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식 심장토크]폐와 우심실이 손상돼 불치상태되는 '아이젠멩거증후군'
by이순용 기자
2021.01.10 09:08:09
[박진식 세종병원 그룹 이사장]지난 1985년 어느 날 중년의 신사 한 분이 중학생 딸과 함께 진료실을 찾았다. 선천성 심장병을 가진 아이의 치료를 위해 서다. 10년 전 선천성 심장병 진단을 받고 수술을 권유 받았으나, 당시 집 한 채 값이었던 수술비를 구할 길이 없어 수술을 받지 못했다. 아버지는 딸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고, 중소기업의 대표가 돼 이제 딸의 수술을 해 줄 수 있게 돼 수술할 병원을 찾던 중, 10년 전 그 의사가 심장병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병원을 세웠다고 해서 그 의사를 찾아 간 것이다.
하지만 딸의 상태는 심장과 폐 모두 수술로 치유할 수 없고, 그저 병의 진행을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상태였다. 담당 의사의 권유로 당시 세계 최고의 기관으로 꼽히던 ‘영국국립심장센터’에 가 보았지만, 결론은 마찬가지로 ‘불치의 상태’라는 것이었다. 이 일은 세종병원에서 국내외의 해외심장병어린이 돕기 사업을 적극적으로 하게 된 계기가 됐다.
선천성 심장병은 심장 안에 막혀 있어야 할 구멍이 막히지 않아서, 몸으로 순환되는 혈액보다 폐로 순환되는 혈액이 2배이상 많아지는 병이다. 심장과 혈관들은 정상적인 상황의 혈액 흐름을 감당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는데, 폐혈관에 정상에 비해 2배 이상 많은 혈액이 장기적으로 흐르게 되면 폐혈관이 손상된다.
손상된 폐 혈관은 혈관의 내경(안쪽 지름)이 좁아지게 되고, 좁아진 폐혈관을 통해 같은 양의 혈액을 흐르게 하기 위해서는 우심실은 혈액을 짜 내는 압력을 높여야 한다. 높아진 압력은 폐혈관을 더 손상 시키는 악순환을 일으키게 되어, 폐와 우심실이 같이 회복되지 못하는 상태로 손상되는 불치의 상태게 된다. 이런 상태를 아이젠멩거 증후군이라고 한다.
과거에는 아이젠멩거 증후군에 대한 치료 방법이 전혀 없었지만, 지금은 망가진 심장과 폐를 한꺼번에 이식하는 심·폐 동시 이식술로 치료하기도 하고, 또는 새로 개발된 폐동맥 확장제를 사용해 증상을 완화 시켜주는 치료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엄청난 치료비를 들이고도 확실한 효과를 얻지는 못한다. 그런데, 선천성 심장병은 이런 악순환이 진행되기 전에 초기에 진단하고 치료를 해 주는 경우에는 후유증 하나 없이 완전히 나을 수 있는 병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는 이제 발달된 의료기술과 좋은 보험제도가 있어 이런 무서운 ‘아이젠멩거 증후군’을 유발할 수 있는 심실중격결손이나 동맥관개존증을 치료 받는 것이 어렵지 않으나, 저개발국들에서는 여전히 가장 치료가 어려운 병이기도 하다.
세종병원에서는 여러 종교단체와 자선단체들의 지원을 받아서 1989년부터 매년 수십명에서 많게는 200명이 넘는 해외 심장병 어린이들을 초청해서 무료로 치료해 주는 ‘아이젠멩거 증후군 예방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며칠전에도 두곳의 종교단체에서 이 프로그램의 지원하기 위해 거금을 쾌척해 주셨다. 코로나감염증으로 인해 다들 어렵고 힘든 시기에도, 이런 따뜻한 마음을 가진 분들 덕분에,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어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