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섭 칼럼] ‘불복’ 민주주의

by허영섭 기자
2017.03.17 06:00:00

우리 민주주의는 저항과 불복의 토대 위에 세워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날 적잖은 우여곡절을 겪었고, 그때마다 값비싼 희생을 치렀다. 이승만 독재에 항거한 4·19혁명을 비롯해 전두환 군부정권으로부터 직선제 개헌을 쟁취한 ‘6월 항쟁’에 이르기까지 국민의 저항의식이 이 땅의 민주주의를 일궈냈다. 헌정사가 그만큼 험난했다는 증거다.

독재권력을 휘두르는 통치권자 앞에서 입법부나 사법부가 제 역할에 한계가 있었던 탓이다. 삼권분립은 헌법 교과서 안에서나 가능한 이론이었다. 캠퍼스에서는 날마다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으며, 이를 막기 위한 진압경찰이 교문 바깥에 진 치던 모습이 한때 대학가의 진풍경이었다. 저항과 불복의 몸부림은 정권에 대해 민주 의사를 표출하는 방법이었고, 따라서 정의롭게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국회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야당 총재로서 민주 진영을 대표하던 김영삼이 국회 표결로 의원 자격을 박탈당했을 때의 첫마디가 “제명 결의에 영원히 불복한다”였다. 무장경찰이 본회의장 입구를 전면 차단한 가운데 여당인 공화당과 유정회 의원들만이 참석해 이뤄진 표결이었다. 부산·마산 항쟁을 유발했고, 결국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목숨을 잃은 10·26사태의 도화선이 되었던 사건이다. 이미 한 세대도 지난 1979년 10월의 얘기다.

그 김영삼이 대통령에 올라 문민정부를 이룬 뒤에도 분위기가 거의 달라지지 않은 것이 지금 모습이다. 뒤이어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 수준을 높여 왔다고 하면서도 광장에서 들려오는 저항의 목소리는 여전하다. 광화문 광장을 차지했던 광우병·세월호 시위와 노동조합의 총파업 사태가 그런 사례다.

국민의 의사가 국회에서 수렴돼 정책으로 모아지는 것이 정상인데도 왜 광장의 목소리는 갈수록 높아만 가는 것일까. 오히려 국회의원들까지 걸핏하면 머리띠를 두르고 길거리로 뛰쳐나오는 상황이다. 가끔씩은 삭발을 하기도 하고 단식투쟁을 벌이기도 한다. 과거 민주화 시절의 투쟁방법을 답습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탄핵정국에서 이어진 촛불이나 태극기 시위도 큰 범주에서는 비슷하다. 단순히 헌재에 대해 탄핵인용·기각 선택을 촉구한 것만이 아니었다. 최종 결정이 자기들 뜻과 어긋날 경우 불복하겠다는 의사 표시이기도 했다. 서로 화합하기 어려운 우리 사회의 진영 논리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탄핵사건의 당사자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 헌재 결정에 승복하지 않는 것이 또한 마찬가지다. 삼성동 자택으로 퇴거하면서 몰려든 지지자들에게 보여준 미소에서 좀처럼 승복할 수 없다는 의중을 짐작하게 된다. 내주에는 검찰 수사가 다시 시작될 예정이지만 상황이 어떻게 돌변할지 내다보기가 어렵다.

박 전 대통령만을 비난할 것도 아니다. 야당이 지난 대선 결과에 불복했으며, 통진당 해산에 있어 정치공세로 맞섰던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한명숙 전 총리의 불법자금 사건에서도 정치 탄압이라고 항변한 게 또한 야당이었다. 이번 탄핵사건이 만약 기각으로 끝났다면 과연 어떤 결과가 빚어졌을까 떠올리게 되는 것이 그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을 감싸려는 뜻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려면 내편은 옳고, 상대방은 무조건 틀렸다는 진영논리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이런 식이라면 오는 5월 대선에서도 차점자 측의 불복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박 전 대통령이 이에 따른 결집효과를 노렸다면 더욱 오산이다.

이미 박 전 대통령은 탄핵 승복 의사 표명을 거부함으로써 국가 최고 지도자에 올랐던 명성을 스스로 허물고 있다. 이명박 후보와의 당내 경선에 패배하고도 흔쾌히 승복했던 모습이 지워진 것은 물론 자신이 결혼했다던 대한민국의 위상을 ‘헬 조선’으로 여지없이 떨어뜨린 것이다.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