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상 이 작품] 음악 받쳐줄 이야기 절실

by김미경 기자
2016.06.09 06:15:00

- 심사위원 리뷰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
록·발라드 등 김성수 넘버 귀 즐거워
앙상블·배우 음악적 기량 빼어나
정작 주인공 내면 전달 안돼 아쉬움
대사 건너뛴 송스루였더라면…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의 한 장면(사진=랑).


[고희경 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교수] 기대를 모은 라이선스 뮤지컬 한 편이 개막했다. 19세기 미국문학의 대표작가이자 추리소설의 원조격인 에드거 앨런 포(1809~1849)의 일대기를 다룬 ‘에드거 앨런 포’가 그것이다. 뮤지컬의 음악을 만든 에릭 울프슨은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 멤버로 뮤지컬 ‘갬블러’ ‘댄싱 섀도우’를 작곡한 이로 우리에게 친숙하다.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5월 26일~7월 24일 광림아트센터 BBCH홀)는 기존 곡에 6개의 넘버를 추가한 한국 재창작 수준의 신작이다. 포가 쓴 ‘갈가마귀’ ‘애너밸 리’와 같은 시구와 ‘모르그가의 비밀’의 에피소드를 뮤지컬 안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귀한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작품은 시인이자 소설가 포의 삶을 그대로 좇는다.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포.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작가지만 세상은 그를 알아주지 않고 가난은 질곡처럼 이 뛰어난 예술가를 괴롭힌다. 사랑하는 이는 세상을 떠나고 술과 마약만이 위로가 된다. 포의 불행에 동력을 제공하는 것은 작품의 해설자면서 주인공을 질투하는 그리스월드다. 시인이며 목사인 그는 자신의 작품에 날카로운 비평을 쓴 포의 시 ‘갈가마귀’가 대중에게 열광적인 호응을 얻자 포를 미치광이로 몰아간다.



울프슨의 음악과 이번 작품에 보강한 김성수의 넘버는 장중한 서곡을 시작으로 록부터 발라드까지 다양한 스타일로 귀를 즐겁게 했다. 주역부터 조역, 앙상블까지 넘버를 자신있게 소화하는 배우들의 기량도 시원스러웠다. 앙상블의 분장이나 역할이 몰입을 깨는 순간이 없진 않았지만 음악적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지나친 영상을 제외한다면 무대나 조명도 세련된 스릴러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다.

다만 스토리는 음악의 흐름을 주도하지 못했다. 포가 왜 갑자기 어린 사촌 동생과 결혼하는지, 첫사랑과 한 번의 재회로 사람이 그렇게 쉽게 바뀌는지 등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야기가 허술하니 캐릭터는 생생함을 잃는다. 강한 어조로 존재감을 각인하는 악역은 쉽게 어필했지만 정작 주인공의 복잡한 감정은 전달하기 어려웠다. 포 역을 최재림·김동완과 번갈아 맡고 있는 마이클 리의 한국어 대사가 불편했던 것은 단순히 언어의 문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대사를 건너뛰어 노래만 이어지는 송스루로 갔더라면 상처받은 예술가의 영혼이 오히려 절실하게 전달됐을 것 같은 아쉬움이 남은 것은 작품이 다시 고민해봐야 할 대목이다.

‘프랑켄슈타인’ ‘드라큘라’ 등 공포라는 낭만적 쾌감을 주제로 하는 추리문학의 하위장르를 고딕문학이라고 한다. 최근 한국의 뮤지컬시장을 주도하는 작품이 대체로 이런 경향이다. 에드거 앨런 포. 그의 이름만으로 낭만적 스릴러가 저절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아름다운 넘버를 받쳐 줄 촘촘한 이야기 그물이 필요하다.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의 한 장면(사진=랑).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의 한 장면(사진=랑).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의 한 장면(사진=랑).