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뒤쿵하고 수억 땡기자" XX파·△△파 조폭, 뭉쳤다[보온병]
by유은실 기자
2024.07.20 08:00:00
조폭 주도한 ''가해자·피해자'' 보험사기 역할극
60명 동원···탄탄한 시나리오로 역할 안 겹치게
[이데일리 유은실 기자] “쿵, 이 정도로 살짝만 박으면 돼”
XX파 조직원인 A씨는 자차를 끌고 가다가 앞에 있던 그랜져 차를 박았다. 그랜져 차에는 △△파 조폭 B씨와 그의 지인들이 탑승해 있었다. 조직간 싸움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사고지만, 분위기가 험악해지지는 않았다. ‘보험처리’라는 선약 때문이다. 이들은 서로 짜고 사고를 낸 뒤 보험금을 나눠 갖는 이른바 ‘뒤쿵 사기’로 뭉친 조폭 연합이다.
가해자 역할을 맡은 A씨와 피해자 역할을 맡은 B씨는 렌터카를 이용해 100여 차례에 걸쳐 고의 사고를 유발했다. 이들 보험사기극의 특징은 ‘정교한 시나리오’와 ‘막강한 섭외력’이다. 연기를 위한 다양한 주·조연을 섭외해 일부로 사고를 낸 뒤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했다. 보험사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상호간 역할이나 관계가 겹치지 않도록 시나리오도 짰다. 동원된 사람만 약 60여 명이다.
보험사기극 캐스팅도 깐깐하게 치러졌다. 추후 적발 가능성에 대비해 입이 무거운 가담자를 골라 낸 것이다. 조폭 A씨는 배우자까지 끌어들여 범행에 가담시켰다.
하지만 비밀은 없었다. 보험사에 ‘조직폭력배들이 선후배나 지인을 이용해 고의 보험사고를 내고 보험금을 챙기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해당 보험사는 조폭 수사 베테랑 수사관과 공조해 보험사기 가능성을 가늠해보는 조사에 착수했다. 먼저 사고정보시스템을 활용해 핵심 관련자인 A씨와 B씨를 가려냈다. 추출된 혐의자에 대한 과거 8년 사고 기록로 모두 훑었다.
사고청구 건 중 가피(가해자·피해자)공모 혐의를 시인한 경험이 있다는 점, 사고 가담자들이 각각 보험금을 배분한 정황이 있다는 점 등 덕분에 조직폭력배의 뒤쿵 보험사기가 세상에 알려졌다. 통신·금융계좌 추적에 덜미가 잡힌 조폭들이 보험사로부터 약 4억5000만원 상당을 편취했다고 자백하면서다.
이같이 보험금을 노리고 고의 사기를 작당하는 보험사기꾼이 증가하면서, 보험사기 적발액도 증가 추세다. 지난해 자동차보험사기 적발 금액은 5476억원으로 1년 만에 16%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고의사고 적발 건 역시 3% 증가했다. 이에 보험업계는 올해 6월 서울경찰청, 치안정책연구소 등과 ‘고의 교통사고 보험사기 사전예방’ 협약을 맺고 고의 교통사고 보험사기 근절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은 보험사기의 행태를 통해 사회의 ‘온’갖 아픈(‘병’든) 곳을 들여다보는 동시에, 보온병처럼 세상에 온기를 불어넣어주는 따뜻한 보험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