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때문에 ‘화려한 노후’ 포기 말아야”

by조선일보 기자
2007.06.04 08:36:53

조선일보·HSBC은행 노후 준비 포럼 ‘70대가 새로운 50대’
유동성 높은 주식·채권으로 분산해야
부인들도 적극적으로 노후설계 준비를

[조선일보 제공]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고령화 위기에 대비하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조선일보와 HSBC은행이 1일 서울 조선호텔에서 공동 개최한 ‘70대가 새로운 50대’란 주제의 노후(老後) 준비 포럼에선 다양한 제언들이 쏟아졌다. 참석자들은 ①자녀 부양에 매달린 나머지 자신의 노후 준비를 소홀히해선 안 되고 ②여성 노인도 주도적으로 노후 준비에 나서야 하며 ③건강이 허락한다면 은퇴 이민을 고려해보라고 지적했다.


HSBC은행이 영국 옥스퍼드대학과 함께 21개국에서 40~70대 2만10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은퇴의 미래’ 설문조사에 따르면 ‘은퇴 이후 돈 걱정이 되느냐’는 질문에 50대 한국인의 50%가 ‘그렇다’고 답했다.

은퇴 전에 경제적인 노후 준비를 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우재룡 한국펀드평가 대표는 “자식 중심의 사고방식, 미래를 미리 준비하지 않는 문화적인 전통, 노후생활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 등 여러 요인들이 노후 준비를 가로막고 있다”고 말했다.

우 대표는 노후 준비에 있어 최대의 적(敵)이 ‘자녀’라고 못박았다. 실제로 HSBC은행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60대 83%와 70대 64%는 은퇴 이후에도 가족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 세계 평균(60대 38%, 70대 30%)의 2배를 웃도는 수치다.

주명룡 대한은퇴자협회장은 “자녀에 대한 의무감 때문에 자신의 노후를 희생하고 있는 은퇴자들이 많다”며 “사회적인 체면에 당당해질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1일 서울 조선호텔에서 열린 노후 포럼에서 사이먼 쿠퍼 HSBC은행장(오른쪽 끝)은“한국인은 고령화사회에 대한 준비가 미흡하다”며 노후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은퇴자들은 노후 재산의 80%를 부동산에 집중해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우재룡 대표는 “유동성이 떨어지는 부동산에 자산을 편중하다 보면 세금 부담은 물론 향후 집값 하락 등으로 낭패 보기 쉽다”며 “유동성 높은 주식·채권 등으로 자산을 적절하게 분배해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남성 위주로 노후 설계를 집중하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남편 사망 이후 혼자 살아가야 할 부인들이 이에 대한 노후 준비를 소홀히 한다는 것이다.

우 대표는“부인들도 남편 뒷바라지에만 신경쓸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연금상품에 가입하는 등 노후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 취업률은 30.8%에 불과해 정부의 노인 일자리 부양정책은 별 효과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나마 일자리를 갖고 있는 노인들도 농·어업 종사자가 60% 이상이다.

김용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은 “연금제도가 미성숙한 상태인 데다 가족 부양 의식이 약화되면서 노후 소득 보장 사각지대에 놓이는 노인들이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전문가들은 은퇴 이민을 제안했다. 사라 하퍼 옥스퍼드대학 노후연구소장은 “은퇴를 앞둔 고숙련 노동자인 50대가 해외로 이주해 새로운 지역 사회에 기여하며 사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라며 “아이들이 모두 자립했고, 건강 상태도 10~20년은 문제 없다면 다른 나라로 이주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박상철 서울의대 교수는 “노화는 죽음의 전제조건이 아니라 얼마든지 개선할 수 있는 질환으로 봐야 한다”며 건강 관리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