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明변호사]황필규 "상해 임시정부도 정치 난민이었죠"

by노희준 기자
2018.11.27 06:00:00

난민·인권 전문 황필규 변호사
상해임시정부, 한국전쟁 다 난민의 역사
정부 방관하는 사이 제주 예멘 난민 혐오 확산
어려운 문제지만 '우리가 우선'이란 입장 넘어서야

황필규 변호사
[이데일리 노희준 기자] 제정 4년 만에 폐지 위기를 맞은 법안이 있다. 난민법이다. 청와대 국민청원에서 71만명 이상이 폐지 청원에 참여했다. 정부는 “국제적 위상, 국익을 고려해 현실적으로 폐지는 어렵다”는 입장이지만 여론은 부정적이다. 제주도 예멘 난민사건 이후 서울도심에서 난민법 폐지와 난민수용을 반대하는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난민법 설계자 중 한 명인 황필규 변호사를 강남역 주변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황 변호사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이주민과 난민, 해외 한국기업 인권침해 감시 등에 주력해왔다. 최근에는 해외 입양 문제를 중심으로 한 아동문제, 국내에서의 탈북자 구금 문제와 해외에서의 탈북자 난민신청 관련 일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세월호 참사 당시에는 안산에서 1년을 살면서 세월호 법률 지원단 소속 변호사로 세월호 희생 피해자 가족 등을 도왔다.

“난민은 한국역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에요.” 황 변호사는 우리도 한때 난민이었다고 입을 뗐다.

그는 “상해 임시정부는 일본 박해를 피해 해외로 도피한 정치적 난민들이 만든 정부”라고 했다. 그는 “한국전쟁 때도 국제적인 난민보호 노력 덕에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우리 근현대사는 국제사회의 난민보호에 진 빚이 많다는 게 황 변호사의 설명이다. 제주 4.3항쟁을 전후로 1만명이 넘은 제주도민이 일본으로 이주했다. 군부독재 기간 적지 않은 정치인들이 정치적 망명을 했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황 변호사는 제주 예멘 난민 사태 초기 정부가 방관자적 태도로 난민에 대한 편견을 확산하는 데 일조했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처음부터 난민 혐오가 널리 퍼져 있던 것은 아니”라며 “무슬림에 대한 공격이나 독일 나치 추종세력이 사용하는 ‘레이퓨지’(RAPEFUGEES) 등의 용어가 제기됐을 때 정부가 ‘이건 아니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던졌어야 했다”고 강조했다.

난민은 영어로 ‘레이퓨지(REFUGEES)’다. 하지만 독일 극우세력 등은 ‘강간(RAPE)’과 합성한 ‘RAPEFUGEES’라는 악의적인 조어를 만들어 난민혐오를 조장한다. ‘난민=강간자’라는 편견이다.



제주 예멘인 난민 인정은 ‘0’명이다. 올해 국내에 들어온 예멘인 난민 신청자 481명를 대상으로 한 결과다. 심사 보류 결정을 받은 85명 중 난민 인정자가 나올 수 있지만 가능성은 희박하다. 지난 5월말 현재 누적 난민신청자 4만470명 중 2만361명에 대한 심사를 완료한 결과 839명이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난민인정률은 4.1%에 불과하다.

황 변호사는 “난민이 굉장히 특수하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대부분 난민은 급박한 피난으로 박해가능성에 대한 증거 없이 주장만 할 수밖에 없다”며 “주장의 신뢰성에 초점을 둬야 하지만 정부는 그 사람을 신뢰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본다”고 지적했다.

황 변호사는 은행원이었던 아버지가 홍콩 지점으로 발령나 3년을 홍콩에서 살았다.

그는 “중학교 시절 30-40개국 학생들이 같이 어울리는 국제학교를 다녔다. 친구가 흑인이든 백인이든 어느나라 국적이든 중요하지 않았다”며 “우연히 한국사람으로, 남자로, 이성애자로 태어났을 뿐 정체성을 절대화하는 게 굉장히 위험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황 변호사는 우리사회가 난민문제를 보다 따뜻한 시각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난민에 대한 이해 확대와 함께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난민은 어려운 문제인 게 맞습니다. 결국 ‘우리’를 어떻게 규정할 것이냐의 문제에 부딪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외국인은 ‘우리’의 범주 밖에 있던 존재였거든요.”

난민에 대한 막연한 공포·두려움도 그동안 접하지 못했던 미지를 접할 때 느끼는 당연한 감정으로 봤다. 하지만 거기에 멈추면 안 된다고 했다.

“협소한 의미에서 우리가 우선이라는 배타적인 태도에 그치지 말고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논의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조금 더 열린 자세로 역사에 대한 인식을 갖고 우리가 처한 상황을 제대로 봤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