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 승자는 없어…글로벌 벨류체인 교란 美까지 전이될 수도"

by이준기 기자
2019.08.19 06:00:00

[인터뷰]②라일리 월터스 美헤리티지재단 경제·기술정책 분석가
"美도 수출통제 재검토…글로벌 밸류체인 교란 심화 우려"
"백색국가 복귀 日각의 다시 거쳐야…오래 걸릴 것"
미중무역갈등 내년 미국 대선전에 합의할 듯

사진=해리티지재단
[뉴욕=이데일리 이준기 특파원] “(한·일 갈등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경제는 더 큰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됐습니다. 글로벌 투자·공급 사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한 양국 수출 절차 지연 효과는 태평양을 넘어 미국까지 전이될 수 있습니다.”

미국 워싱턴D.C.의 대표적 싱크탱크인 해리티지 재단의 라일리 월터스아시아연구센터 경제·기술정책 분석가는 18일(현지시간) 이데일리와의 전화 및 서면 인터뷰에서 “우리는 미·중 무역전쟁을 통해 ‘전쟁에 승자는 없다’는 점을 배워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월터스 분석가는 “문재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를 통한 대일(對日) 메시지는 한·일 갈등 해결의 기회를 더 쉽게 만든 건 분명하다”고 평가했다. 다만 양국 관계가 정상화 단계로 올라서려면 상당 기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서 문 대통령이 15일 광복절 74주년 기념사에서 “일본이 대화·협력의 길로 나온다면 기꺼이 손을 잡을 것”이라고 했고, 내년 도쿄올림픽에 대해 “동아시아가 우호·협력의 기틀을 굳게 다질 절호의 기회”라고 평가하며 여당내 일부에서 제기해온 보이콧 주장을 사실상 일축한 것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 것이다.

다만, 월터스 분석가는 “당장 한국의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 복귀 문제만 보더라도, 일본의 각의 결정 절차가 필요하다”며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 없는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여전히 한일갈등 해결까지는 갈길이 멀다는 의미다.

△세계의 어떠한 갈등이든, 미국은 ‘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서면 중재에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특정 문제’에 대해선 제한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한·일 갈등도 특정한 문제에 해당한다. 미국으로서는 양국 중 어느 한 나라의 편을 들 수 없는 처지다. 미국은 양국에 대해 부모와 같은 입장으로 비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따라서 두 나라 사이의 관계나 행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만한 행동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미국은 양국의 동등한 파트너로서 한·일 갈등을 대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개인적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총리에게 갈등을 부추기는 추가적인 행동을 자제하도록 촉구해야 한다. 특히 한·일 갈등은 미국과 동맹국들 사이를 벌리려는 중국·북한의 장기적 목표에 부합할 뿐이라는 점을 설득해야 한다.

△그렇다. 가능성이 크지 않다. 물론, 나는 미국이 양국의 긴장 완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그것은 물밑이나 배후에서만 이뤄질 것이다. 결국, 정상적인 관계를 재건하는 것은 한국과 일본 양국의 몫이다.

사진=연합
△문 대통령의 대일(對日) 발언은 확실하게 갈등 해결의 기회를 더 쉽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모든 현안을 풀려면 대통령의 발언 하나만으로는 모자란다. 양국 관계가 정상화하려면 상당 기간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한·일 갈등은 새로운 건 아니지만, 경제·안보 분야로까지 번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당장 백색국가 복귀 문제만 보자. 일본의 각의 결정 절차가 필요하다.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 있겠는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경제는 더 큰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됐다. 수출 절차의 지연 효과는 태평양을 넘어 미국으로까지 전이될 수 있다. 투자·공급 사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도 첨단소재 수출통제 규정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때문에 글로벌 공급체인은 더 심하게 교란될 수 있다. 따라서 미국의 수출규정 개정 때 한ㆍ미ㆍ일 3자 실무협의를 하는 게 모두에게 유익할 것으로 본다.

△현 상황은 계속 악화하고 있지만, 동시에 유동적이기도 하다. 따라서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답은 나와 있지 않나. 미·중 무역전쟁을 보라. 무역전쟁에서 ‘승자는 없다’는 점을 배워야 한다.

△지소미아 탈퇴는 갈등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작금의 무역갈등이 안보갈등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소미아는 어느 한 쪽이 탈퇴하면 무의미해진다. 한국도 안보상 이익을 얻으려면 지소미아를 유지해야 한다.

△정확한 지적이다. 이미 언급했듯이 중국·러시아는 한·미·일 3국 관계의 악화를 보고 싶어 한다. 특히 한국이 중국과 밀착하는 것을 원한다. 이미 일본은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상당한 소외감을 느꼈다. 트럼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은 북한 문제를 다루는 데 앞장섰지만, 아베 총리는 그러지 못했다.

사진=AP연합
△동의하지 않는다. 만약 그 분석이 맞는다면, 높은 지지율을 가진 양 정상이 이렇게까지 긴장을 고조시켰어야 했을까. 정치적 동기는 거의 없다고 본다.

△지한(知韓)파·지일(知日)파가 얼마나 많이 미 정가에 포진해 있느냐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정상 간의 관계다. 우리가 보기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보다 아베 총리와 더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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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 언제 거래(합의)가 성사될 수 있는지 말하기 어려울 정도다. 하지만, 나는 양국이 2020년 11월 미국 대선 전에 합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군사비 지출과 관련해 항상 매우 금전적 관점을 가지고 대한다. 그러나 우리의 동맹은 공동의 이익에 바탕을 두고 있다. 거래로 간주해선 안 된다.

미 워싱턴D.C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의 대표적 일본전문가. 일본 조치대학(上智大學·소피아대학) 유학시절 구마모토현과 도쿄에서 각각 1년씩 머물며 일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정도다. 미 조지메이슨대에서 경제학 학사 및 석사학위를 받았다. 워싱턴의 젊은 아시아 정책 전문가 모임인 ‘아시아문제협의회’(The Council on Asian Affairs)의 공동 창립자로, 일본을 넘어 동북아 문제에 정통한 권위자로 평가받는다. 최근 동료인 브루스 클링너 아시아연구센터 동북아담당 선임연구원과 함께 한·일 갈등에 대한 보고서를 내 주목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