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보사 사태 파장…바이오 '깐깐 IPO심사'에 VC업계 시름
by이광수 기자
2019.06.05 05:40:00
브릿지바이오·메드팩토 등 기술성 평가서 제동
"바이오 심사 당분간 보수적"…일부 VC 투자 비중 조절 움직임
압타바이오 수요예측 흥행…바이오 옥석 가리기 시작
[이데일리 이광수 기자] 신약 개발 업체 브릿지바이오테라퓨닉스는 올해 상장(IPO)을 목표로 기술성평가를 신청했다. 하지만 지난달 말 전문 평가기관 두 곳으로부터 모두 ‘BBB’ 등급을 받아 상장에 제동이 걸렸다. 기술특례상장을 위해서는 한국거래소가 지정한 전문 평가기관 두 곳에서 각각 A와 BBB 등급 이상을 받아야 한다. 비슷한 시기 메드팩토 역시 기술성평가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진단키트 제조 업체 젠큐릭스는 지난달 29일 코스닥 이전 상장을 철회한다고 공시했다. 젠큐릭스는 작년 기술성평가를 통과하고 올해 코스닥예비심사를 신청했지만 코스닥 상장위원회가 심사 미승인 추천을 결정하자 상장을 철회키로 결정했다. 거래소는 매출에 대한 지적을 하며 심사 미승인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업계는 이전 상장할 경우 질적 심사 면제 등의 인센티브가 존재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코오롱의 ‘인보사 사태’가 거래소 심사에 일정부분 작용했을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코오롱그룹의 골관절염 유전자 치료제 ‘인보사 케이주(인보사) 사태’로 IPO시장이 위축되며 국내 벤처캐피탈(VC)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IPO 심사가 까다로워지는 분위기에 향후 투자회수 계획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망이다. 국내 벤처캐피탈에게 바이오는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투자처고, 인수합병(M&A)이 상대적으로 활발하지 않은 국내에서 IPO는 VC들의 주요한 회수 방법이다.
4일 벤처캐피탈업계에 따르면 국내 VC들은 작년에만 총 3조4249억원을 투자했다. 여기서 제약·바이오 벤처에만 8417억원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같은 흐름은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VC들은 올해 4월까지 누적으로 총 1조1382억원을 투자했는데 여기서 2515억원을 제약·바이오 벤처로 흘러갔다.
업계에서는 당분간 바이오 기업의 상장 심사가 보수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VC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인보사 사태 여파로 상장 심사가 강화된 느낌이 있다”며 “단기간 해결될 문제는 아니고 당분간 이러한 분위기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일부 VC는 바이오기업에 대한 투자를 신중히 하자는 내부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한 VC 임원은 “바이오에 대한 우려를 (인보사 사태) 전부터 하고 있었다”며 “남들이 한다고 따라하는 투자는 조심하고, 확실한 건에만 투자하자는 지침을 내렸다”고 말했다. 이미 투자된 바이오 비중이 커 최근에는 바이오를 일정부분 대체할 수 있는 산업을 발굴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VC도 있었다.
거래소는 ‘인보사 사태’로 제도적인 변화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면서도 실무적으로 보다 신중하게 점검하겠다는 입장이다. 거래소 관계자는 “과거에도 심사 과정에서 바이오 기업 기술 이전 현황이나 기술 진보 단계 등 점검해왔다”며 “이런 부분을 신중하게 보면서 심사하는 방법으로 보완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제약·바이오 벤처 투자 규모가 위축되지는 않을 것으로 봤다. 한 VC업계 임원은 “인보사 사태는 바이오 업종의 문제가 아니라 코오롱그룹의 잘못인 것”이라며 “개별 이슈로 바이오 투자를 줄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4차산업 시대에 국내에서 잘 할 수 있는 산업이 바이오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 VC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다만 제약·바이오 초기 투자 시에도 옥석가리기가 시작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한 VC 대표는 “IT나 제조업은 회사별로 기술을 따져서 투자했왔는데, 유독 제약·바이오의 경우 남이 한 투자를 따라 하는 카피(copy)투자를 하는 경향이 있었다”며 “지난주 기관 대상으로 수요예측을 진행한 압타바이오의 경우 최근 침체된 분위기와 다르게 결과가 좋았는데, 앞으로는 이처럼 VC 투자도 선별적으로 진행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라고 밝혔다.
IPO업계 한 관계자는 “인보사 사태는 바이오 투자자들이 좀 더 이성적으로 변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지금까지는 시장 유동성이 풍부해 돈으로 (밸류를)올리는 장이었다면 앞으로는 종목 차별화가 이뤄지는 시점이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바이오 기업들이 기술력과 시장경쟁력을 보여줘야 할 때가 됐다”며 “그래야 바이오 업종 투자가 앞으로도 선순환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