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머니 공습]제주 땅 쓸어담던 '왕서방'.. 서울 강남 오피스텔까지 뻗쳐

by김인경 기자
2017.01.19 05:00:00

7년전 제주로 투자이민…서울로 확장
마포·영등포선 내국인에게 임대사업
3.3㎡당 1억원 웃도는 롯데 레지던스
中 고위공무원·부유층에 투자설명회

[이데일리 김인경 기자] “이제는 중국인이 한국인에게 세를 주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어요.”

중국 자본의 국내 부동산 투자가 지역과 상품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로 확대되고 있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이나 영등포구 대림동 일대에는 중국인 소유로 넘어간 건물이 적지 않다. 중국인이 건물을 세놓고 한국인이 그 건물에서 음식점이나 화장품 가게를 운영하는 경우도 이제는 낯선 풍경이 아니라고 현지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18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외국인들이 서울에서 보유한 부동산 2만2257필지 중 18%에 달하는 4066필지가 중국인의 소유인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 말 외국인의 서울시 보유 필지 2만5302필지 중 단 8%(2234건)만이 중국인의 몫이었는데 2년만에 2배로 확 늘어난 것이다.

중국 자본의 부동산 쇼핑은 제주도에서 출발했다. 정부는 2010년 외국인 투자를 장려하기 위해 ‘부동산 투자이민제’를 시행했다. 정부가 지정한 지역에 외국인이 5억원 이상 투자하면 거주자격(F-2 비자)을 주고 5년 이상 유지하면 영주권(F-5 비자)을 주는 제도다.

지금이야 투자이민제 적용지역이 ‘관광단지 내’로 제한되지만 당시만 해도 제주도 전역이 대상이었다. 중국인들은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영주권 특혜까지 누릴 수 있는 제주도로 몰려들었다. 이들은 제주도의 땅과 콘도, 상가들을 사들였다. 2012년 164만3000㎡에 불과했던 중국인이 보유한 제주도의 면적은 2015년 말 888만1000㎡로 확대됐다.

△국내 토지와 상업용 부동산은 이제 중국인들에게 익숙한 투자 상품이다. 다양한 한국 부동산 매물을 소개하고 있는 중국 부동산 포털 홈페이지 캡처.(자료:주와이 홈페이지 캡쳐)
부동산 투자이민제가 적용되는 인천 영종 하늘도시나 송도국제도시 역시 중국 자본의 먹잇감이었다. 중국 웨이하이 구룡부동산 개발그룹과 홍콩 존리츠인베스트먼트는 지난해 초 송도에 레지던스와 쇼핑센터, 관광호텔을 조성하는 ‘제2차이나워크타운’사업에 1조원을 투자하는 업무협약을 맺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중국 자본의 국내 부동산 투자는 토지나 상업용 오피스 매입 또는 투자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한류 바람이 불며 중국 관광객이 급증하자 중국 자본은 서울로 눈을 돌렸다. 중국인들이 많이 찾는 관광 명소인 명동과 가로수길 일대 부동산으로 투자 방향을 전환한 것이다. 이미 중국인이 무리를 이뤄 지내고 있던 영등포나 구로구 등에서 조금씩 투자 덩치를 불렸고, 대학가 주변 오피스텔과 강남권 고가아파트에도 중국 자본이 적잖게 흘러들었다. 서울 반포동 한 공인중개사는 “한국에 집을 사두고 싶어하는 중국인이 많아졌다”며 “금액과 상관없이 마음에 들면 바로 지갑을 여는 게 이들의 특성”이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자 아예 중국인 수요를 겨냥해 분양 마케팅을 펼치는 경우도 있다. 서울 송파구 잠실에 들어서는 롯데 시그니엘 레지던스는 지난달 아예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 광저우에서 중국 고위 공무원이나 부유층 등 VIP를 대상으로 투자 설명회를 열었다. 일부 실의 3.3㎡당 분양가가 1억원을 웃돌 것으로 예상되면서 국내 투자자만으로는 분양을 채울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 정도 가격을 감당할 수 있는 슈퍼리치는 국내에 얼마 없다”며 “다른 초호화 오피스텔들도 롯데 시그니엘 레지던스처럼 중국 투자자 찾기에 힘을 쏟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서울지역 중국인 토지소유 현황(단위:필지, 자료:서울시)
부동산업계는 중국 자본이 앞으로도 국내 부동산시장에 계속 유입될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인의 시각에서 한국은 여전히 매력이 넘치는 곳이기 때문이다. 서울만 해도 미국 뉴욕이나 영국 런던 등 대도시보다 부동산 가격이 훨씬 저평가돼 있는데다 지리적으로 가깝고 같은 문화권이라는 점도 매력이다.

중국 정부가 텐진 등 22개 도시에 부동산 규제책을 내놓아 중국 내 투자가 힘들어진 만큼 ‘세컨드 하우스’를 한국에 두려는 욕구도 커지고 있다. 게다가 시진핑 정부의 부패척결 정책으로 자산을 해외로 돌리려 하는 부유층도 많다. 업계 관계자들은 최근 사드(THAD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문제로 한·중 관계가 경색되고 있지만 부동산 시장만은 예외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국내 부동산시장에 밀려드는 중국 자본을 곱지 않게 바라보는 시선도 적지 않다. 이미 부작용을 지적하며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게 임대료 상승으로 국내 상인들이 쫓겨나는 ‘젠트리피케이션’(둥지 내몰림 현상)이다. 서울 대림동이나 연남동 일대에서 이 같은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양지영 리얼부동산 리서치팀장은 “임대료가 싸고 소액 투자로 장사하기 좋았던 동네들이었지만 중국 자본 등이 많이 유입되면서 이제 임대료가 너무 올라 기존 상인이 들어올 수 없게 돼 버렸다”고 말했다. 중국인의 비중이 커진 부동산 시장에서 이들이 일시적으로 빠져나가거나 투자를 멈추면 부동산 경기가 더욱 냉각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반면 중국 자본 유입이 국내 부동산 경기를 지탱해준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 박덕배 금융의 창 대표는 “국내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중국 자본이 들어와 부동산시장을 지탱해준다는 점은 매우 긍정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