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시대]자치단체장은 '小통령'…4명 중 1명 뇌물·선거법 위반 기소

by이종일 기자
2018.09.13 06:00:00

단체장들 권한 악용해 금품 챙기다 줄줄이 구속
민선 6기까지 뇌물수수 등 기소 단체장 364명..4명 중 1명 꼴
“지방분권 위해 의회, 지역언론 등 감시역할 확대해야”

[전국=이데일리 이종일·정재훈·박진환 기자] 문재인 정부가 지방분권 추진을 본격화한 가운데 지방분권이 성공적으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비리 지자체장과 토호세력간 결탁을 차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995년 민선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된 후 일선 지방자치단체에서 단체장과 연루된 부정부패와 비리, 인사전횡 등이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다. 단체장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된 반면 이를 견제할 수 있는 기구·조직은 미비한 탓이다.

민선 지방자치단체 시대에 들어 각종 이권에 개입하거나 청탁을 받고 금품을 챙기다 철창신세를 진 단체장이 끊이지 않고 있다.

행정안전부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대검찰청 등의 자료에 따르면 1995년 시작된 민선 1기부터 민선 6기인 지난해까지 선거법 위반과 뇌물 수수 혐의 등으로 기소된 지방자치단체 단체장은 전국에서 모두 364명이다. 이 기간 중 선출된 단체장(1474명)의 24.7%에 달한다. 민선 6기만 한정해도 금품수수와 선거법 위반 등으로 50여명이 재판을 받거나 사법 처리됐다. 2014년 6·4 지방선거에서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회부된 단체장만 광역 1명, 기초 30명에 달했다.

이들 단체장이 비리나 선거법 위반 등으로 자리를 물러나면 재선거를 치뤄야 하고, 이 비용은 고스란히 국민들 혈세로 충당된다.

2015년 4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 기초단체장 12명, 광역의원 35명, 기초의원 72명 등 모두 119명을 새로 뽑았다. 이 과정에서 298억 5800여만원이 소요됐으며 이 비용은 해당 지자체 예산에서 전액 집행됐다.

해마다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이 이들 단체장에 대한 비리를 적발하거나 수사에 나서고 있지만 범행 수법이 갈수록 지능화되고 있고, 공직사회의 암묵적인 동조 등으로 확실한 내부제보가 없으면 기소조차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재홍 전 경기 파주시장은 사업상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운수업체 대표로부터 수천만원대 뇌물을 받은 혐의(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뇌물수수 등)로 2016년 12월 1심에서 법정구속 됐고 2심에 이어 대법원에서도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 전 시장은 2014~2015년 아내를 통해 알게 된 지역 통근버스 운수업체 대표 김모씨로부터 미화 1만달러와 지갑, 상품권 등 4500여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차정섭 전 경남 함안군수도 특가법상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대법원에서 실형을 확정받고 군수직을 잃었다. 차 전 군수는 2014년 6·4 지방선거 당시 지인들에게 빌린 불법 선거자금 2억여원을 부동산 개발업자 전모씨에게 대신 갚게 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이승훈 전 충북 청주시장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벌금 100만원을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받고 시장직을 잃었다.

단체장의 일탈과 함께 측근 비리도 심각하다.

송영길 전 인천시장의 비서실장이었던 김모씨는 2011년 대우건설로부터 인천 남동구 구월보금자리 아파트(구월아시아드선수촌) 건설사업의 공사 입찰 청탁과 함께 5억원을 받은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추재엽 전 서울 양천구청장의 비서였던 홍모씨는 2008년 양천구 모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6급 공무원 A씨(여)로부터 사무관(5급) 승진 청탁 대가로 33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청연 전 인천시교육감. (사진 = 연합뉴스 제공)
2007년 이후 교육감 직선제가 도입되면서 교육자치가 강화됐지만 일부 교육감들은 뇌물을 받아챙기고 특혜를 제공했다가 처벌받는 등 교육계를 오염시켰다.

이청연 전 인천시교육감은 학교 이전 공사 시공권을 주는 대가로 건축업자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특가법상 뇌물수수)로 지난해 12월 대법원에서 징역 6년에 벌금 3억원, 추징금 4억2000만원의 확정 판결을 받았다.

나근형 전 인천시교육감도 뇌물 사건으로 구속됐다. 대법원은 2015년 8월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기소된 나 전 교육감에게 징역 1년6월에 벌금 2000만원, 추징금 1626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김복만 전 울산시교육감은 아내와 함께 브로커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특가법상 뇌물수수)로 지난해 4월 구속됐고 같은해 12월 교육감직에서 물러났다. 대법원은 이달 4일 김 전 교육감의 상고심에서 징역 7년에 벌금 1억4000만원, 추징금 7000만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벌금 150만원을 확정받아 교육감직을 잃었다. 그는 또 특가법상 뇌물 혐의로 구속기소돼 징역 4년에 벌금 1억원, 추징금 1억4600만원을 선고받았다.

김영식 좋은교사운동(교원단체) 공동대표는 “교육감에게 권한이 많다보니 비리 가능성이 크다”며 “대규모 공사 등의 교육행정을 감시하는 의회, 언론의 역할이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은주 평등교육 실현을 위한 인천학부모회 상임대표는 “6·13 지방선거 이후 민관협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교육청이 시민사회와 협력하며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소통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며 “협치가 이뤄지면 자연스레 교육청에 대한 견제·비판이 강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단체장들의 일탈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감시·견제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자치단체장에게 부여되는 권한이 지역 발전, 시민 삶의 질 개선에 사용될 수 있도록 지방의회, 지역 시민단체와 언론이 제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공천과정 투명화, 다당제 등 정치구조 개혁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삼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정치사법팀장은 “지방자치가 도입된지 수십년이 됐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중앙정치, 중앙정부가 좌지우지 한다”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 지방정치가 활성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당 설립 요건을 완화하고 비례대표제를 확대해야 지역정치가 활성화된다”며 “지방의원 공천도 투명화해야 정직하고 능력 있는 후보를 당선시킬 수 있다. 그래야 지방정치, 지방분권이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영태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현재는 지방의회가 사실상 양당구도여서 지자체를 견제하는 데 한계가 있다. 지방분권을 성공적으로 추진하려면 다양한 정당에서 지방의원을 배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지자체의 문제점을 파헤치고 공론화하는 지역언론의 역할도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징역 판결을 받았던 기초단체장과 교육감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