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가 있는 여행②] 한국 음악계를 호령한 ‘마왕’을 만나다

by강경록 기자
2019.12.01 10:05:18

한국관광공사 12월 추천 가볼만한 곳
글·사진= 최갑수 여행 작가

한가로운 분위기의 신해철 거리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전설적인 뮤지션을 기리고 관광 콘텐츠로 만들어 유명해진 도시가 있다. 멤피스는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를, 리버풀은 록그룹 비틀스를, 시애틀은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와 록그룹 너바나를 관광 콘텐츠로 개발해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스톡홀름은 아바(ABBA)박물관에 관광객을 불러 모은다. 우리나라도 대구의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이 성공 사례로 꼽힌다. 김광석을 테마로 그린 벽화가 있고, 다양한 관련 행사가 열린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있는 신해철 작업실 주변으로 신해철거리가 조성됐다.

거리 곳곳에 신해철이 만든 곡의 가사를 써놓았다


◇하늘의 별이 된 신해철을 만나다

‘마왕’이라 불리며 수많은 명곡을 쏟아낸 신해철은 지난 2014년 10월 27일, 장협착 수술을 받은 지 며칠 만에 저산소 허혈성 뇌 손상으로 하늘의 별이 되고 말았다. 신해철거리는 성남시와 팬들이 그를 추억할 수 있는 흔적과 마음을 모아 만든 곳. 마이크를 잡고 앉은 신해철 동상을 중심으로 160m 정도 이어진다.

거리 바닥에 각계각층 사람들이 생전의 그를 추모하는 글이 눈에 띈다. “신해철, 그리운 이여. 무대 위에서 포효하는 당신의 모습을 기억하며 그리운 마음 가슴에 담아두겠네. 음악으로 영원히 우리 곁에 남아 있을 친구여…”(가수 인순이), “힘들었던 시절 형님의 노래 ‘날아라 병아리’를 들으며 위로 받던 때가 있었습니다. 언젠가 날아오를 그날을 꿈꾸던 내게 친구가 되어준 그 노래… 내 마음속 영원한 마왕”(방송인 유재석).

넥스트 공연 포스터


신해철이 쓴 노랫말도 나무 푯말에 새겨졌다. “세월이 흘러가고 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 때 누군가 그대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나 지나간 세월에 후회 없노라고”.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중에서.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으며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는 정말로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민물장어의 꿈’ 중에서.

신해철은 1988년 12월 열린 대학가요제에 밴드 무한궤도의 보컬로 참가해 ‘그대에게’라는 노래로 대상을 받았다. 1990년 솔로 가수로 나서며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 ‘재즈 카페’ ‘내 마음 깊은 곳의 너’ 등이 잇달아 히트했다. 이후 밴드 넥스트를 결성해 1992년 ‘인형의 기사’ ‘도시인’ 등을 발표하며 독자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해갔다.

신해철 거리 입구


◇그는 왜 ‘독설가’로 살았을까

그는 활발한 사회 참여와 독설로도 늘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사람들이 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느냐고 물으면 신해철은 이렇게 대답했다. “남들이 똑같이 걷는 길에서 낙오하는 것에 대한 무서움보다 내가 진실로 원하는 나의 삶을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무서움이 훨씬 더 엄청나게 무서웠기 때문에 그냥 나의 방식을 택했다.” 그는 MBC ‘100분 토론’의 단골 토론자였고, 라디오 프로그램 ‘신해철의 고스트스테이션’을 진행하며 청춘들을 위로했다.

신해철 작업실 응접실


그가 노랫말을 쓰고 곡을 만든 ‘신해철스튜디오’에는 아직 그의 자취가 생생하다.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응접실이 나온다. 벽을 가득 채운 서가에는 ‘앎의 의지’, ‘도올 김용옥의 금강경 강해’, ‘북조선 탄생’,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워렌 버핏 평전’, ‘빌 게이츠@생각의 속도’, ‘짧은 여행의 기록’ 등 인문, 사회, 문학, 경제, 역사, 종교를 망라한 책이 빼곡하다. 일본 만화 ‘노다메 칸타빌레’ 전집, ‘반지의 제왕’과 ‘해리 포터’ 시리즈, 프랭크 허버트의 ‘듄’ 시리즈, 국내 판타지 만화가 강경옥의 ‘두 사람이다》’ 등도 눈에 띄어?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보인 신해철의 취향과 엄청난 다독 습관을 짐작할 수 있다.

신해철 작업실 입구


서재 옆은 음악 감상실이다. 한쪽 벽에 넥스트 콘서트 때 입은 의상이 걸려 있는데, 이 옷을 입고 열창하던 고인의 모습이 겹쳐진다. 1997년 EMI에서 발매된 넥스트의 라이브 앨범을 감상할 수 있다. ‘신해철의 고스트스테이션’에서 조사한 ‘자장면 계란 회복 및 전 국민 운동’ 등 라디오와 관련된 원고도 가지런히 놓였다. 음악 감상실을 이리저리 돌아보노라면 “자, 이제 녹음해야지”라며 그가 문을 열고 들어설 것 같다.



컴퓨터가 놓인 책상 옆에 일정표가 있다. 그의 마지막 스케줄은 2014년 10월 30일 오후 4시 JTBC ‘속사정 쌀롱’ 녹화. 신해철은 이 일정을 끝내 소화하지 못했다. 녹화 사흘 전에 의료 사고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모니터 앞에는 그가 피우던 담배가 있는데, 밤새 담배를 피우며 음악을 만드는 그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복도 게시판에는 그를 추모하는 팬들의 간절한 글귀가 빼곡하다. “오빠, 너무 늦게 왔네요. 마음속에 잊지 않고 새길게요, 위로해줘서 고마웠어요.” “하늘에서는 꼭 행복하세요.” “마왕 보고 싶다. ㅠㅠ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그곳에서 즐겁고 신나게 있어요. 저도 그럴게요.” 그를 기리고 추억하며 쓴 글을 보자니 어느새 눈시울이 촉촉해진다.

신해철을 그리워하는 동료들의 추모글


◇볼거리, 놀거리 가득한 도심 속으로

신해철거리에서 나와 가까운 곳으로 도심 여행을 떠나보자. 율동공원은 조선 전기 문신 한계희 선생을 기린 청주한씨문정공파묘역신도비(경기문화재자료 84호), 삼일운동기념탑이 있으며, 번지점프장으로 유명하다.
율동공원 산책로
공원이 자리한 동네는 백제 시대부터 밤나무가 많아 율동이라 불렸다. 호수를 따라가는 공원 내 산책로가 운치 있다.

율동공원번지점프장 맞은편에 책테마파크가 있다. 아이들과 조용한 겨울을 만끽하기 좋은 곳이다. 진입로에 자리한 조형물이 세계 각국의 문자로 꾸며져 이채롭다. 2006년 개관 당시 ‘문자와 이야기, 신화, 종교, 철학, 과학, 예술, 역사 등 인간 세상의 모든 것을 담은 책’이라는 주제로 설계했다고 한다. 책 카페와 야외 공연장도 있어 미리 행사 일정을 알아보고 가면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성남큐브미술관의 전시품


성남아트센터는 오페라하우스, 콘서트홀, 앙상블시어터 등 실내 공연장 세 곳과 야외 공연장에서 수준 높은 공연을, 성남큐브미술관과 갤러리808에서 다양한 전시를 관람할 수 있는 복합 문화 공간이다. 12월 22일까지 성남큐브미술관에서 ‘2019 성남의 얼굴전―집’이 열린다. 성남에 살거나 살았던 작가들의 경험과 기억, 생각을 통해 집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고, 각자가 느끼는 집은 어떤 모습인지 살펴보는 전시다. 회화, 설치, 사진 등 다양한 작품이 볼 만하다.

현대백화점 판교점에 있는 현대어린이책미술관은 국내 최초로 책을 주제로 꾸민 어린이 미술관이다. 국내외 그림책 6000여 권이 있고, 작가와 함께하는 워크숍, 다양한 기획 전시와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아이들이 문학적 상상력과 예술적 감수성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

다양한 책 관련 체험을 할 수 있는 현대어린이책 미술관


◇여행메모

△당일 여행 코스= 신해철거리→율동공원→책테마파크

△1박 2일 여행 코스= 신해철거리→율동공원→책테마파크→숙박→성남큐브미술관→현대어린이책미술관

△먹을곳= 수정구 수정로의 ‘초원의집’은 누룽지백숙, 분당구 새마을로의 ‘분당유황오리진흙구이’는 오리구이, 분당구 탄천로의 ‘감미옥 분당점’은 설렁탕이 유명하다.

△주변 볼거리= 모란민속5일장, 남한산성, 중앙공원, 탄천, 정자동카페골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