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면의 사람이야기]연금개혁이란 유언비어
by송길호 기자
2023.12.07 06:15:00
보건복지부가 심의·확정한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엔 구체적인 수치와 대안 없이 방향성만 나열됐다. 공을 넘겨받은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는 “공론화위원회를 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 틀이 잡힌 안건을 주고 의견을 물어야지, 백지상태로 운영하기는 어렵다”며 다시 정부에 논의를 요청했다. 핑퐁 개혁의 시작이다.
연금특위 자문위가 제출한 이른바 ‘더 내고 더 받기’안(소득대체율 40%→ 50%, 보험료율 9%→13%)과 ‘더 내고 그대로 받기’안(소득대체율 40% 유지, 보험료율 9%→15%)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금의 고갈 예상시기는 현행 2055년에서 7년, 16년 연장되게 된다. 결국 한창 국민연금을 납부해야 하는 1997년생이 수급연령인 65세가 될 때에는 기금이 고갈 된다는 뜻이니 그야말로 언 발에 오줌누기식 개혁이 아닐 수 없다.
사실 ‘개혁’이라 칭하기도 부끄러울 정도다. 지금 국민연금을 부담하는 세대의 동참을 위해서는 시작부터 젊은 층의 기금소진에 대한 우려를 덜어줄 수 있는 연구가 전제돼야 하는데 그러려면 적어도 기금 고갈을 30년은 연장시킬 수 있는 안이어야 하고 기득권자의 양보와 지급 제한 또한 피할 수 없다. 그런데 1년 가까이 활동한 연금특위가 내놓은 대책은 기득권자는 그대로거나 더 받자는 식이니 미래세대의 희생만을 전제하고 있다.
정부와 국회가 책임과 역풍을 주고받는 동안 황금 같은 시간은 지금도 흐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미 모수개혁만으로는 국민연금의 장기적 재정 균형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1988년 출범 당시 보험료 3%, 소득대체율 70%였던 국민연금은 처음부터 지속가능하지 않은 비현실적인 제도였다. 그리고 불과 30년 만에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아이를 적게 낳고, 가장 오래 사는 나라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비정규직은 급속히 늘어났다.
1998년과 2007년 두 차례에 걸쳐 더 내고, 덜 받고, 늦게 받는 방식으로 조정을 거쳤지만 제도의 수정보다 환경의 변화 폭이 너무 가파르다. 아무도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순 없다. 다만 변화에 대한 대응은 더 적극적이고 빨랐어야 했다. 16년이라는 시간을 그냥 흘려보낼게 아니라 구체적인 숫자와 시나리오를 놓고 치열하게 토론하며 보험료율, 소득대체율, 수급개시연령을 보정했어야 하고 여차하면 정부재정 투입논의도 시작했어야 한다. 1998년 이후 25년 간 보험료율을 단 1%포인트도 올리지 못했는데 그 동안 우리 경제는 지속적으로 성장해왔다. 성장기에도 올리기 어려운 보험료율을 만성적인 저성장 국면에 접어든 지금 말해 무엇할까.
국민연금 개혁안이 제도의 지속가능성과 국민적 동의 확보라는 이중적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선 이제부터라도 자식 세대, 손주 세대의 목소리를 개혁안에 담아야 한다. 청년은 부담만 하고 혜택은 받지 못하는 식의 개혁안은 세대 간 불화만 불러일으키고 청년들의 동의를 받지 못한다.
최소한도로 다음세대의 동의를 구한다면 첫째, 모두가 더 일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국가 경제성장과 개혁이 밑바탕이 돼야 수급과 재정적 연금지급이 가능하다는 국민적 합의와 행동도 약속돼야 한다. 특히 보험료인상이 기업의 인건비에 그대로 반영되고 이는 국가 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둘째, 일단 지급연령을 늦추자. 그리고 국민연금의 장기적 재정건정성과 함께 사회 전체적인 안전망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함께 이뤄져야한다. 이미 인구는 줄어들기 시작했고 노인의 비중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그만큼 MZ세대의 부모세대 부양에 대한 부담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만으로 노후를 보장받을 수 없다는 것은 청년들이 더 잘 안다. 이 빈틈을 메워줄 2중, 3중의 노후 안전망을 촘촘히 설계하고 이것이 청년 세대가 은퇴했을 때 정상적으로 작동할 것이라는 믿음을 줬을 때 MZ세대들도 지금 오고 가는 국민연금 개혁안에 찬성할 수 있다. 단 1%라도 더 내야 한다면 명분이 확실해야 하고 마지막 선택이어야 한다.
셋째, 손 쉬운 세금 투입은 미래 세대에게는 재앙이다. 1000조가 넘는 국민연금의 적정운영수익제고에 국가적 능력이 투입돼야 한다. 말이 아닌 시스템 구축으로 세계적 연금의 수익률을 달성 할 수 있다는 충분한 믿음이 안심하고 노후를 맡기는 유인책이 될 수 있다.
넷째, 수명 증가분 정도를 감액 지급하자. 모든 국민이 같은 인식을 갖기는 어렵다 해도 기 연금수급자의 양보가 우선시 돼야 한다. 이로 인해 미래 세대에 의존하는 연금 정책의 선순환이 가능하다.
나아가 보험료 인상은 기업과 자영업자의 부담이 인상액의 50%, 100%로 증가될 것인데 이에 대한 당사자와 사회적 동의가 필요하다.
모든 개혁은 그에 따른 반발과 고통이 뒤따른다. 전 국민이 가입대상인 국민연금을 개혁하자고 하면 당연히 온 국민이 싫어할 수밖에 없다. 정치인들이 그로 인해 선거에서 불리해질 것을 두려워하는 것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그래도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 역사가들은 이명박, 문재인 정부는 단 한 차례도 연금을 개혁하지 않았으며 그것이 후세대에 무책임 폭탄을 떠넘긴 결정이었다고 기록하고 기억할 것이다. 윤석열 정부에겐 아직 시간과 기회가 있다. 지금 광장으로 나가 대학생, 사회초년생들의 목소리를 듣고 이들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어떻게 하면 개혁안에 찬성표를 던지게 할지 연구하라. 가장 큰 부담을 져야 할 MZ세대가 원하는 개혁, 멀리 보는 정의적 개혁이 곧 제대로 된 개혁이다.
IMF는 대한민국의 연금개혁 없이는 50년 후 정부부채는 4배가 될 것이라고 했다. 퇴직연령 연장은 물론 기업이 부담해야 할 부분에 대해서도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 한 세대가 안심하고 노후를 맞이할 수 있는 아름다운 개혁을 위해서는 각자의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또한 단순한 보험료율 계산에서 더 나아가 노동개혁은 반드시 함께 논의돼야 하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이런 부분의 개선 없는 연금개혁이란 허무맹랑한 유언비어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