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지금 씨앗 뿌려도 2025년에나 결실"

by박진환 기자
2017.06.27 06:00:00

4차산업혁명 전도사 심진보 ETRI 그룹장, 인터뷰
4차 산업혁명 주도 유니콘 기업들 78%가 미국·중국계
"창조경제, 지나친 관 주도로 강요된 아이디어…한계"
"한국의 금융시스템, 아직도 2차 산업혁명 단계 불과"
"4차 산업혁명을 슬로건이나 키워드 아닌 본질 봐야"

심진보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기술경제연구그룹 그룹장이 4차 산업혁명에 대해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ETRI 제공
[대전=이데일리 박진환 기자] 4차 산업혁명이 화두다. 정부는 대통령 직속 ‘4차 산업혁명위원회’를 8월 중 출범시키기로 했다. 위원장의 위상도 높다. 총리급이다. 문재인정부는 4차 산업혁명위원회가 한국경제의 새동력을 찾는데 있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각 지방자치단체들도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하는 데 분주하다. 대덕과학특구를 끼고 있는 대전시는 ‘4차 산업혁명 특별시’를 조성하겠다며 의욕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움직임을 바라보는 과학계의 시선은 호의적이지 않다. 4차 산업혁명이 ‘창조경제’와 같은 슬로건으로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전 유성구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연구실에서 만난 심진보 기술경제연구그룹 그룹장은 “과거 3차례에 걸친 산업혁명이 손과 발 등 노동력 혁명이었다면 4차 산업혁명은 데이터의 수집·축적·활용으로 이를 통해 인간의 두뇌(지능)를 보완하고 대체하는 혁명”이라고 강조했다

심진보 그룹장은 2006년부터 ETRI에서 근무하면서 국가과학기술정책과 ICT R&D 전략, ICT 융복합산업 분석 등의 연구를 수행하는 등 국내 ICT 및 과학기술 융복합 분야 전문가다. ETRI 기술정책연구실장을 지냈다. 현재는 기술경제연구그룹장으로 제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국가정책방향과 R&D 전략을 구체화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최근 ETRI가 발간한 ‘대한민국 제4차 산업혁명-새로운 미래를 위한 전략과 통찰, IDX’의 제1저자다.

심 그룹장은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면 아주 파괴적인 기술이 나타날 것”이라며 “현재 인공지능 등 혁신적인 기술이 나오고 동시에 산업구조가 변하고 있다. 아직 우리가 체감하지는 못하지만 2025년이 되면 모든 산업구조가 변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 등지에서는 기업 가치가 10억달러(한화 1조원 상당) 이상인 비상장 스타업인 ‘유니콘(unicorn) 기업’이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고 있다.

대표적인 유니콘 기업으로는 미국의 우버(택시플랫폼 기업), 에어비앤비(숙박플랫폼 기업), 에버노트(스마트폰용 어플리케이션 개발 기업), 중국의 샤오미(전자제품 제조·판매사) 등이다.

세계적인 엔젤투자 조사 전문업체인 CB Insight에 따르면 올 1월 기준 글로벌 유니콘기업은 183개사로 이 중 55%가 미국 기업이며, 23%는 중국 기업이다.



심 그룹장은 “한국 정부나 지자체들은 4차 산업혁명을 녹색성장이나 창조경제와 같이 슬로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래서는 100전 100패 할 수 밖에 없다”면서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을 모른 채 기존의 녹색성장이나 창조경제에 이름만 바꿔서 예산을 따내고, 조직을 늘리는 수단으로 삼는 행태가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방향성을 정해야 한다. 교통 분야만 놓고 보더라도 경찰과 교통안전공단, 지자체 등 각 기관들이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수집하지만 정작 표준 메뉴얼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수집하다보니 축적이나 활용 단계로 가지 못하고 있다”며 “표준을 정한 뒤 쌓인 데이터를 인공지능으로 분석한 뒤 활용하는 것이 바로 4차 산업혁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가 4차 산업혁명 대열에서 낙오하지 않기 위해서는 금융시스템의 혁신적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 그룹장은 “4차 산업혁명이 선도하기 위해서는 금융시스템이 변해야 한다. 창업을 준비 중인 스타트업들에게 엔젤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는 아이디어만으로 창업에 필요한 자금을 투자하는 엔젤투자가 활성화됐지만 아직도 한국의 금융권에서는 담보물이 없으면 대출이 안 되는 기존 관행을 유지하고 있다. 아이디어에 대한 투자가 없는 한 4차 산업혁명은 요원한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최근 대전시가 대통령 공약사업으로 추진 중인 ‘4차 산업혁명 특별시 조성사업’에 대해 심 그룹장은 “대전시는 교통 등 각종 빅데이터가 많다고 자랑하지만 활용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대전은 대덕연구개발특구에서 나온 기술을 테스트할 수 있는 전용지구를 조성하는 것부터 해야 한다. 풍력과 태양열과 같은 신재생에너지부터 드론, 자율주행자동차 등 정부출연 연구기관 및 기업들이 개발한 신기술을 실제 적용해보는 테스트배드를 구축한 뒤 지역의 행정, 복지, 환경, 의료 등 각종 빅데이터를 모을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지자체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전 인근의 충북 오창의 세종을 하나의 융합벨트로 묶어 신기술을 자유롭게 테스트할 수 있는 ‘규제 프리존’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은 시도”라며 “진정한 융합을 위해 부처·기관간 칸막이가 없어져야 한다”고 했다.

심 그룹장은 “4차 산업혁명에 대한 투자 성과는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에 나오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씨앗을 뿌리면 빨라야 2025년에나 그 열매가 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전시가 ‘다시 뛰는 대전경제, 우리가 함께합니다’라는 슬로건 아래 ‘4차 산업혁명 특별시 대전’ 비전 선포식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대전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