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박지연 기자
2020.08.12 00:05:26
장기적·안정적 일자리 필요한 청년들
“단순 업무보단 의미 있는 경험을”
전문가 "기업이 안정적 일자리 창출할 수 있는 환경 조성해야"
"어차피 '단기 일자리'라 감흥이 없다"
최악의 고용절벽시대를 맞아 정부가 고육지책으로 단기일자리를 마련하고 있지만 정작 해당 정책 당사자인 청년들은 시큰둥한 반응이다. 단기 일자리가 임시방편에 불과해서다.
정부는 지난 4월 '고용안정 특별대책'을 통해 55만개의 직접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이중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분야는 약 20만개. 공공 부문의 데이터·콘텐츠 구축 (7만9000명), 민간 부문의 '청년 디지털 일자리'·'청년 일경험 지원' (11만명)이 그 대상이다. 정부는 지난달부터 직접 일자리에 참여할 대상자를 모집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단기 일자리에 대한 청년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단기 일자리가 고용 절벽현상을 실질적으로 해결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다.
“장기적·안정적 일자리가 필요하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부터 ‘청년 디지털 일자리 사업’·청년 일경험 지원 사업‘에 참여할 민간 중소·중견기업의 참여 접수를 받는다고 밝혔다.
기업이 청년과 2~3개월 이상의 근로계약을 맺을 경우 최대 6개월까지 인건비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청년 디지털 일자리 사업의 경우 월 최대 180만원의 인건비와 간접노무비 10만원을 지원한다.
정부는 해당 사업으로 11만개의 단기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정규직 전환 의무는 없지만 노동부는 "지원 받은 기업이 대상 청년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청년추가고용장려금‘ 및 ’청년내일채움공제‘ 등 기존 일자리 사업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조건에도 청년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는 정민형(26·남)씨는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기업 입장에선 비용이 더 드는 셈인데 굳이 기업이 나서서 정규직 전환을 해줄지는 의문”이라면서 “(단기 일자리) 취업이 되어도 정규직 구직을 계속해야 할 것 같아 임시방편이라고 생각한다”고 토로했다.
전문대를 졸업하고 2년때 취업을 준비 중인 민소영(24·여) 씨도 “취준생에게는 안정적이고 오래 일할 정규직이 필요한 것이지 몇 개월 일하다 끝인 일자리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며 한탄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 입장에선 간단한 코딩·정보화 능력이 필요한 단기 직군에 채용한 청년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후 이들에게 들여야 할 재정적 부담이 막대하기 때문에 다른 일자리 사업 지원으로 정규직 전환을 유도하기란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에서 임금을 지원한다는데 마다할 기업이 있겠느냐”며 “정규직으로 채용이 가능한 회사조차 단기 일자리로 선발하려고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단순 업무보단 의미 있는 경험을”
정부의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 사업 중 하나인 ‘비대면·디지털 정부 일자리’ 역시 이달까지 참여자를 모집한다. 이중 약 7만9000명 규모의 디지털 경제 기반 조성을 위한 데이터·콘텐츠 구축 분야는 청년층을 중심으로 선발한다.
그러나 일각에선 ‘단순 노동’에 그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과기정통부가 지난 10일까지 1400여명의 초급 인력을 선발하는 ‘과학기술 기계학습 데이터 구축 일자리 사업’에서는 “국내논문 PDF를 기계학습이 가능한 텍스트 형태로 구축”하는 단순한 업무를 진행한다.
행정안전부가 지난달 31일까지 8000여명의 청년을 모집한 ‘공공데이터 청년 인턴십’의 업무 정의서도 인턴 업무를 '컴퓨터 및 엑셀 활용 등 기본지식 정보화역량을 보유하고 소정의 교육을 이수하면 수행 가능한 업무'라고 규정하고 있다. 행안부는 이에 대해 “단순 작업이 아니라 고품질 공공 데이터 개방과 품질개선 업무를 실무적으로 지원하는 사업”이라고 해명했다.
천모씨(26·여)는 공공 일자리 지원을 망설이다 포기했다. 천씨는 “한시가 급한 입장에선 단순한 업무보단 실무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일자리가 필요하다”며 “공공기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친구가 ‘시간 때우기식 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조언을 해 지원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돈을 풀어 직접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이미 실패한’ 정책이라는 지적도 있다.
정부는 지난 2018년 예산 1058억원을 들여 ‘맞춤형 일자리 정책’을 만들었다. 당시 국립대 학생 1243명을 채용해 빈 강의실을 점검하는 업무를 맡았다. 이외에도 국립공원 탐방로 해변 정리 업무에 17억원, 숲 가꾸기 업무에 12억원을 투입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재정지원 일자리사업 분석 기초자료’를 통해 “1~2개월간 진행된 단기 일자리 사업이 대다수였다”며 “‘맞춤형 일자리 사업’은 장기 실업에서 벗어나 민간 일자리로 취업하도록 돕는데 목적을 두고 있었지만 이러한 단기 일자리는 효과가 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까지는 취업률 통계 수치를 개선하는 것에만 치우쳐 정책을 펼쳤기 때문에 실제 성과는 높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기업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고 조언했다.
성 교수는 “직무 교육·훈련의 다양화를 통해 기업의 정규직에 맞는 인적 자본을 길러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단기 일자리 사업의 주 분야인 빅데이터·IT 분야 규제 완화 및 인재 육성을 통해 산업을 키우는 것이 선행돼야 고용 창출이 뒤따라 올 것”이라며 “무턱대고 돈을 풀어 직접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스냅타임 박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