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富를 키우는 투자지표]통화승수 하락…`유동성 함정`에 증시도 한계 맞나

by최정희 기자
2020.09.05 07:50:00

돈을 그렇게 풀었는데..성장률 떨어져
美 연준 자산 규모 줄고..유동성 파티 끝물인가
재정정책 확대가 유동성 메울 듯..그 과정서 마찰음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중앙은행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돈을 엄청 풀었으나 그에 비해 경기 회복세는 미약하다. 돈이 실물 경제로는 제대로 가지 않고 증시 등 자산 가격 상승만 부추겼다는 평가다. 시중에 돈이 잘 돌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통화승수는 하락했다. 중앙은행의 ‘돈 풀기’로는 경기 회복에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그동안 즐겼던 유동성이 끝물임을 시사한다.

코로나19 확산이 여전한 만큼 부양책은 지속되겠지만 그 방법은 특정 분야에 직접적으로 돈을 쥐여주는 재정정책 확대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유동성 파티를 즐겼던 증시는 삐거덕거릴 수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시중에 돈이 얼마나 잘 돌고 있는 지를 보여주는 ‘통화승수’는 6월 14.8배로 2001년 12월 한은이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이래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작년말 15.6배에 비해서도 감소한 수치다. 통화승수는 한은이 공급하는 본원통화량에 비해 시중 통화량(M2)이 몇 배나 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이 수치가 하락했다는 것은 한은이 돈을 뿌린 것에 비해 시중에 돈이 제대로 돌지 않았다는 얘기다.

실제로 본원통화는 올 들어 11.3% 가량 증가한 데 반해 M2는 5.8%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는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SK증권 등에 따르면 미국의 통화승수 역시 3배 수준으로 연초 이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증시 등 자산가격은 빠른 속도로 급등했다. 코로나19로 하락했던 코스피 지수, 코스닥 지수는 ‘V’자 반등을 보였다. 양 지수 모두 2018년 이후 3년여 만에 최고점을 기록하고 있다.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는 각각 연 저점 대비 64.5%, 106.4% 올랐다. 주식 투자를 위해 증권사 계좌에 예치해 둔 ‘증시 예탁금’도 지난달 말 60조원을 돌파,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고 신용융자 잔액(빚을 내 주식을 투자한 액수)도 16조원을 넘어선지 오래다.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돈을 풀긴 했는데 이 돈이 실물 경제로 가기보다 자산 가격 상승만 부추겼단 얘기다. 코로나19 확산 영향에 한국은행은 올해 경제성장률을 마이너스(-) 0.2%에서 -1.3%로 하향 조정했다. 돈으로는 바이러스를 이길 수 없다는 방증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국채 등을 매입하는 양적완화로 돈을 뿌리는데 돈을 많이 뿌릴 수록 자산이 늘어나게 된다. 연준의 자산 규모는 6월초까지만 해도 7조1652억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으나 서서히 규모가 축소, 이달 2일 현재 7조달러 수준으로 감소했다. 돈을 덜 뿌리고 있다는 얘기다. 한은 역시 지난달 27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열고 경제성장률을 대폭 하향 조정했음에도 기준금리는 연 0.5%를 그대로 유지했다.

이에 비해 재정정책은 강하게 드라이브가 걸리는 모양새다. 정부는 내년 예산안을 올해보다 8.5% 늘린 555조8000억원으로 확정, 사상 최대 규모로 늘렸다. 당정은 2차 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협의에 나서기로 했다. 문제는 재정정책은 중앙은행의 돈 뿌리기보다 시간이 걸리는 데다 진짜 필요한 곳에 시의적절하게 주지 않으면 눈 먼 돈만 만든다는 한계점이 있다는 것이다.

1차 재난지원금이 반영된 2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 소득이 가장 낮은 소득 1분위의 소득 증가율은 8.9%에 달했으나 지출은 1.1%에 그쳤다. 소득 2, 3분위는 소득이 5~6% 증가했으나 지출은 오히려 1%대 줄였다. 소득이 낮을수록 한계소비성향(추가 소득 중 소비되는 금액의 비율)이 높다는 통념을 깬 것이다. 소득 4분위만 늘어난 소득(5.6%)보다 더 많은 지출(7.2%)을 보였다. 소득 수준이 낮을 수록 다가올 경제난에 대비했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 2차 재난지원금이 지급되더라도 지출 효과가 얼마나 나타날지 고려해봐야 한다.

유동성 파티는 끝나가고 그 공백을 재정정책이 메우면서 경기회복 기대감이 나타나야 하는데 그 과정이 자연스럽지만은 않을 것이다. 증시에는 마찰음이 생길 수 있다. 3일(현지시간) 뉴욕 3대 지수는 2~4% 가량 떨어졌다. 4일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도 1% 안팎의 하락세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