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최훈길 기자
2016.08.29 06:00:00
"희생자·피해자 심리서 벗어나 전기료 개혁에 힘 실어야"
[세종=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한전이 어떤 희생을 감수하고 있다는 것도 알려야 하는데 언론에 얻어 맞기만 하고 아무 대응이 없다.…전기요금을 현실화해야 할 것 같다.…요금 체계를 현실화시켜서 우리가 쓸데없는 희생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회의록에 따르면 지난 16일 한전 이사회에 참석한 모 이사는 이렇게 말했다. 당시는 정부·여당이 여름철 한시적 할인 결정을 한 직후였다. 한전 이사는 “현행 전기요금이 싸다”면서 만년 적자의 주범인 제 값 못 받는 전기료를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전 내부에서는 “희생뿐 아니라 피해까지 봤다”는 ‘피해자론’도 거론된다고 한다. 수천억 원씩 할인 지원을 하는 등 돈을 쓰고도 욕만 먹는 ‘총알받이’가 됐다는 이유에서다. 누진제 완화 여력이 충분해 개편 주장도 했는데 산업부에 묵살됐다는 한탄도 나온다. 정부 정책에 협조할 수밖에 없었는데 ‘부도덕한 공기업’으로 낙인 찍힌 게 억울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주장을 수긍하는 국민이 얼마나 있을까. 국민들이 살인적인 누진제 폭탄요금을 걱정하고 있을 때 한전 이사회에서는 전기료 인상론이 거론됐다. 한전은 지난해 11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내고 고액 성과급·해외연수까지 챙겼다. “국민에게 전기료 뜯어 기업에 줬다”는 형평성 논란까지 불거진다. 그럼에도 한전은 누진제의 불합리를 알고도 40여년이나 유지했다.
‘희생·피해자론’에 공감할수록 한전은 누진제 홍역에서 벗어날 수 없다. 현실을 직시할 수 없게 되고 합리적 해법을 모색하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내년도 올해처럼 찜통더위가 계속될 수 있다. 한시적 누진제 완화 같은 땜질식 정책만으론 뿔난 민심을 바꿀 수 없다. 전기요금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전반적인 체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게 해법이다.
조환익 사장은 최근 저서에서 “공기업이 만드는 재화는 그 특성상 소비자인 국민들이 알아주지 않으면 아무리 뛰어난 정책이라 해도 성공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민심과 괴리된 ‘희생·피해자 심리’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9회말 투아웃’ 역전극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