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에 앞선 예술'…백남준 다시보기

by김용운 기자
2015.01.23 06:42:10

학고재갤러리 ''W3''
백남준 10주기 추모열기 서막 열어
월드와이드웹 예견한 ''W3''등 12점 전시
3월15일까지

백남준이 1974년 구상을 시작해 1994년 제작한 ‘W3’. 기술발전의 속도가 백남준의 상상력보다 20여년이 늦은 셈이다(사진=학고재갤러리).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아직 1년 남았다. 그러나 추모와 재조명의 열기가 벌써부터 가열되고 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의 10주기를 앞둔 올해. 백남준과 관련한 전시와 소식들이 속속 전해지고 있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학고재갤러리에서 3월 15일까지 열리는 백남준 개인전 ‘W3’는 백남준 10주기의 서막과 같은 전시다. 학고재갤러리는 이미 지난해 하반기에 중국 항저우 삼상현대미술관에서 ‘우리가 경탄하는 순간들’ 전과 학고재상하이갤러리에서 ‘백남준을 상하이에서 만나다’ 전을 열며 ‘백남준 열기’에 미리 군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이번 ‘W3’ 전에 출품한 작품은 앞서 중국서 열린 전시의 출품작 중 12점을 추려 마련했다.

전시제목이자 작품명인 ‘W3’는 인터넷을 지칭하는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을 뜻한다. ‘W3’는 백남준의 선견지명이 담긴 작품으로 유명하다. 1974년 백남준은 미국 록펠러재단에 ‘전자 초고속도로’라는 제목의 제안서를 내며 작품구상을 밝혔다. 그러나 작품이 세상에 나온 것은 20년 뒤인 1994년이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백남준의 구상을 기술이 따라오는 데 20년이 걸렸기 때문이다.

64대의 모니터를 무한대(∞) 기호가 반복되는 듯한 형상으로 벽면에 부착시킨 ‘W3’는 20분짜리 영상이 1초 간격으로 옆 모니터에 전달되며 끊임없이 번쩍거린다. 영상에는 현대무용가 머스 커닝엄의 동작, 첼리스트 샬럿 무어만의 연주 퍼포먼스, ‘굿모닝 미스터 오웰’의 장면 등이 담겨 있다. 40년 전인 1974년 백남준은 이미전자통신기술이 가져올 소통의 변신을 예견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유선전화조차 대중화되기 이전이었다.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를 세상에 알린 ‘1963년도 싱글채널비디오’도 중요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백남준은 생전에 “예술가의 역할은 미래를 사유하는 것”이라고 끊임없이 주장했다. ‘1963년도 싱글채널비디오’는 백남준 주장의 근거를 볼 수 있는 작품이다. 1963년 독일의 서부도시 부피탈의 파르나스갤러리에서 백남준은 TV 갤러리를 캔버스 삼아 전자파동으로 화면을 변동시켜 소리를 이미지로 바꾸거나 이미지를 왜곡시켜 움직이는 회화를 선보였다. 방송국의 영상을 내보이기만 했던 텔레비전이 예술작품으로 변모할 수 있다는 파격을 보여준 것이다.

첼리스트 샬럿 무어만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샬럿’. 가운데 인간 얼굴의 형상을 한 첼로가 세워져 있고 11개의 모니터 화면에는 샬럿의 퍼포먼스 장면이 재생된다(사진=학고재갤러리).


당시 선보인 5점의 싱글채널 모니터 작품 중 한 점도 이번에 나왔다. TV 모니터 안에 수조를 설치해 유유히 유영하는 금붕어를 볼 수 있는 ‘금붕어를 위한 소나티네’를 비롯해 예술가로서 평생 교감을 나눴던 무어만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샬럿’과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에 대한 존경을 담은 ‘톨스토이’ 등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한편 백남준에 대한 재조명은 2013년 미국 스미스소니언박물관에서 전시가 열리면서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10년 만에 뉴욕서 록펠러재단 주최로 개인전이 열렸다. 10월에는 장 미셸 바스키아, 로이 리히텐슈타인, 파블로 피카소, 요셉 보이스 등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가고시안갤러리와 전시·출판 관련 계약을 맺었다. 11월에는 영국 테이트모던에서 전시가 열렸다. 국내서는 이번 전시에 이어 용인 백남준아트센터가 29일 추모식 및 백남준아트센터국제예술상 시상식을 진행한다. 이날 ‘TV는 TV다’ ‘2015 랜덤 액세스’도 개막한다. 서울시는 백남준 생가가 있는 종로구 창신동 일대에 ‘예술문화거리’를 조성할 계획이다.

우찬규 학고재 대표는 “그간 위상에 비해 저평가된 백남준 작품의 가치가 10주기를 앞두고 급격히 상승하고 있다”며 “백남준은 시간이 갈수록 시대를 앞서간 예술가로 높은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02-720-15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