기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실효성 있는 예방체계가 마련되고, 도박 문제로 고민하는 청소년을 빠르게 발견해서 조기 개입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