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논설 위원
2018.06.15 06:00:00
보수는 망했다. 그것도 폭삭 망했다. 이번 6·13 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 17곳 중 대구·경북·제주 등 3곳만 겨우 건졌고 나머지는 진보가 싹쓸이했다. 국회의원 재보선은 12곳 중 여당이 후보를 내지 않은 1곳만 간신히 이겼고, 교육감은 2곳에 그쳤다. 당락도 당락이지만 득표율이 대부분 진보의 절반에도 한참 못 미친 참패를 기록했다.
지방선거가 첫 도입된 1995년 이래 진보든, 보수든 이런 일패도지는 없었다. ‘보수의 아성’인 서울 강남과 부산·울산·경남에서도 전통적 지지층이 등을 돌리는 바람에 보수는 TK(대구·경북)로 쪼그라들었다. 문재인 정부 1년 동안 인사 참사와 정책 실패가 잇따랐고 선거 직전에는 미투 사태와 드루킹, 여배우 스캔들 같은 대형 악재가 터져나와 진보 진영을 궁지에 몰아넣는 듯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재작년의 총선과 작년 대선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내리 3연승한 진보는 입법·행정·사법에 이어 지방권력까지 거머쥐게 됐다. 선거 결과는 곧 국민의 명령이므로 겸허히 받아들여야 마땅하다. 하지만 자유와 평등을 각각 중시하는 보수와 진보는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제압하기보다 상호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게 바람직하다. 세계의 선진국들이 산 증거다. 새는 두 날개로 날아야 하기 때문이다. ‘보수의 궤멸’을 바라보면서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보수가 다시 일어설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러한 의지가 있다면 밑바닥부터 모든 것을 싹 바꿔야 한다. 임기응변으론 곤란하다. 더 철저하게 망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 그래서다. 최빈국이던 대한민국을 세계의 자랑거리로 일으켜 세운 자부심만 계속 우려먹어선 ‘꼰대 정당’을 못 면한다. 지난 잘못을 처절히 반성하고 국민에게 미래의 희망을 제시하는 ‘젊은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패배 원인으로 작용한 공천 잡음도 서둘러 걷어내야 할 구시대의 잔재다. 상향식 공천을 도입하고 인재 영입에 적극 나서야 한다. 진보 정당의 무분별한 질주를 저지하려면 참신한 정책 개발도 게을리해선 안 된다.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으로 한반도 안보지형이 요동치는 형국에서 ‘대안 있는 수권정당’으로 발돋움하는 게 무엇보다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