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경보음]③17세기 투기 광풍 '튤립 버블' 차이점은
by방성훈 기자
2017.09.17 09:08:48
공통점…투기적 수요
차이점…한정된 물량·불변성·현금화 여부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1630년대 네덜란드에선 튤립 투기 현상이 일어났다. 역사에 기록된 첫 거품경제 사례다. 당시 네덜란드에선 귀족들이 자신의 재력과 권세를 과시하기 위해 희귀 튤립으로 집과 정원을 꾸미는 게 유행이었다. 누군가 귀족에게 희귀한 튤립을 팔아 집을 새로 장만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너도 나도 거래에 뛰어들었다. 급증하는 수요에 가격이 폭등했다. 선물거래도 성행했다. 실수요자인 귀족들은 천정부지 치솟은 가격에 더 이상 튤립을 찾지 않았다. 거품이 꺼지면서 피해자가 속출했다. 네덜란드 경제를 흔들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은 1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투자자 컨퍼런스에서 “비트코인은 사기다. 튤립 버블과 같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거품은 언젠가는 꺼지게 될 것”이라며 “비트코인에 투자하는 직원이 있다면 바보”라고 덧붙였다.
정말로 비트코인은 튤립처럼 거품일까? 유사한 점과 다른 점을 살펴봤다.
가장 큰 공통점은 투기 수요가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비트코인 가격이 올 들어 4배 이상 폭등한 것에서도 확인된다. 비트코인은 올해 들어서자마자 1000달러를 돌파했다. 2013년 11월 이후 처음이다. 이후 5월 2000달러, 6월 3000달러, 8월엔 4000달러를 각각 넘어서더니 지난 2일에는 사상 최고치인 5013.91달러까지 치솟았다. 지나치게 빠른 상승 속도다. 현재 가격이 적정 가치라고 보기엔 과도한데다 변동성도 심해 투기적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가격 급등은 튤립 버블과 마찬가지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영향이다. 대부분은 앞으로 가격이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시장에 진입하는 투자자다. 최근 들어서는 실수요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무기 및 마약 거래, 테러 관련 자금이 주로 비트코인으로 이뤄지고 있다. 비트코인 결제를 강요하는 불법 소프트웨어 사이트도 급증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월 “비트코인이 이슬람 테러단체 활동 자금 지원에 활용되고 있다”고 보도한바 있다.
다양한 가상화폐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비트코인이 가장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데, 이는 비트코인이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인 블록체인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을 통하면 은행을 거치지 않고 개인과 개인이 직접, 이른바 P2P 네트워크 방식으로 거래할 수 있다. 그만큼 보안성이 뛰어나다. 다이먼 회장도 비트코인 채굴에 사용되는 블록체인 기술만큼은 유용하다고 인정했다. 물량이 한정적이라는 점도 높은 인기의 비결 중 하나다.
이외에도 비트코인은 다양한 가상화폐의 등장을, 튤립 버블은 희귀 품종의 등장을 촉진시켰다는 점에서도 유사하다. 현재 가상화폐는 1100여개가 유통되고 있다. 튤립 버블 당시에도 “희귀할수록 비싸다”는 풍문에 품종 개량이 성행했고, 400여종이 넘는 튤립이 탄생했다.
비트코인과 튤립 버블이 다른 점은 물량이 한정돼 있다는 점, 불변성, 그리고 현금화 가능성 정도로 꼽을 수 있다. 비트코인은 계속 재배·생산이 가능한 튤립과는 달리 2040년까지 2100만개만 유통되도록 공급량이 제한돼 있다. 물량은 한정돼 있는데 수요가 늘어나다 보니 가격이 오르는 것이 당연하다. 또 튤립은 시간이 지나면 시들고 죽는 식물이다. 반면 비트코인은 없어지지 않는다.
또 현금화 가능 여부도 차이를 보인다. 튤립은 실제로 귀족에게 꽃을 팔았을 때에만 현금화가 이뤄졌다. 현물 없이 선물 거래가 성행하다보니 거품이 생기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현금화가 가능하다. 비트코인 자체 뿐 아니라, 무기나 마약을 구매한 뒤 이를 다시 현금화 시킬 수도 있으며, 아직은 제한적이지만 화폐처럼 쓸 수 있는 곳도 늘어나는 추세다.
일본에선 비트코인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여 화폐처럼 취급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또 일부 국제 항공사와 상점 등도 비트코인으로 티켓이나 제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측면에선 비트코인은 튤립보단 금과 유사하다. 다만 전쟁이 나거나 전기 공급이 끊겼을 때를 가정해보면 금처럼 즉시 현금화하기는 힘들다. 다이먼 회장은 “아무도 그것(비트코인)이 무엇인지 볼 수 없다는 게 충격적”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일각에선 비트코인의 등장이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러나 비트코인이 실제 생활에서 쓸 수 있는 돈이 되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물가 상승에도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블룸버그는 “비트코인이 투자 자산이 될 수는 있지만 (롤러코스터와 같은) 변동성 때문에 표준 결제 수단, 즉 화폐가 되지는 못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사람들이 급여나 식료품 가격이 갑자기 폭등·폭락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이먼 회장도 “각국 정부가 규제를 받지 않는 화폐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며, 무언가 잘못되면 정부가 규제에 나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중국은 가상화폐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ICO)은 물론 가상화폐 거래까지 중단시키는 등 규제에 나섰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 발생한 튤립 과열투기현상으로, 가격과 가치가 괴리된 대표적인 거품 사례. 튤립버블은 정보기술(IT) 거품이나 부동산 거품 등이 부각될 때 거품의 역사적 선례로 많이 오르내리며 역사상 최초의 자본주의적 투기라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