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이승현 기자
2025.12.03 05:30:00
2심 재판부, 라덕연에게 징역 8년형 선고
수천억원대 주가조작범에 너무나 가벼운 처벌
이재명 정부 자본시장 활성화 정책에 찬물
사법부, 경제범죄에 엄벌 처한다는 인식 만들어야
[이데일리 이승현 증권시장부장] 2023년 4월24일, 외국계 증권사인 소시에테 제네랄(SG)에서 대량 매도 물량이 나오면서 8개 종목이 하한가를 맞는 일이 발생했다. 금융당국의 조사 결과, 작전 세력에 의한 주가조작인 것이 밝혀졌다. 이들은 통정매매(매수·매도자가 사전에 가격·수량·시간을 정해 서로 주고받는 거래)를 하는 방식으로 시세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린 뒤 고점에서 대량 매도해 약 7300억원대 부당이득을 챙긴 것으로 나타났다.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주가조작 사건으로 기록된 ‘SG증권발 주가 조작 사건’의 주범이 바로 라덕연 호안투자자문 대표다.
대중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질 듯했던 이 사건이 지난달 25일 다시 떠올랐다. 라덕연에 대한 항소심 재판부의 충격적인 선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서울고법 형사3부(재판장 이승한)는 라덕연에게 징역 8년형을 선고했다. 1심에서 징역 25년형을 선고 받았으니 2심에서 무려 17년이나 감형을 한 것이다.
감형 이유는 2심 재판부가 1심에서 인정한 시세조종 범위 중 3분의 1 정도만 유죄로 판단해서다. 그 결과 라덕연이 시세조종으로 얻은 것으로 본 부당이득 규모가 줄어들었고 범죄의 중대성을 판단하는 기준도 완화돼 형량이 대폭 줄어들었다는 것이 재판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시세조종으로 장기간 주가를 끌어올린 뒤 한순간에 폭락해 다수의 개인 투자자들에게 큰 피해를 입힌 중대한 범죄란 점을 감안하면 17년 감형은 과도하다. 주가 조작 종목도 8개나 되니 피해를 본 개인 투자자는 수백에서 수천명에 달할 것이다. 이렇게 광범위한 피해를 입힌 범죄자에게 재판부가 너무나 관대한 판결을 한 것이다.
특히 이재명 정부가 펼치고 있는 자본시장 활성화 정책의 한 축이 시장 공정성·투명성 확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판결은 시대의 흐름에도 맞지 않는다.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주가조작은 패가망신”이라고 공언했지만 수천억원대 주가조작을 해도 겨우 징역 8년만 살고 나올 수 있다고 하면 범죄 억지 효과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더욱 염려되는 것은 이번 판결이 앞으로 있을 주가조작 사건들의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재명 정부 들어 출범한 ‘주가조작 근절 합동대응단’은 이미 1000억원대 주가조작 사건을 적발한 바 있고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주가조작 사건이 줄줄이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이들 사건의 재판에 이번 판결이 영향을 미친다면 그야말로 말짱 도루묵이 될 수 있다. 정부가 나서 주가조작 근절에 힘을 주고 있을 때 사법부가 동조해 줘야 정책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
그동안 우리는 화이트 칼라 범죄, 즉 경제사범에 대해 관대한 판결이 내려진다는 인식이 있었다. 주가조작이나 미공개정보 이용 같은 증권 범죄도 법정 최고형은 높지만 실제 선고는 집행유예나 짧은 징역형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감옥 다녀와도 남는 장사’란 비판을 받았다.
칼로 찔러야만 사람이 죽는 게 아니다. 사기를 당해 재산을 날려도 사람이 죽을 수 있다. 이번 기회에 사법부가 경제범죄, 특히 주가조작 사건에 대해 엄벌에 처한다는 인식을 만들어 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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