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한달]30여년 화원운영해온 老사장의 눈물
by채상우 기자
2016.10.27 05:00:06
김영환 예당화원 대표 인터뷰
IMF도 견뎠지만 김영란법 폭풍은 자신이 없어
국민도 "대의를 위해 소를 희생하라"는 말뿐
김영란법 폐지 원하는 것 아니야..최소한의 구제대책 마련해야
[이데일리 채상우 기자] 김영환 예당화원 대표는 지난 30년 동안 꽃을 만지고 살았지만 지금처럼 힘든 시기는 없었다고 한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하 김영란법)이 시행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벌써 주변 화원 두 곳이 사업을 정리했다.
얼마 전에는 주문을 받고 배달한 화환이 전달되지 못하고 돌아오는 일이 있었다. 수취인이 화환을 거부한 것이다. 전달되지 않은 제품에 대해 고객에게 값을 요구할 수 없었고 결국 손해를 고스란히 떠안을 수 밖에 없었다.
| 직원을 정리한 김영환 예당화원 대표가 직접 꽃바구니를 만들고 있다. 사진=채상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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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화원업계는 10월에 들어서면 본격적으로 바빠진다. 결혼식과 한 해를 정리하는 기업 행사가 몰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는 그런 특수를 기대하기 힘들어졌다. 가게 한쪽에 놓아둔 스케줄표는 지난해와 달리 휑한 모습이다. 10월 매출액은 1년전의 실적의 70%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나마 김 대표는 단골손님이 많은 편이지만 다른 사업자들중 매출이 지난해 절반도 안되는 곳이 태반이다.
김 대표는 얼마 전 가게에서 꽃바구니 등을 만들어 주는 김 씨에게 더는 일을 줄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화원을 운영하는 데 인건비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감을 줄 수 없게 됐다.
김 대표가 보여준 냉동 창고안에는 차가운 한기 속에 배달되지 못한 화환이 빼곡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다시 돌려보낸 화환, 배달도 되기 전에 취소된 화환들이다.
| 냉동창고에는 팔리지 못하고 반품된 화환들이 가득차 있었다. 사진=채상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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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는 “차가운 창고 안에 갇힌 화환들을 보고 있노라면 고시원 골방에 있는 아들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나이 50에 품에 안은 늦둥이였다. 선생님이 되고 싶다며 사범대학에 들어가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다.아들에게 들어가는 돈이 한 달에 150만원이다. 그는 “아들 교육비가 부담될 수밖에 없지만 부모 마음에 줄이자고 할 수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 대표는 “우리 삶이 이렇게 힘들어졌지만 정부와 국민은 우리에게 조금의 관심도 두지 않는다. 그래서 더 참담하다”며 “온갖 부정부패에 이골이 난 국민은 김영란법에 환호하고 있다. 언론을 통해 우리의 힘든 삶이 전해지더라도 ‘대의를 위해 소는 희생해야 한다’는 국민의 반응이 무섭다”고 했다. “IMF 외환위기 당시만 하더라도 온 국민이 어려움을 서로 이해하고 돕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그 어려움을 견딜 수 있었던 건 그런 국민의 이해와 공감 덕이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1970년 월남전에 참전한 참전용사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목숨을 바칠 각오를 하고 전장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그는 “하지만 정작 정부는 나라를 위해 몸바친 국민의 호소에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몇 차례 정부에 구제 방안을 협회 차원으로 요청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추후에 문제점이 생기면 그때 고치겠다는 답뿐이었다”고 아쉬워했다.
김 대표는 “이미 문제는 시작됐다. 오늘도 많은 화훼업계 종사자들이 수십 년간 함께 일해 온 직원들과 작별하고 삶의 터전인 사업장의 문을 닫고 있다”며 “부정부패를 없앤다는 김영란법의 방향이 잘못됐다는 게 아니다. 우리 같은 소상공인들에 대한 최소한의 구제대책이라도 마련하고 시행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 이렇게 늘어놓은 푸념이 국민과 정부의 관심을 돌릴 수 있기를 희망한다”며 인터뷰를 마쳤다.
| 양재 화원단지 내에 점포정리 중인 가게 모습. 사진=채상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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