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샤넬,구찌 가방 만들던 양천 가방단지의 몰락

by채상우 기자
2016.02.24 06:00:00

2000개에 달하던 가방업체 16년 만에 절반으로 줄어
하루 5만원도 벌기 힘든 상황..막노동판 찾기도
지난해 5월 ''양천가방협동조합'' 설립..中 백화점에 입점 성과
청년층 주축으로 양천구 가방산업 살리기 나서

[이데일리 채상우 기자] “대목인 신학기를 앞두고도 하루에 5만원 벌기도 힘듭니다. 임대료와 전기료, 월세 등을 내고 나면 주머니에 들어오는 돈은 월 20만원이 채 안 됩니다. 그 돈으로 가족을 부양하며 살고 있습니다. 최소한의 먹고 살 길도 보이지 않습니다.”

서울 양천구에 있는 소규모 작업실에서 가방제작을 하는 임동용(58) 씨는 미싱을 돌리며 자신의 처지를 푸념했다. 그는 하루 13시간 동안 일을 하지만 가족과 조촐한 외식도 망설일 정도로 수입이 신통치 않다. 생계를 위해 그의 아내는 근처 식당에서 일을 하고 있다.

비단 임 씨만의 일이 아니다. 서울 양천구 화곡로 일대에 밀집한 가방제조업체 대부분이 겪고 있는 현실이다.

임동용 씨가 자신의 작업실에서 가방끈에 미싱을 하고 있다. 임 씨는 하루 5만원도 벌기 힘들다며 푸념을 늘어 놓았다. 사진=채상우 기자
최근 찾은 이 일대 가방 거리 분위기는 스산했다. 이곳에는 약 1000개에 달하는 가방 제조업체가 밀집해 있다. 대부분 업체는 간판도 없이 주택지하에 철문을 닫고 사업을 하고 있다. 거리는 마치 1980년대에서 멈춰 있는 듯했다. 오래된 문방구와 색이 바랜 빨래방 간판만이 눈에 띄었다.

철문을 열고 한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82㎡(약 25평) 남짓한 공간에는 미싱기 3대가 벽 쪽으로 놓여 있었다. 그 주변을 빼곡히 스티로폼과 가방끈이 메우고 있고 형광등 3개가 어두운 공간을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이 곳에서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김용순(59) 대표는 30년 동안 가방산업에 종사했다. 그는 “호황 때는 월 5000개 정도 가방을 생산했지만 지금은 월 3000개도 어렵다. 인건비가 싼 베트남 등으로 일감이 넘어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마저도 요즘 신학기이기 때문에 가능한 규모라고 한다. 가방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정학채(53) 대표는 “신학기가 지나고 4월이 되면 일감이 없어 그야말로 보릿고개를 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6월이 지나고 벌어 놓은 돈이 떨어질 때쯤이면 많은 기술자들이 막노동을 하러 인력사무소를 찾고 있다”고 털어 놓았다.

돈이 없으니 사채를 쓰는 이들도 있었다. 박인균(54) 두레산업 대표는 “공장을 유지하기 위해 29% 고금리에 돈을 끌어다 썼다. 늦깎이 결혼을 해 아이가 없는데 앞으로 살아갈 길이 막막하다”고 말했다.

양천 가방 제조업체 대부분은 환기도 잘 안 되는 지하실에 위치해 있다. 방문한 한 업체는 환기를 위해 임시로 환기구를 설치해 놓았다. 이런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종사자들의 건강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사진=채상우 기자
열악한 근무 환경 탓에 이들은 크고 작은 병치레를 달고 산다. 박경수(59) 성심산업 대표는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가방을 만들었다. 아내도 결혼 후 이 일을 도왔다. 지난해 아내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사방이 막힌 공간에서 오랜 세월 밤낮으로 일을 한 결과다. 이곳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이 열악한 환경으로 병을 앓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곳이 처음부터 어려웠던 것은 아니다.

지난 1970년대 김포국제공항이 대한민국 항공 물류의 중심이 되면서 양천구 일대에 중소형 가방제조업체들이 모여들었다. 이착륙 비행기의 소음으로 양천구 일대 임대료가 크게 낮아졌기 때문이다.

1980년대 후반에는 2000개가 넘는 가방 업체들이 자리를 잡았다. 업체별로 많게는 월 2만개가 넘는 가방을 제작하던 시절도 있었다. 기술력도 인정받아 샤넬이나 구찌 등 명품 브랜드도 양천구 가방업체에 저가 모델을 위탁 생산했다. 사람들이 몰리면서 술집이나 식당가도 성행해 하루 24시간 활기찬 분위기였다고 이곳에서 오래 일한 근로자들은 입을 모은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면서 인건비가 저렴하고 인력이 많은 중국에서 대량으로 가방을 제작하면서 이곳도 쇠락하기 시작했다. 가방 하나를 제작해 거두는 인가공 수익은 20년 전 550원에서 600원으로 오르는 데 그쳤다. 물가상승폭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익으로 형편은 갈수록 어려워지는 상황이다.

양천가방협동조합에서 제작한 가방들. 사진=채상우 기자
주저앉기보다는 희망의 불씨를 되살리려는 움직임도 있다.

지난해 5월 양천구 45개 가방 제조업체가 모여 ‘양천가방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아직 출범한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오는 8월 중국 연길 경위락천지백화점에 조합 매장이 입점키로 하는 등 성과를 보이고 있다. 서울시 양천구청의 도움으로 양천구 국·공립 어린이집에 2400개 물량을 공급하는 계약도 체결했다.

최근에는 젊은 청년들의 열정도 보탬이 되고 있다. 조민우(32) 씨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아버지 뒤를 이어 가방제작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친구 다섯 명과 함께 자신만의 브랜드 제작을 추진 중이다.

조 씨는 “외국에서는 장인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한국에서는 못 배운 사람들 또는 노동자로 취급받는다. 이런 인식을 바꿔보고 싶고 우리도 얼마든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고품질의 가방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가방 제작에 뛰어들게 됐다”고 말했다.

양천구 가방산업을 살리기 위해 젊은 청년들이 뭉쳤다. 오서아, 조민우, 하지우, 장영일, 최경훈 씨(왼쪽부터)는 양천구 가방산업을 살리기 위해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고 인테리어 개설 작업을 벌이고 있다. 조 씨는 “우리도 얼마든지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가방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채상우 기자
이들은 열악한 환경에 놓인 양천구 가방산업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양천구 일대 가방 업체들의 인테리어를 바꾸는 작업도 벌이고 있다. 그는 “지금 현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대부분이 60세에 가까운 장년층”이라며 “젊은이들이 이곳에서 가방산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환경을 바꿔 양천구 가방산업의 맥을 이어가고 싶다”고 포부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