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부담금' 폭탄에 재조명받는 신탁 방식

by박민 기자
2018.06.04 06:00:00

재건축 조합 대신 부동산 신탁사가 사업비 조달부터 분양까지 도맡아
조합설립·건축심의 기간 등 줄이고 수수료 개발비 포함 땐 초과이익 부담금 감소효과도
서울 여의도 등 재건축 단지 추진 사례 속속…"계약 해지 부담도 따져봐야"

[그래픽=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이데일리 박민 기자] 신탁사가 조합을 대신해 재건축 사업을 추진하는 방식의 ‘신탁 방식’이 재조명을 받고 있다. 지난 2016년 첫 도입 이후 성공사례가 없어 실효성에 의문이 있었지만, 지난달 대전에서 첫 성공사례가 나오면서 다시 부각되는 모습이다.

그동안 신탁 방식 적용의 최대 부담으로 꼽혔던 수백억원 수준의 신탁사 수수료 역시 올 들어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재초환) 부활 이후 장애가 되지 않는 분위기다. 신탁사 수수료도 개발비용에 포함돼 재초환 부담금이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신탁 방식 재건축은 조합 대신 제3자인 부동산 신탁사가 사업비 조달부터 분양까지 사업을 도맡아 진행하는 방식이다. 2016년 3월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이 개정되면서 가능해졌다. 조합이 설립된 상태에서 조합을 대신해 신탁사가 사업을 맡는 ‘대행자 방식’과 조합 없이 전적으로 사업시행을 위임받아 진행하는 ‘시행자 방식’으로 구분된다.

지금껏 신탁 방식 재건축은 도입 초기로 성공사례가 없어 성과에 대한 의구심이 강했다. 그러다 올 들어 ‘완판’(완전 판매) 단지가 속속 나오면서 관심이 다시 뜨거워졌다. 지난달 분양 개시 3개월 만에 완판한 대전 용운주공아파트 재건축 ‘e편한세상 에코포레’가 대표적이다.

해당 사업장은 2003년 재건축 추진준비위원회 구성 이후 10년 넘게 사업이 지지부진했다. 그러다 2016년 7월 신탁 방식의 사업 대행자로 한국토지신탁(한토신)을 지정한 이후 여건은 180도 달라졌다. 총 2267가구 규모의 대단지를 신탁사 지정 2년 만에 분양까지 완료했다. 한토신 관계자는 “신탁사로 지정된 이후 해당 사업장의 가장 큰 리스크인 자금 조달 문제를 해결했고, 안정적인 사업 운용으로 분양까지 성공리에 마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신탁 방식의 최대 장점은 사업 기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재건축 사업은 ‘추진위원회 설립→조합설립 인가→건축심의→사업시행인가→시공사 선정→관리처분 인가→이주 및 철거→분양’까지 단계별 1년 이상의 긴 시간이 소요된다. 만약 조합원간 불협화음이 발생하면 사업이 지체돼 10년 이상 걸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신탁 방식은 추진위나 조합을 설립하지 않아도 돼 사업 기간을 최소 1~2년 정도 앞당길 수 있다. 여기에 서울은 길게는 1년에 달하는 건축심의 기간도 줄일 수 있다. 신탁사 관계자는 “서울에서 조합 방식의 재건축 절차는 시공사를 선정하기 위해 사업시행인가 이전에 건축심의를 받고, 시공사 선정 이후 건설사 설계변경 등을 통해 건축심의를 또다시 받아야 한다”며 “그러나 신탁 방식 재건축은 신탁사 지정 이후 곧바로 시공사를 선정할 수 있어 건축심의 기간을 한번으로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사업기간 단축 이외에도 전문성을 가진 신탁사가 사업을 지휘하는 만큼 사업 투명성 및 안정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서울에서 신탁 방식의 재건축은 물론 재개발까지 신탁 방식으로 추진하는 정비사업장이 늘고 있다. 현재 여의도 시범·광장·공작·대교 재건축 단지를 비롯해 노원구 상계주공5단지, 용산구 한성아파트, 서초구 방배삼호 아파트, 동작구 흑석재개발 11구역 등 20여곳에 달한다. 지방에서도 대구와 부산 등지로 확대되는 추세다.

특히 서울에서는 올해부터 부활한 재초환 부담액이 예상보다 크게 나오면서 신탁 방식 재건축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앞서 지난해만 해도 신탁 방식은 조합사업의 위탁 대행이라는 이유로 재초환을 피할 대안으로 꼽히며 관심이 뜨거웠다가 그해 법령 개정으로 이마저도 어려워져 열기가 한풀 꺽인 바 있다. 그러다 올 들어 재초환 부담액을 많이 낼 바엔 개발비용을 늘리자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신탁 방식을 재검토하는 것이다.

여의도의 한 재건축 조합 관계자는 “신탁 방식은 일반분양과 조합분 매출 총액의 2~3%를 수수료로 내야 하지만 이는 개발비용을 포함돼 향후 재초환 산정 시 제외되는 만큼의 부담이 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재초환 부담금은 조합 추진위원회를 설립한 시점부터 새 아파트 준공을 완료하는 시점까지의 집값 변동액에서 ‘개발비용’과 ‘집값 상승분’을 뺀 금액이 3000만원을 넘을 경우 부과하는 제도다.

특히 신탁 방식은 기존 조합 재건축 사업보다 사업기간을 단축해 집값 변동률 산정기간도 줄어들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조합이 재초환 부담금 폭탄을 어떤 식으로든 피하기 위한 1대1 재건축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면서 신탁 방식도 수혜 분야가 됐다”며 “다만 신탁 방식 재건축은 중도에 계약을 해지하는 게 까다롭기 때문에 이러한 리스크도 잘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