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주가보다 30% 싸게 팔린 2차전지 회사…거품설에 투자자 '패닉'
by박종오 기자
2020.08.27 00:40:00
이노메트리, 주가보다 29% 싸게 경영권 매각
"주가 거품이었나" 투자자 혼란
내달 테슬라 ''배터리 데이''에 배터리株 변동성 커질수도
[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코스닥 상장사인 이노메트리(302430) 주주들은 26일 ‘패닉(공황)’에 빠졌다. 전날 이 회사 경영권이 한 사모펀드에 넘어갔는데, 대주주의 주식 처분 가격이 시세보다 30%가량 낮았기 때문이다.
이노메트리는 전기차 배터리를 만드는 LG화학(051910), 삼성SDI(006400), SK이노베이션(096770) 등 국내 대기업에 배터리 내부 결함을 잡아낼 수 있는 엑스레이 검사 장비를 납품하는 회사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후 전기차 배터리 관련주에 투자자가 몰리며 이 회사 주가도 연초 대비 무려 50% 가까이 급등했다.
그러나 이날 외국인과 기관이 일제히 매도에 나서며 이노메트리 주가는 하루 전보다 6%가량 급락했다. 한 기업 평가 업계 전문가는 “매도자와 매수자 양쪽 모두 합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가격이니 거래가 성사된 것”이라며 “기존 주가가 실제 기업 가치보다 고(高)평가됐다고 해석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잘 나가던 전기차 배터리(충전해서 다시 쓸 수 있는 리튬 이온 전지 등 2차전지) 관련주에 ‘주가 거품 설(說)’이 고개를 들고 있다. 미래 성장 산업으로 주목받으며 최근 주가가 껑충 뛰었지만 실제보다 과대 평가됐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것이다.
26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이 같은 거품설은 엉뚱하게도 이노메트리의 경영권 매각을 계기로 불거졌다. 전날 이 회사는 최대 주주인 넥스트아이와 2대 주주인 김준보 대표 보유 지분 420만 주(지분율 43.5%)를 사모펀드 운용사인 이스트브릿지프라이빗에쿼티에 756억원에 양도하기로 했다고 공시했다. 1주당 1만8000원에 경영권을 넘기기로 한 셈이다.
문제는 같은 날 코스닥 시장에서 거래된 이노메트리 주가가 이보다 7000원 넘게 비싼 1주당 2만5350원(종가 기준)이었던 것. 공시를 본 주주들은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붙은 주식가격이 1만8000원이면 앞으로 주가가 급락하는 것 아니냐”며 논쟁을 벌였다.
이노메트리 관계자는 “주가가 주당 1만8000원보다 낮았던 때부터 사모펀드와 경영권 매각 협상을 해왔다”며 “최근 주가 상승분을 반영할 경우 거래 성사가 어려워 적정선에서 거래가격을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노메트리 주가는 올해 초만 해도 1만원 중반대에 불과했다. 대구 신천지 사태로 국내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며 코스피 지수가 연중 저점을 찍은 지난 3월 19일엔 1주당 6730원으로 반 토막 났다.
하지만 이후 주가는 ‘동학 개미’(개인 투자자)의 투자금이 쏠리며 코스닥 지수보다 2배 빠른 속도로 치솟았다. 지난달 말 SK그룹의 인수설까지 불거지며 이달 초 한때 3만원 선까지 돌파했다.
이에 따라 경영권 매각을 발표한 지난 25일 이노메트리의 시가총액(2446억원)을 기준으로 계산한 이 회사 기업 가치(시가총액-순차입금)는 ‘에비타(EBITDA)’의 42배에 육박했다. 에비타는 이자 비용·세금·상각비를 빼기 전의 영업이익을 뜻하는 것으로, 기업이 본업으로 1년에 벌어들이는 현금을 가리킨다. 에비타가 42배라는 것은 회사를 인수해 투자금을 전액 회수하려면 40년 이상 걸린다는 의미다.
과거 유사 업체가 에비타의 20배 내외에서 거래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시총이 과도하게 부풀려졌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국내 다른 전기차 배터리 관련주의 주가에도 거품이 끼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전기차 배터리를 직접 생산하는 LG화학과 삼성SDI 주가는 국내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처음 발생한 지난 1월 20일 이후 현재까지 각각 113.8%, 65.7% 급등했다.
에코프로비엠(247540)(179.8%), 천보(278280)(113.8%), 포스코케미칼(003670)(60%) 등 전기차 배터리에 들어가는 양극재·음극재·전해질 등 부품·소재 생산 업체 주가도 껑충 뛰어오른 상태다.
반면 현재 주가를 거품이라고 볼 수 없다는 평가도 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이노메트리의 최대 주주인 넥스트아이는 한국 화장품을 중국에 떼어다 파는 것을 주업으로 하는 중국계 자본”이라며 “모기업이 급전이 필요해 이노메트리를 시세보다 싸게 판 것일 가능성도 있다”고 귀띔했다. 전기차 배터리 생산 기업 등이 지금 당장 이익을 내지는 못하지만 미래 성장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증권가 전반의 공통된 인식이다.
글로벌 전기차 판매 1위 회사인 미국 테슬라가 다음달 22일 개최할 예정인 ‘베터리 데이’를 계기로 국내 전기차 관련주의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테슬라가 배터리 자체 개발·생산 계획을 밝힐 경우 국내 기업에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우려다.
나승두 SK증권 연구원은 “테슬라에 일부 전기차 배터리를 납품하는 LG화학을 제외하면 국내 전기차 배터리 기업 대부분은 유럽 시장에 물량을 공급한다”면서 “투자자 입장에서도 유럽의 전기차 판매량 추이를 주의 깊게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