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규 前 검찰총장 "검찰 개혁 명분으로 형사사법 제도 망가뜨려"

by이연호 기자
2021.10.29 06:30:00

''흙작가''로 제2의 삶 시작한 이명박 정부 검찰총장 김준규
"대장동 수사, 국민들이 검찰 믿어 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
"국민들에게 믿음을 얻는 소신을 이제 다시 세울 때"
"검찰 개혁 20~30년 하는 나라는 처음 본다" 비판

[이데일리 이연호 하상렬 기자] “검찰 개혁을 명분으로 형사사법 제도를 망가뜨렸습니다. 결국 망가진 제도의 피해자는 서민이 될 것입니다”

[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30년 검사 생활을 마치고 흙작가로 제2의 삶을 시작한 김준규 전 검찰총장. 그는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대장동 개발 사업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후배 검사들에게 소신 있는 수사를 강조했다.
검찰총장 출신 조각가. 생뚱맞은 얘기 같지만 김준규(66·사진) 전 검찰총장의 몸에는 피아니스트인 부친의 피를 물려받아 ‘예술가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비운의 천재 조각가’로 유명한 권진규 작가(1922~1973)의 ‘소녀상’을 우연히 교과서에서 접한 것을 계기로 교내 소조반에 들어가, 홍익대 주최 미술경시대회에서 흙 작품으로 ‘조소 부문 1위’까지 차지할 정도로 재능을 인정받았다. 그런 그이기에 30년 검사 생활을 마치고 흙작가로 제2의 삶을 시작한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런 그가 후배 검사들에게 쓴소리를 했다. 최근 대장동 개발 의혹 사건 수사를 두고 늑장·부실 수사라는 논란에 휩싸인 검찰의 현주소를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큰 것 같았다. 현 정부 검찰 개혁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명박 정부에서 검찰총장을 지낸 김 전 총장과의 인터뷰는 그의 첫 조소 작품 전시회가 열린 지난 22일 서울시 가회동 한옥갤러리 일백헌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김 전 총장과의 일문일답.

△책(흙을 만지며 다시, 나를 찾다) 쓰고, 전시회 준비하느라 너무 지쳤다. 기진맥진이다. 전시회가 끝나면 병원에 실려가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내가 예술을 하고 싶고, 작품을 만들고 싶어서 흙작가를 하게 된 것인데 일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지인들이 변호사 해서 편하게 돈 벌며 살면 될텐데 왜 사서 고생하냐고 그러는데, 흙을 만지고 작품을 만드는 게 너무 즐거워 이쪽 일을 계속할 것이다.

△맞다. 그런 의미다. 자소상(自塑像)을 만들고 잘라 보니, 가면처럼 만들어졌다. 우리는 좋아도 좋은 표정을 짓지 말라 하고, 화나도 그런 표정을 짓지 말라고 배웠다. 여태까지 내 얼굴의 모습이 ‘가면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작품 후에 흙작가로서의 나를 만들었다. 밝고 편하고 숨길 것도 없는 나를.

△총장까지 했으니 검사로서의 삶도 의미가 있다. 또 새롭게 살아보자고 해서 작가로서의 길을 가는 것이므로 이 길도 의미가 있다. 그럼 과연 내가 누구인가. 검사로서의 내 모습이 나인가, 작가로서의 모습이 나인가. 그것은 아직도 찾고 있다. 그래서 책 제목이 ‘다시, 나를 찾다’다.

△흙을 만졌을 때 감촉이 정말 좋다. 흙이 모든 조형물의 기초 작업이다. 다만 사람들이 흙을 조금 배우고 더이상 흙 작품을 만들지 않는다. 상업성이 없기 때문이다. 흙에 만족한다. 흙을 만지면 복잡한 디지털 세상 속에서 아날로그적 편안함을 느낀다. 고 권진규 작가 이후로 흙 작품 100개를 만든 사람은 없다. 내가 미대를 나오지 않았지만, 100점을 목표로 한다면 예술적으로 나를 지적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모습이 검사 시절에도 숨겨져 있었을 것이다. 평생 쓴 가면처럼 감추고 살았던 것이다. 다만 검사 시절에도 여유가 있었다. 한 매체에서는 나를 ‘낭만검객’으로도 표현했다. 내가 과연 천성이 바르고 고운 사람인가. 나는 아주 감성적이고 전략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법을 하면서 ‘졸렌(Sollen·당위)’을 나로 알고 반듯하게 살았다. 그 안에는 ‘자인(Sein·존재)’의 나, 원래의 나가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그게 필요 없는 상태에서 나를 표출하고 싶은 것이다. 이번에 간단히 전시회를 열면서 그게 하나의 주제가 됐다. 새롭게 살고 싶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었다. 여러 가지 생각 중 결국 창작이 하고 싶었다. 검사 30년은 창작이 아니었다. 나의 모습을 살고 싶었다.

[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김준규 전 검찰총장이 최근 서울 종로구 가회동 일백헌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년 65세’라는 명제를 놓고 고민했다. ‘65세 이후로 건강히 오래 살자’라는 막연한 구상만 있었다. 새로운 삶을 살아보자는 마음가짐 속에서 책을 보다 ‘새로운 삶을 살려면 기존에 계획된 삶을 먼저 포기하라’는 구절이 꽂혔다. 2019년 말 화우 정진수 대표변호사를 만나 ‘2020년 1월부터 나오지 않겠다’고 말했다. 정 대표가 3월까지만 근무해 달라고 요청해서 그렇게 했고, 로펌을 나온 뒤 집에서 작업을 시작해 1년 6개월 만에 작품이 50점이 돼 전시회를 열게 됐다.

△지금은 검찰을 우습게 보지만, 당시엔 내 마음대로 했다. 대통령도 검찰총장을 건드리지 못했다. 고인이 된 권재진 당시 민정수석비서관과도 워낙 친했다. 그렇다고 내가 정도를 벗어나진 않았다. 중립적으로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검사 생활에 대한 후회도 없다. 보람 있게 했다. 다만 다시 태어나서 검사를 할 것이냐고 묻는다면 죽어도 안 할 것이다.

△검사 생활을 훌륭히 했지만, 힘들어서 다시 하고 싶진 않다.

△내가 총장 시절 이전부터 검찰 개혁 이야기는 나왔다. 어떤 개혁에 대해 20년 넘게 하는 나라는 없다. 지금 정권은 노무현 대통령 사망 이후 검찰을 원수로 생각한다. 검찰 개혁을 명분으로 형사 사법 제도를 망가뜨렸고, 결국 형사 행정 절차가 돼 버렸다.

△이번 수사가 국민들이 검찰을 믿어 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실패하면 검찰은 다 끝난 것이다. 그런 점을 명심하고 소신껏 잘해 줬으면 좋겠다. 본인들이 실제 권력에 휘둘리지 않아도 휘둘리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 실패한 수사다. 보이는 것까지 잘하려면 단단하게 나가야 한다. ‘쇼한다’, ‘엉터리 수사다’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 자체도 검찰의 잘못이다.

△검사의 도(道)로 4가지를 말한다. ‘성실’, ‘청렴’, ‘소신’, ‘정직’. 이제는 소신을 다시 세울 때라고 생각한다. 그 소신은 자신의 주관이 아니라 국민들이 믿어 주는 소신이다. 성실, 청렴, 정직은 기본이고, 국민들에게 믿음을 얻는 소신을 세워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