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경은 기자
2018.01.10 06:00:00
[이데일리 김경은 기자]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지난 8일 가상화폐(암호화폐) 관련 기자간담회를 열어 은행들의 가상화폐 관련 거래 점검에 나서며 위반 사항이 발견될 경우 ‘최대 수준’의 제재도 가능하다는 발언에 은행권이 술렁이고 있다. 은행권을 가상화폐 투기 열풍을 조장하고 방조한 집단으로 언급하며 ‘칼끝’을 직접 겨눴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가상계좌 발급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이 미미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은행의 가상계좌 발급 수익은 한 법인당 발급하는 계좌수에 비례한다. 비용도 거의 들지 않고 많이 발급할수록 많이 벌어들이는 고마진 상품이다. 하지만 계좌 발급에 따른 수익은 수 십억원 수준으로 은행 전체 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극히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정부가 은행에 가상화폐 거래 실명확인의무를 부가하는데 대해서도 볼멘소리가 나온다. 가상계좌 발급을 한다는 이유로 은행이 가상화폐 거래 창구로 지목되고 거래 투명성의 책임 주체로 은행을 내세우는 것이 합당한가 하는 논리다. 가까운 나라 일본은 가상화폐 거래소 등록제를 시행하고 있어 실명 거래 내역 등을 거래소를 통해 직접 받고 있다.
반면 정부는 은행 수익에서 가상계좌 수익은 미미하지만 관련 부서인 법인영업부 실적에는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과도한 영업행위가 벌어질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아울러 가상화폐는 지급결제수단으로서 불법자금 세탁 등이 가능한데도 실명확인이 불가능한 가상계좌를 충분한 검토 없이 무분별하게 발급했다고 지적한다.
현재 국내 가상화폐 거래 규모나 행태를 보면 투기 징후는 뚜렷하다. 전 세계에서 차지하는 우리나라 경제 규모에 비해 가상화폐 거래 규모가 지나치게 크고 국제시세 대비 30% 이상 웃도는 가격에 거래되는 ‘김치 프리미엄’이 그 단면이다.
하지만 투기거래를 잡기 위한 정부의 연이은 규제발표에도 불구하고 비트코인 가격은 수직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가상화폐 규제책이 나올 때마다 가상통화의 희소성을 높이면서 가격만 끌어올린 셈이다. 거래소를 직접 겨냥하지 않고 은행에 칼끝을 정조준하면서 되레 ‘규제의 역설’을 야기하는 모양새다. 애꿎은 은행만 탓할 것이 아니라 정부의 실효성 있는 정책 마련이 필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