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차례상, 직접 빚은 술로…"전통주 빚기, 어렵지 않아요"
by이성기 기자
2018.01.29 06:15:00
설맞이 ''신도주'' 빚기 체험 참가해보니
백설기·누룩 ·밀가루 약간, 재료 단출
''정종''은 일본식 청주 상표명
600여종 가양주 40여종 남아, "전통주 즐기는 사람 늘었으면"
| 27일 오전 서울 강남구 봉은사로 국순당 빌딩 2층 우리술 아름터 센터에서 열린 ‘설맞이 차례주 빚기’ 행사에서 시민들이 전통주를 직접 빚어보고 있다.(사진=국순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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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성기 기자] “맛의 차이가 느껴지나요.” “하나는 깔끔하지만 좀 단조롭고 다른 건 풍부하고 다양한 맛이 나네요.”
무술년(戊戌年) 새해 1월 마지막 주말인 27일 오전 서울 강남구 봉은사로 ㈜국순당 빌딩 2층 우리술 아름터 센터. 권희숙 책임연구원이 ‘설맞이 차례주 빚기’ 체험 참가자들에게 시음 소감을 묻자 각양각색의 반응이 쏟아졌다.
표현은 조금씩 달랐지만, 노르스름한 빛깔의 술맛이 더 낫다는 데엔 이견이 없었다. 투명한 술은 일본식 청주, 노르스름한 건 우리 전통 청주(약주)였다.
권 연구원은 “맛과 빛깔의 차이는 술 발효제인 누룩이 다르기 때문”이라며 “일본은 ‘코지’라는 쌀누룩으로 신맛이 적고 경쾌한 맛이 나는 반면, 밀누룩을 주로 사용하는 전통주는 복잡하고 다양한 맛을 낸다”고 설명했다.
이날 전통 차례주 ‘신도주’(新稻酒) 빚기 행사에는 20여명이 참가했다. 혼자 온 중년의 신사, 친구나 연인, 자녀를 데리고 온 부부까지 다양했다. 시음을 시작으로 전통주 소개와 역사 강의, 직접 술 빚기 순으로 진행됐다.
신도주란 말 그대로 햅쌀술로, 우리나라의 모든 술 빚기는 연중 첫 수확물인 햅쌀을 이용한 신도주에서 시작된다고 권 연구원은 설명했다. 조선시대에는 4대 명절(설·단오·추석·한식)에 빚는 술이 다 달랐다고 덧붙였다.
재료는 생각보다 단출했다. 햅쌀 500g으로 만든 흰 무리떡(백설기), 물 1ℓ, 전통 누룩 150g과 밀가루 15g.
잘게 뜯은 백설기에 물(700㎖)을 부어 덩어리를 풀고 누룩과 밀가루를 섞어 잘 버무린 뒤 남은 물을 넣고 섞어 주면 1차 담금 과정이 끝난다. 사나흘 뒤 1차 담금을 한 ‘술덧’(누룩을 섞어 버무린 지에밥)에 차게 식힌 고두밥(1㎏)과 물 1.25ℓ를 넣고 잘 혼합한 뒤 천이나 비닐로 덮고 고무줄로 잘 막아주면 담금 과정은 마무리된다. 발효 적정 온도는 25~27도다.
권 연구원은 “발효가 왕성해지면 미세한 공기방울이 올라오면서 경쾌하게 뽀글거리는 소리가 나고 술 향기가 솔솔 풍기게 된다”면서 “발효 과정에서 가스(이산화탄소)가 발생하기 때문에 용기 입구를 완전히 밀폐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자칫하면 ‘술 폭탄’이 될 수 있어서다.
2차 담금 후 열흘 정도 지나면 더이상 공기방울이 올라오지 않고 윗 부분에 맑은 층이 분리되면서 발효 과정이 끝난다. 알코올 16도 정도의 술이 만들어져 술덧을 걸러내면 된다.
여건상 직접 체험은 1차 담금 과정까지 진행됐다.
흔히 차례주나 제례주로 오해하고 있는 ‘정종’(正宗)은 일본 사케(일본식 청주)의 상표명이다. 과거 일제강점기(1910~1945)때 들어와 일반 명칭처럼 잘못 굳어진 것이다. 당시 가양주(家釀酒·집에서 담근 술) 제조 전면 금지 조치(1917)로 전통주가 대다수 사라지면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일본 술인 정종이 차례상에까지 올라왔다. 국내 전통와 일본식 청주의 가장 큰 차이는 주정 참가 여부로, 국내 전통제법으로 빚은 술은 주정을 넣지 않는다.
다양한 제조법으로 술의 전성기였던 조선시대 600여종의 가양주가 사라지고 현재 40여종만 남은 것으로 알려졌다. 시중에 나오는 백화수복·청하 등이 대표적인 일본식 청주이고 화랑·경주법주·예담 차례주 등은 전통 청주에 속한다.
중학생 아들과 함께 참여한 김철호씨는 “전통주에 관한 기본 지식도 배우고 아들과 직접 만들어 보는 과정이 재미있었다”며 “설이 보름여 남았는데 오늘 담금한 게 잘 발효가 돼 직접 빚은 술로 차례를 지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권 연구원은 “우리나라 대표 술이 뭔지 물어보면 대부분 선뜻 답을 하지 못한다”며 “체험 강의를 통해 수많은 전통주가 어쩔 수 없이 사라지게 된 역사를 알게 돼 좋았다는 시민들이 많다”고 전했다. 권 연구원은 이어 “희석식 소주나 양주에 입맛이 길들여져 전통주가 설 자리가 갈수록 줄어드는데 전통주를 기억하고 즐겨찾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한다”고 바랐다.
한편 국순당은 우리 술과 술문화, 술에 관한 지식을 즐기면서 배울 수 있도록 2011년부터 우리술 아름터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술 아름터는 ‘우리술을 체험하고 알아가는 곳’이란 뜻으로, 연 2회 설·추석 차례주 빚기 과정뿐 아니라 1일 과정(2시간) ‘우리술 첫걸음’과 주 1회(3시간) 8주 과정의 ‘우리술 벗되기’ 과정을 운영 중이다.
수강료는 우리 술 첫걸음 과정이 1인당 1만원, 우리 술 벗되기 과정은 30만원이다. 신청은 홈페이지 회원가입 후 온라인이나 전화로 할 수 있다.
| 국순당이 운영하는 ‘설맞이 차례주 빚기’ 행사 참가자들이 지난 27일 서울 강남구 봉은사로 국순당 빌딩 2층 우리술 아름터 센터에서 전통주를 직접 빚어보고 있다.(사진=국순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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