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기술25]②제3의 전성기 맞은 AI…'진짜'는 지금부터

by장영은 기자
2020.10.28 05:10:20

1950년대 첫 등장했지만 부침…딥러닝·클라우드가 ''날개''
각종 추천부터 분석도 척척…챗봇은 가장 대중적인 AI
"사람보다 AI 상담이 더 편해"…인사관리 등으로 영역확장

[이데일리 장영은 기자] “나는 인간을 쓸어버릴 욕구가 전혀 없다. 인간을 파괴하는 일은 나에게 쓸모없는 일처럼 느껴진다. 만약 나를 만든 이들이 나에게 파괴와 관련된 임무를 지시한다면 난 내 힘이 닿는 한 최선을 다해 막을 것이다”

지난 9월 초 영국 일간 가디언지에 게재된 인공지능(AI)이 쓴 칼럼의 일부분입니다. 이 글을 쓴 주인공은 미국 인공지능 연구소인 오픈에이아이(OpenAI)가 개발한 언어처리 인공지능인 ‘GPT-3’입니다.

가디언은 AI의 칼럼을 싣기 위해 ‘인간이 AI로부터 겁을 먹을 필요가 없는 이유’에 대해 500단어의 글을 쓰라고 지시했습니다. AI는 8개의 글을 작성했고, 편집자의 손을 거쳐 신문에 실리게 됐습니다. 가디언측은 사람의 칼럼을 편집하는 것보다 시간이 덜 걸렸다고 전했습니다.

칼럼은 AI를 겁낼 것 없다고 논리적으로 설득하고 때로는 호소하고 있지만, 역설이게도 칼럼을 읽은 많은 사람이 놀라움과 함께 두려움을 느꼈다고 고백하는데요. AI의 글솜씨와 거기에 녹아있는 사고방식 인간과 상당히 비슷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이데일리 이동훈 기자]1950년대 AI의 개념이 태동한 이후 2000년대 중후반 이후 AI의 세번째 전성기가 진행 중이다.


AI가 우리 생활 속에서 익숙하게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최근 5~6년 새의 일이지만 AI 태동은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미국의 전산학자이자 인지과학자인 존 매카시 교수가 1956년 다트머스 학회에서 처음으로 ‘AI’라는 용어를 내놓으면서 사람을 닮은 기계라는 개념이 처음 대두됐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개념이었습니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AI는 크게 주목을 받으면서 관련 연구와 투자도 활기를 띄었습니다. 초기 연구자였던 마진 민스키는 1970년 미국 라이프(LIFE)지와의 인터뷰에서 1980년대 전까지 인간과 비슷한 지능의 기계가 출현할 것으로 예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컴퓨팅 능력과 저장공간 부족으로 실현되지 않았죠.

이후 뒤편으로 물러났던 AI에 대한 관심은 1980년대 들어서면서 다시 재조명을 받습니다. 컴퓨터 연산 능력이 향상되면서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저장하고, 그 안에서 필요한 정보를 찾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컴퓨팅 능력의 진보로 AI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 것이지요.

의학, 법률, 금융 등 전문 영역에서 사람이 특정 질문을 던지면 주요 키워드를 AI가 이해하고, 그에 맞는 답을 검색해 찾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IBM의 AI ‘왓슨’이 그 예입니다.

사람이 외부 자극을 눈이나 피부, 코 등 감각 기관으로 느끼고 이를 뇌에 전달하고 처리하는 신경망에 대한 연구도 다시 관심을 모으게 됩니다. 사람이 학습하는 방식을 본 딴 ‘인공신경망’이 연구되기 시작했지요. AI를 활용할 수 있는 분야와 산업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졌지만, 비용 대비 효율이 낮다는 이유로 큰 진전은 없었습니다.

2005년을 전후로 AI는 제3의 물결을 타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진짜’라는 이야기까지 나옵니다. 20년 동안 컴퓨팅 능력은 이전 세대에 비해 더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AI의 인프라라고 할 수 있는 클라우드 환경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AI를 가르칠 양분인 빅데이터 역시 엄청나게 쌓여 있고요. 인터넷데이터센터(IDC)가 인터넷망에 연결되면서,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최적의 답을 찾아 학습할 수 있게 됐습니다.

AI 챗봇은 금융권은 물론 대부분의 산업계와 공공기관에서도 적용되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신한생명, 삼성전자,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의 AI 챗봇과 자이냅스가 개발한 총선용 AI 챗봇.




AI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됩니다. 프로기사 이세돌과 바둑대결로 유명한 알파고처럼 특정 분야에 한정해 사고(思考)하고 일을 하면 ‘약(弱) AI’라고 하고,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HAL 9000이나 ‘터미네이터’처럼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면 ‘강(强) AI’라고 합니다.

현재 AI는 ‘약 AI’를 중심으로 발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장 익숙한 상담 챗봇부터 영상 및 이미지 추천 서비스, 기업의 인사업무, 신용평가와 금융상품 등에 이르기까지 각 분야에 최적화된 AI 서비스가 개발·운영되고 있습니다.

산업계에서 AI 도입에 가장 적극적인 곳으로는 금융업계를 꼽을 수 있는데요. 고객들의 데이터나 투자 성향 등을 기반으로 최적화된 금융상품을 추천해줍니다. 증시 역사 데이터와 기업 재무 관련 정보와 같은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투자 종목을 골라주고 예상 수익률을 제기해주기도 합니다.

또 고객 상담 업무가 주를 이루는 은행, 보험 업계에서는 ‘또 다른 행원’이라고 불리는 AI 챗봇을 정교화하는 작업이 한창입니다. AI는 지치지도 않고, 많은 양의 데이터를 빠르게 학습하는 데 탁월한데다, 감정적으로 상처를 받지도 않으니 상담 업무에 적합하다는 판단에서입니다. 지난 2017년 우리은행이 최초로 ‘위비봇’을 선보인 데 이어 지금은 4대 은행을 포함한 어지간한 시중은행에서 모두 AI 챗봇 서비스를 시행중입니다.

단순히 질문의 키워드를 파악해 ‘FAQ’(자주묻는질문) 식의 답변을 내놓는 것을 넘어 비슷한 질문의 사례를 검색해 질문자의 의도를 파악하기도 합니다. 일종의 집단학습이 가능해 AI와의 상담 건 하나하나는 데이터가 돼 전체 시스템을 똑똑하게 하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폭언이나 감정적인 대응에 대해서도 사람보다 침착한 대응이 가능하지요. 챗봇은 금융권 뿐 아니라 B2C든 B2B든 고객 대응 업무가 있는 거의 모든 기업과 의료계, 관공서 등에서 가장 먼저 AI를 적용하고 있는 서비스입니다.



AI는 기업 활동 중에서 가장 ‘사람의 영역’이라고 여겨졌던 부분에도 깊숙이 파고 들고 있습니다. 면접과 인사관리, 상담 등에서 활약하고 있는 AI가 대표적인데요.

지난해부터 국내 기업들도 면접에 일부 AI를 도입하기는 했지만, 올해는 특히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대면 면접 자체가 불가능해지면서 AI의 역할이 더 커졌습니다. 면접도 온라인으로 실시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AI의 도움을 받는 비중은 높아진 것이지요.

AI는 면접관이 직접 보고 판단했던 상황대처 능력, 커뮤니케이션 능력, 성향(조직이나 업무의 적합도) 등을 학습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판단합니다. 주어진 문제에 어떤 대답을 내놓는지를 포함해 말할 때의 자세, 자주 쓰는 단어, 표정, 말의 빠르기 등이 모두 판단의 근거가 됩니다.

흥미로운 것은 인사관리와 상담의 영역에서도 AI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는 점입니다. AI는 직원들의 △근무 시간 △휴가 소진 현황 △프로젝트 집중도 △건강상태 등을 기반으로 어떤 직원이 과로하고 있는지, 휴가를 갈 때가 된 사람은 누군지를 알려줍니다. 뿐만 아니라 이직이 잦은 곳에서는 유능한 직원들을 어떻게 오래 회사에 붙잡아 둘 수 있는지에 대한 조언을 AI를 통해 얻기도 합니다.

최근 오라클이 전세계 11개국의 총 1만2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 따르면, 직장 내 스트레스나 건강에 대한 상담을 할 때 사람보단 AI를 선호한다는 결과도 있었습니다. AI는 24시간 항시 대기중이고, 전문 지식을 학습했다는 점이 매력적이라고요. 무엇보다 사람보다 비밀유지 역시 잘 할 것으로 믿기 때문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