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여파에…기업 63% "대출보다 내부자금 쓴다"

by김정남 기자
2024.02.21 06:00:00

대한상의, 기업 자금조달 실태 조사
대출 줄이고 내부 유보자금으로 충당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최근 기업들이 내부 유보자금을 통해 돈을 조달하는 경향이 부쩍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고금리 장기화 탓에 보수적인 경영 흐름이 굳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매출액 1000대 제조기업을 대상으로 ‘기업 자금조달 실태’를 조사해 21일 공개한 결과를 보면, 기업들의 주요 자금조달 수단은 ‘내부 유보자금’(63.0%)에 집중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권 차입’(33.7%), ‘회사채·주식 발행 등 직접금융시장’(2.3%) 등 외부 조달은 그에 못 미쳤다.

이번 결과는 지난 2022년 8월 실시한 이전 조사와는 확연히 다르다. 당시 내부 유보자금을 통해 조달한다는 응답은 27.9%에 그쳤다. 금융권 차입이 절반에 가까운 48.2%였다.

(출처=대한상공회의소)


기업들이 외부 자금 의존도를 확 낮춘 것은 고금리 여파가 본격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으로부터 차입한 고금리 대출에 대해 이자 또는 원금을 상환하고 있다고 응답한 기업은 53.3%에 달했다. 또 올해 안에 원리금 상환이 도래할 예정이라는 기업은 19.3%를 차지했다. 기업 4곳 중 3곳이 올해 고금리 대출 상환 청구서를 받는다는 뜻이다.

실제 기업들은 자금조달·운용상 주요 애로사항으로 ‘고금리에 따른 금융 비용 증가’(69.3%)를 가장 많이 꼽았다. ‘운영상 자금 수요 증가’(25.0%), ‘은행의 대출 심사 강화’(22.7%), ‘만기 도래 상환 부담’(10.0%), ‘기업 신용등급 하락’(9.7%) 등이 뒤를 이었다.



기업들은 아울러 설비투자보다는 인건비 등 운영 비용 지출에 조달 자금을 많이 할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주요 조달 목적을 묻는 질문에 ‘인건비 등 운전자금 수요’가 72.0%로 단연 가장 많았다. ‘공장 설비 등 시설투자’(50.7%),‘현금 유동성 확보’(27.7%), ‘원리금 등 채무 상환’(12.0%) 등이 뒤따랐다.

(출처=대한상공회의소)


대한상의 관계자는 “대내외 불확실성이 여전한 상황에서 고금리에 따른 자금조달 비용 증가까지 더해지며 기업들은 신규 투자와 사업 확장을 위해 무리하게 자금을 조달하기보다 내부 유보금으로 충당하거나 사업 운영에 필요한 운전자금 조달을 우선시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고금리가 저무는 시기에 대한 기업들의 전망은 다소 엇갈렸다. 고금리 기조가 언제까지 지속할 것인지 묻자 ‘올해 하반기’로 응답한 기업이 38.3%로 가장 많았다. ‘내년 상반기’라고 전망한 기업도 25.3.%를 차지했다. ‘올해 상반기’ 응답은 15.7%로 나왔는데, 이와 반대로 ‘내년 하반기’와 ‘내후년 이후’를 거론한 비중 역시 각각 11.3%, 9.4%로 적지 않았다.

김현수 대한상의 경제정책팀장은 “고금리를 버틴지 1년 이상 지나면서 실적이 부진한 기업들은 이자 부담 누적으로 한계에 다다른 상황일 것”이라며 “기준금리 인하가 본격화할 때까지 금융 비용 부담 완화를 위한 기업 지원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