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세에 만난 '42번가'…이종혁표 줄리안 마쉬
by김미경 기자
2016.06.23 06:16:00
초연 20주년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출연
카리스마 연출가 역할
자존심과 싸우며 고뇌하는 인물
"주인공처럼 연출도 욕심나"
최정원·김선경·임혜영·송일국 총출동
계단·피아노 위의 댄스 ''백미''
| 스크린·브라운관·예능 등 장르를 불문하고 활약 중인 배우 이종혁. 그는 “브로드웨이 42번가는 스타에 가려 빛을 내지 못하는 수많은 단역 배우에게 꿈과 희망 같은 작품”이라며 “조급해하지 말고 진흙을 꾹꾹 눌러 찰흙을 빚듯 경험하고 느끼고 배워야 한다. 기초가 튼튼하면 배우의 밀도가 달라진다”고 후배들을 격려했다(사진=샘컴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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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184㎝의 큰 키와 짙은 눈썹. 강렬한 인상 탓에 주로 ‘센’ 역을 도맡았다. 그러던 중 2012년 드라마 ‘신사의 품격’에서 180도 다른 잔꾀 많은 바람둥이 역으로 물오른 연기를 선보이더니 꽤 웃기기까지 한다. 이후 ‘준수아빠’란 수식어를 만난 TV 예능프로그램 ‘아빠 어디가’(2013~2014)를 시작으로 ‘학교 다녀오겠습니다’(2014~2015), ‘집밥 백선생’(2016) 등에서 개그맨 뺨치는 예능감을 선보였다.
배우 이종혁(42) 얘기다. 알고 보니 무대 위에서도 제법 잘 논다. 지난 한해 뮤지컬 ‘시카고’에서 능글맞은 변호사 ‘빌리플린’으로 열연해 여성팬의 지지를 얻어냈다. 내공도 만만찮다. 1997년 연극 ‘서푼짜리 오페라’로 데뷔해 대학로 연극판에서 뛰어논 연기인생 20년차다.
이종혁이 1년 만에 다시 무대에 선다. 한국 초연 20년을 맞은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23일∼8월28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제작자 겸 연출자인 줄리안 마쉬 역을 배우 송일국과 번갈아 맡는다.
개막을 앞두고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이종혁은 “‘시카고’에 비해 대사량도 많고 합창을 포함해 불러야 할 넘버가 3곡이다. 이번에는 끌고 나가야 하는 역”이라면서 “단순한 역 같지만 많은 것을 내포한 인물이다. 고뇌도 엿보인다. 비굴해야 할 때도 있고 때론 여배우에게 져줘야 한다. 자존심이나 양심과도 싸워야 한다. 행간의 연기를 더 고민하려고 노력한다”고 진지하게 말했다. 그러곤 특유의 위트 한방을 날린다. “내 입으로 얘기하면 내 자랑 같은데 목소리에서 중후함도 느껴지고 무대에 서면 멋있다더라. 하하.”
어릴 때는 나대는 걸 좋아했다고 했다. 중·고교시절 수학여행 때 노래 한곡은 불러야 직성이 풀렸단다. “친구들이 웃으면 으쓱했다. 중학생 때 청룡영화제 같은 걸 보고 나서 배우가 마냥 멋있더라. 사춘기 꿈이려니 했는데 고3까지 가더라. 대학의 과를 선택해야 하는데 하나만 떠올랐다. 서울예대 연극과에 들어가 제대로 놀았다. 연기밖에 모르니 졸업해서도 한 길만 걸었다.”
2002년 80살 할머니와 19살 청년의 사랑을 그린 연극 ‘19 그리고 80’에 연극계 대모 박정자와 출연해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무데포 정신이 있던 시절이다. 오디션 현장에서는 ‘나라는 배우만 있다는 걸 기억해달라’고 어필하는 식이었다. ‘19 그리고 80’ 뒤 4대 일간지에 인터뷰가 실리기도 했다.”
마흔둘에 만난 ‘브로드웨이 42번가’는 여러모로 각별한 작품이라고 했다. 이종혁은 “올해 42세가 됐다. 42번가 출연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모든 배우가 그렇겠지만 대학 때 보고는 막연히 꿈꿨던 작품이다. 노래하는 걸 좋아했다. 춤은 잘 추지는 못하지만 율동 정도는 가능하다. 42번가를 거쳐 간 수많은 선배가 있다. 내 이력에 갖고 있을 만한 작품이 아닌가.”
타닥타, 타닥탁타. 관객 맥박도 동시에 탭댄스. 커튼 아래 늘씬한 다리들이 한몸처럼 움직이는 군무는 백미다. 국내에선 볼 수 없었던 오리지널 무대장치(계단 위 탭댄스)의 최초 적용으로 2% 남아있던 아쉬움을 털어버릴 예정이다. 쇼 뮤지컬의 정석으로 불리는 ‘브로드웨이 42번가’는 시골 출신 신출내기 코러스걸 페기 소여가 일약 스타가 되는 과정을 그린다. 1933년 워너브러더스의 뮤지컬영화로 탄생한 뒤 1980년 미국 뉴욕에서 첫 공연 후 2001년 ‘뉴버전’이 만들어졌다.
관전 포인트로는 역시 ‘탭’을 꼽았다. “무조건 탭이다. 고전이라는 게 뻔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오리지널의 힘이 있다. 앙상블이 대단한 작품이다. 연습실에서 춤추는 걸 보고 있으면 소름이 돋더라.” 캐스팅도 좋다. “시카고에서 함께한 1996년 초연 멤버 최정원 선배부터 처음 뮤지컬에 도전하는 송일국, 2005년 이후 11년 만에 같은 작품에 서는 김선경 선배, 페기 소여에 원캐스트로 출연하는 임혜영 등 베테랑 배우가 총출동한다.”
같은 역할을 맡은 송일국과는 비교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종혁은 “나란 사람은 시청률, 흥행 등을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그런데 주역인데도 신경이 안 쓰인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송일국과는 워낙 스타일이 다르다. 이종혁대로 할 뿐이다. 관객이 판단해야 할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40대에 접어들면서 배우로서 좀더 편안해졌다고 했다. “일상에서도 배우여야 하는지 고민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와 보니 배우는 마이웨이인 거 같더라. 예능 처음 했을 때 혼란스러웠는데 그렇다고 배우가 아닌 건 아니더라. 내가 하는 일에 남들이 좋아해 주고 응원하면 그게 좋은 게 아닌가 싶더라.” 두 아들 탁수·준수가 연습실에 찾아왔느냐고 물으니 “다들 바쁘다. 아직 못 왔다. 아빠로서 내 무대를 보고 아이들이 재미있어 했으면 좋겠다. 탁수는 배우가 되고 싶어한다. 잘해야 시킬 텐데 아직 모르겠다”며 웃었다.
이번에 맡은 역할인 줄리안 마쉬처럼 실제로 연출을 해보고 싶다고도 귀띔했다. “제작할 돈이 생길 때 즈음? 하하. 돈이 없으면 연극이고 많으면 뮤지컬”이라며 농을 던진다. “배고픈 시절 함께 견딘 대학 선후배들과 다시 한번 뭉치고 싶다. 임형준·김수로·김민교·왕용범 등이다. 가끔 말은 꺼내는데 다들 바빠서 성사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하.”
| 최근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탭댄스 군무를 선보인 앙상블(사진=샘컴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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